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곤 강사에 대한 농성금지 가처분 결정(2013.3.25.)에 부쳐:
학내 시위의 자유를 가로막는 고려대 재단이 진정한 ‘흉물’이고 ‘폐습의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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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노동자연대학생그룹 고려대모임이 3월 28일 발표한 성명서다.
3월 25일 서울중앙지법은 김영곤 강사에게 본관 앞 천막과 현수막을 10일 안에 철거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지난 1월 10일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김재호 이사장이 김영곤 강사를 상대로 "농성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것의 결과다.
이번 농성금지 가처분 결정이 나오기까지 재단 측은 여러 차례의 보충서면을 통해, 김영곤 강사의 농성 천막이 "국내 대표적인 명문사립대학으로서 그 동안 쌓아왔던 이미지에 상당한 손상을" 입혔고 "흉물"스러우며, "학생들에게 정신적 황폐함이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대한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게다가 재단은 농성 천막이 "학내 분쟁 폐습의 표본이자 학내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주요 수단"이라고도 했다.
주범
그러나 진정으로 "지대한 악영향"의 주범은 김영곤 강사의 농성천막이 아니라 고려대 재단이다. 고려대 재단은 적립금을 3000억 원 넘게 쌓아두면서, 학내 구성원에게 지원하는 데는 인색하기 그지 없다. 고려대 시간강사들이 시간당 평균 51800원, 월 40만 원 정도의 강사료를 받는데, 이들의 시급을 인상하라는 김영곤 강사의 농성이 어째서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인가.
학생들이 김영곤 강사의 농성 때문에 "정신적 황폐함"을 겪었는가? 정신적 황폐함은 학내 구성원에게 돈 쓰기를 너무나 아끼는 학교와 재단 때문에 일어난다. 최근 세종캠퍼스는 박사학위 없는 시간강사들이 "교수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강의의 질이 낮다"는 김병철 총장의 말 한마디에, 김영곤 강사를 포함해 수십 명의 비(非)박사들을 대량 해고했다. 세종캠퍼스 총학생회에 따르면, 이번 학기 들어 무려 49개 강의가 사라졌고 학생들은 수강신청 대란을 겪었다. 이 여파로 기존 수강 인원보다 늘어난 강의들이 많아졌고, 학생들은 수업 때마다 부족한 의자 수십 개를 옆 강의실에서 공수해 오느라 애를 먹고 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책걸상이 모자라 자리 맡기 경쟁을 하고 의자를 공수해야 하는 상황이야말로 "정신적 황폐함"을 겪게 한다.
게다가 4대째 재단 이사장직을 '세습'하는 고려대 재단이 "폐습"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현 총장도 인촌 김성수의 손자이자 재단 이사장 출신 아닌가. 얼마 전 교수의회가 발표한 총장 중간 평가에 따르면, 김병철 총장은 "낙제점"을 받았다. 설문에 참여한 교수 중 81.94퍼센트가 총장 본인이 약속한 ‘여러 학내 집단과 소통·화합'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학내 구성원들이 어디 교수님들뿐이겠는가.
속내
재단의 가처분 신청은 학내 시위의 자유를 가로막는, 학내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이마트, 삼성, 한진중공업 같은 대기업들의 가처분 신청은 노동조합 활동을 금지시키는 데 종종 쓰여왔다. 이번 가처분 신청 때 고려대 재단은 "미관" 운운했지만, 진정한 속내는 학교 당국과 재단에 문제 제기하는 이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재단은 애초 법원 측에, 본관 앞 천막 농성뿐 아니라 본관 진입도 막아달라고 요구했고, 본관 앞 잔디밭 뿐 아니라 중앙광장과 정문 앞에서도 시위와 농성행위를 금지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재단 측은 총장 비서실에 방문한 김영곤 강사와 학내 연대 단체 구성원들을 무단 촬영하고, 직고용을 요구하며 본관 앞에서 집회를 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사진을 건물 내에서 몰래 찍어, 이 사진들이 김영곤 강사의 농성천막이 '아지트화'한 결과라며 아전인수식 해석을 늘어놓았다. 재단은 이 가처분 신청을 통해 단지 시간강사뿐 아니라 학교 당국과 재단에 문제 제기를 하는 학내 구성원들의 집회, 시위의 자유를 막으려 했던 것이다.
이번 농성금지 가처분 결정이 재단과 학교 당국에 대한 불만과 항의를 막을 수는 없다. 노동자연대학생그룹 고려대모임은 고려대 당국과 재단에 맞선 항의 운동뿐 아니라 더 많은 강사들을 해고시킬 시간강사법, 대학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에 함께할 것이다.
노동자연대학생그룹 고려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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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8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