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공서비스는 상품이 돼선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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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철도·가스 등에 대한 민영화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배자들이 민영화를 추진할 때 많이 쓰는 논리는 “효율성 강화”다.
공기업의 독점 구조를 깨고 여러 기업이 경쟁하면 공공 서비스를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서비스 이용 요금은 떨어지고 서비스 질은 향상되고 소비자 선택의 폭은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말하는 “효율성”은 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이 아니라 수익 창출의 효율성이다. 그래서 민영화는 필연적으로 요금 폭등을 낳는다. 또한 비용 삭감을 이유로 노동자를 대량 해고하고 노동조건을 악화해 서비스 질이 하락하고, 안전 설비 투자를 줄여 대형 사고를 일으킨다.
2002년 한국통신이 민영화돼 KT로 이름을 바꾸고 LG텔레콤과 SK텔레콤이 통신 부문에 진출하며 “경쟁 체제”가 구축됐지만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은 되레 늘었다.
한국통신을 민영화하기 전에는 무료였던 114 등의 서비스는 유료화됐다.
KT는 해마다 수익을 엄청나게 챙겼지만 매출 대비 설비 투자액은 해마다 줄였고 수익의 절반을 주주 배당금으로 썼다. 민영화 전 6만 5천 명 이상이던 정규직 노동자 수는 3만 7천 명으로 반토막 났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민영화도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민영화 2년 만에 수도요금이 6곱절로 뛰어 1천만 명이 물을 공급받지 못하게 됐다. 사람들은 더러운 개울물을 마셔야 했고, 결국 12만 명이 콜레라에 감염돼 3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0년대 초 철도를 민영화한 영국에서는 탈선 사고와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그런데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김광재는 “코레일의 독점 운영으로 누적 적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철도를 민영화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영국 철도 민영화의 상징이던 레일트랙이 “누적 적자”로 결국 파산했다는 사실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착한 적자
게다가 전기, 가스, 철도, 교육, 의료처럼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부문에서 나는 적자는 ‘착한’ 적자고 꼭 필요한 적자다. 그만큼 대중의 생명과 안전과 안락한 생활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들이 대다수 노동자·민중에 재앙일 뿐인 민영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경제 위기와 관련 있다. 공기업을 팔면 정부로서는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사기업으로서는 새로운 돈벌이 원천을 얻을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필요도 있다. “철밥통” 운운하며 경제 위기의 책임을 공공 부문 노동자들에게 떠넘길 수 있고, 이런 속죄양 삼기로 시장과 경쟁이 최선이라는 믿음을 퍼뜨릴 수 있다.
이처럼 노동자·민중의 생명과 안전을 팔아 사기업 배를 불려 주는 것이 민영화의 본질이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과 생명에 직결되는 곳에서도 수익을 빨아먹으려는 저들의 탐욕을 저지해야 한다.
2002년 철도·발전·가스 노동자들은 38일 동안 공동으로 파업을 벌여 김대중 정권의 민영화를 막아 냈다. 당시 투쟁은 약점도 있었지만 정권을 위기에 빠뜨리고 지배자들을 자중지란에 빠뜨렸다. 2008년 촛불항쟁도 이명박의 공공서비스 민영화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이처럼 아래로부터 투쟁이 강력하게 건설된다면 점점 깊어지는 경제 위기 속에서 필사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박근혜 정권을 저지할 수 있다.
6월 1일 민영화에 맞선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대규모 결의대회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