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어린이집에 맞서 싸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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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무상보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부모들의 보육비 부담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특별활동 프로그램 명목으로 사교육이 버젓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여섯 살짜리 아이가 있는데,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도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영어와 한자교육을 하는데,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위해 영어를, 뿌리를 알아야 하니까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명목이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했을 때 어린이집 원장은 나라에서 공짜로 아이들을 보육할 수 있게 해 줬으니, 특별활동비 정도는 충분히 지출할 수 있지 않느냐며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물론 절대 강요는 아니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입학식 때는 어린이집이 임의대로 특별활동 과목을 선정해, 학부모에게는 그중 하고 싶은 프로그램만 표시하게 하고, 적힌 통장 계좌번호로 입금하라고 했다. 원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나는 아이가 이른 시기부터 영어를 배우는 게 자아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고, 어린이집에서 사교육을 과도하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특별활동을 신청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참여하는데 왜 내 아이만 참여시키지 않느냐며 함께할 것을 강요 비슷하게 ‘권유’했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특별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우리 아이는 교육 공간이 아닌 사무실 한 편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교실 뒤편에서 같은 반 아이들이 영어와 한자는 배우는 것을 보고만 있게 됐다. 집에 와서 매일 ‘나도 시켜 달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어린이집은 특별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고 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소외되고, 방임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화가 많이 났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아내와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일제고사 반대 투쟁을 하던 내게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돼 주던 아내도 내 아이가 혹시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며칠 동안 고민하고서 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부당하게 소외되는 것을 두고 보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어린이집 원장을 만나 문제제기를 하고,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벽을 보고 말하는 것 같은 반응이었다. 또 원장은 어린이집을 무시하느냐며 전화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술을 먹고 밤에 전화를 해서 횡설수설하는 등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방임
아내와 나는 보육노조와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의 조언을 듣고, 관리·감독 기관인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글을 썼다.
사교육 과목 선정 시 학부모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비민주적인 행태와 어린이집 운영위원이 공공연하게 이권에 개입하고 있는 상황, 또 사교육을 신청하지 않은 아이를 방임하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에도 상황을 알리고 연대 요청을 해 두었다.
시청에서도 실태를 확인하고선 내가 제기한 문제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
시청은 관내 어린이집 67곳의 사교육에 대한 설문조사와 해당 어린이집에 대한 감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 운영위원이 사교육 관련 이권에 개입하고 특별활동을 신청하지 않은 아이를 방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부모들은 사과문을 통해 특별활동을 신청하지 않은 아이를 방임한 것에 대한 사과와 프로그램 계획을 공지 받았다. 어린이집 운영위원도 새로 선출됐다.
설문조사 결과는 부모들이 특별활동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고 특별활동 프로그램 선정의 비민주성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음을 보여 줬다.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는 시청의 약속을 믿어 보기로 하고 이번 일은 일단락됐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내 아이의 불이익을 염려해 가만히 있었다면 이런 개선책은 없었을 것이다.
사회가 좀더 올바르게 나아가길 바란다면 나와 내 가족이 속해 있는 공간 주변의 문제부터 정확하게, 될 때까지 끝까지 싸워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바꾸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이권이 있기에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싸워서 무언가를 바람직하게 바꾼다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