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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북한 지배계급의 핵무장을 ‘존중’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북한에게 핵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고 본다”는 송하나 씨의 독자 편지에 대한 장한빛 씨의 반론 글이다.

송하나 동지가 동북아시아의 위기의 원인을 제국주의 압력에서 찾고, 동시에 북한 체제에 대해서도 국가자본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다. 나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송하나 동지는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제국주의가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에 제국주의만 비판해야지, 핵을 선택한 북한 지배자들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양비론이거나, 우익의 북핵 제거 논리와 맞닿게 된다고 보는 듯하다.

그래서 송하나 동지는 ‘북한의 민중이 선택한 핵은 불가피했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당 규약에 5년마다 열리도록 돼 있는 당대표자회가 44년 만에 열릴 정도로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북한에서 핵을 “민중이 선택”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북한 핵 개발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더욱 문제다.

그런 논리라면 - 북한 민중이 반대를 표현할 기회도 권리도 갖지 못하고 있는 - 북한의 3대 세습도 존중해야 하고, '선군정치'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송하나 동지는 북한 민중이 지배자들에게 맞서 투쟁하기 전까지는 북한 정권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송하나 동지는 〈레프트21〉의 주장과 단순한 양비론을 구분하지 않는 듯하다. 〈레프트21〉은 단순한 양비론과 달리 아래로부터의 관점에서 제국주의를 반대하기 때문에 북한 지배자들의 방식에도 비판적인 것이다.

송하나 동지의 말대로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 민중의 승리를 기원했다. 하지만 미국이 물러난 이후 건설된 국가자본주의 국가 건설까지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전쟁이 끝나고 벌어진 베트남 지배계급의 캄보디아 점령과, 농민에 대한 과중한 세금,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노역을 ‘존중’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 정권도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국가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국가 간 경쟁에 모든 생산을 종속시키며 민중의 삶을 희생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런 북한의 국가자본주의적 방식을 ‘존중’해야 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북한 정권은 일관되게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지도 않는다. 한편에서는 미국 제국주의의 압박에 반발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 제국주의와 끊임없이 타협하려 애쓰고 있다. WTO에 가입하고 싶어 하고, 주한미군의 주둔을 인정할 수 있다고도 한다. 최근 김정은은 데니스 로드맨을 통해서 '오바마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을 미국에 전했다.

동아시아 불안정

송하나 동지는 북핵이 “미국과 동북아 국가들의 군사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 (주장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에 대응해 북한은 핵무장을 선택하고, 미국과 동맹국들은 다시 북핵을 빌미로 군사력 증강에 나서는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를 확대, 최신 무기 아시아 배치, 일본의 헌법 개정 시도와 핵무장 추구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또 한일 군사협정도 다시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것은 다시 북한 지배계급이 군비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통과 부담은 고스란히 북한의 평범한 민중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송하나 동지가 북핵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전 인민적 저항과 국제적 연대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송하나 동지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패배한 것은 ‘베트남의 밀림과 냉전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이었다’는 잘못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특수한 조건 덕분에 베트공의 게릴라 투쟁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베트남 게릴라들은 영웅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은 주로 폭격을 견디고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나마 베트공이 반격을 시도했던 '구정 공세'도 군사적으로는 결코 성공이 아니었다. 오히려 구정 공세 이후 미군의 반격으로 남베트남 게릴라들은 거의 괴멸 상태로 내몰렸다. 이처럼 구정 공세는 군사적으로는 패배였지만, 전쟁이 금방 끝날 것이라고 홍보하던 미국 지배자들의 거짓말을 폭로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런 베트남 민중의 저항은 전 세계 반전 운동을 촉발시켰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베트남 사람들은 나를 검둥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해치지도 않는다. …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며 징집을 거부했다. 나중에는 그런 징집 거부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을 체포하는 것을 포기할 정도였다.

군대에서는 병사들의 반란이 시작돼 전투를 거부했고, 전투를 강요하는 상관에게 병사들이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모여 베트남 민중의 승리를 가져왔던 것이다.

걸림돌

북한 정권이 베트남의 사례처럼 민중의 힘을 동원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핵을 선택한 것은, 북한 민중이 ‘핵을 용인’해서가 아니다. 북한 지배자들 민중을 억압하는 정권이다. 민중을 억압하는 정권은 민중을 동원해 투쟁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민중에게 아래로부터 반제 투쟁을 호소하고 국제적 연대를 제안하는 게 아니라 핵무장을 선택한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국제적 연대를 촉구하기는커녕 걸림돌이 된다. 북한의 핵무기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거라고 위협하는 데, 서울의 노동자들이 북한의 군사적 승리를 공감할 수 있을까? 북한의 지배자들이 워싱턴을 핵무기로 날려버리겠다고 하는 데, 미국의 민중이 오바마 정권에 맞서 북한을 방어하기 쉽겠는가?

북한 지배계급의 핵무기는 반제국주의 투쟁의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반제국주의 투쟁의 걸림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