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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지 안전 여부 논란은 핵심을 비켜가는 것이다

파병지 안전 여부 논란은 핵심을 비켜가는 것이다

김용욱

칼 마르크스는 1857년 8월 28일치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인도에서 고문의 실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당시 영국 점령군이 세금을 못 낸 인도인들에게 가한 고문은 마치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저지른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돌무더기를 가득 진 채 살인적인 햇빛으로 견딜 수 없이 뜨거워진 모래 위에 쓰러질 때까지 서 있어야 했습니다.”

제국주의와 고문은 서로 어울리는 한 쌍이고, 지금 이라크에서도 그렇다.

19세기 제국주의와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차이점도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근본적으로 둘 다 더 많은 이득과 지정학적 패권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제국주의는 인권과 목숨마저 소모품으로 여긴다.

반전 운동이 한국 정부의 파병을 반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야만적 제국주의를 강화하는 모든 형태의 지원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호들갑

그렇기 때문에 우리 운동과 열우당(그리고 극소수 한나라당 의원들)에서 제기되는 ‘파병 재검토론’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반전 운동 세력들은 일찌감치 제국주의적 점령의 실체를 폭로해 왔다.

그러나 주류 정치인들은 이라크에서 “지금 상황이 바뀌고 있다”며 이제야 점령의 참혹함과 점령군에 맞서는 이라크인들의 저항을 발견한 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

지난 2월에 2차 파병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 미국의 만행과 이에 맞선 저항이 진행되고 있었고, 증거도 널려 있었다. 파병의 명분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지금 파병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열우당의 유시민은 “미군이 초기에는 해방군의 성격도 갖고 있었지만 … [이제는] 점령군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런 기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이런 위선적인 정치인들과 비교했을 때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의 입장은 대체로 옳았다.

그러나 국민행동의 주도 단체들은 미국 제국주의 반대보다는 이라크 내 치안 상황 불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파병 예정지가 나시리아에서 모술로, 키르쿠크에서 아르빌(그리고 술라이마니야)로 바뀔 때마다 이 지역이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가 안전에 관해 워낙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며 파병을 정당화해 왔기 때문에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또한 2월에 통과된 추가 파병 동의안에 파병 지역 사정이 바뀌면(즉, 위험해지면) 병력을 철수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아 놓았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생각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것은 열우당의 ‘파병 재검토론자들’의 논리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도 된다. 만약 우리가 파병 지역이 안전한지 아닌지를 둘러싼 논쟁에 말려들어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그것은 파병 철회 운동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2차 파병이 결정되기 전 김근태와 장영달이 파병 신중론을 제기했을 때 국민행동이 환영 성명을 냈지만, 이 자들이 나중에 파병 찬성으로 돌아섰던 쓰디쓴 경험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또, 파병 자체가 아니라 파병 지역, 파병군 구성이나 방식(유엔 결의안 통과 후 등)을 바꾸는 부차적인 문제가 전면에 부각될 수 있다.

앞으로 고문과 학살만행 폭로의 여파가 더 커지고 미국의 외교적 고립이 계속될 것이다. 미국은 일본군처럼 한국 파병군이 (독자 파병이든 유엔군의 일부든) 상대적으로 안전한 이라크 구석에 주둔하거나, 파병군 구성을 다소 바꾸더라도 용인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으로서는 한국군이 일단 이라크 영토 내에 발을 들여 놓게 되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이용할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미 폴란드·이탈리아·(철수한)스페인을 제외한 파병국들은 군사적으로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그 중 일부가 철군을 발표하자 미국 국무장관 파월은 그들의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파병 지역과 구성이 어떠냐를 떠나서 파병 자체가 미국 제국주의 점령에 대한 지원이자 지지의 표시였기 때문이었다.

제국주의를 강화하는 모든 지원에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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