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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당직 선거 쟁점 - 민주노동당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들

민주노동당 당직 선거 쟁점

민주노동당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들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지배계급의 의회 권력 독점에 균열을 일으켰다. 당의 의석수는 전체 의석의 3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노동운동 출신 당선자 대다수가 모인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은 한국 노동운동의 주류가 현실 정치에 본격 진입했다는 의미를 지닌다.”(〈한겨레〉 5월 19일치.)

그와 동시에, 민주노동당의 실험은 현실의 시험대 위에서 정치적 검증을 치르게 됐다. 벌써부터 기성 체제의 권력자들(기업주, 보수 언론, 국가 관료, 기성 정치인 등)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포위하고는 충고하고 가르치고 감독하고 있다.

10명의 노동자 의원들은 자본주의 의회 안에서 어떻게 노동계급의 염원을 대변할 것인가?

민주노동당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선거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보수 정당들과의 정책 공조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한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이다. 특히 정책위의장 선거에서 뜨거운 논란거리가 됐다.

보수 정당들과의 정책 공조?

주대환 정책위의장 후보는 “공조의 대상은 꼭 열린우리당일 필요가 없으며 한나라당과도 공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영구 후보도 “정책 공조가 가능한 부문이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www.voiceofpeople.org)

반면, 성두현 후보는 “지금은 공조를 거론하기보다 독자성을 분명히 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고, 이용대 후보는 “한나라당과의 공조는 국민들이 허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둘의 주장이 옳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사회적 기반은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다. 〈조선일보〉의 한나라당 출입 기자는 한나라당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나라당이 어떤 계층을 대변하는지 새삼 깨닫게 하는 장면도 있었다. 지난 13일 박근혜 대표를 면담한 강신호 전경련 회장과 현명관 부회장은 ‘지당한 말씀입니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민주당을 출입하면서 재계와 이렇게 호흡이 잘 맞게 대화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에서 재벌들로부터 8백억 원의 대선자금을 받았다. 이것은 한나라당의 더러운 부패 전력을 드러내는 한편, 그 당이 어떤 사회세력과 각별히 결탁돼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 준 사례였다.

한나라당 ‘소장파’들도 다를 게 없다. 이 자들은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국가보안법 개정,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해 “기존 보수층의 생각에 가까운 결론을 내[려 놓고는] 이를 대외적으로 발표할 경우 ‘수구 보수’란 비난을 듣지 않을까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조선일보〉 5월 25일치.)

민주노동당이 이런 당과 정책 공조한다는 것은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결과에 이르게 될 뿐이다.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처럼 주로 대자본가에 기반을 둔 당은 아니다.(2002년 대선에서 재벌들은 보험금 명목으로 노무현 선본에 80억 원을 건넸다.) 이 당은 소수 대자본가들과 주로 중간계급과 심지어 일부 피억압 대중 운동에 기반을 둔 포퓰리즘적 부르주아 정당이다.

그러나 결국 대자본의 기반 때문에 흔히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티격태격하다가도 마침내는 그 당의 보수적 정책을 추수했다.

이미 17대 총선 당선자 워크숍에서 ‘이라크 파병 재검토’는 쏙 들어갔고, 그 당의 ‘개혁파’들이 잔뜩 애드벌룬을 띠웠던 언론개혁은 벌써부터 뒷걸음질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대체로 개혁과 변화를 위한 운동의 막차를 타거나 더 많은 경우에는 탑승을 거부했다. 이라크 전쟁과 파병 문제는 뭉그적뭉그적대다 지지했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은 처음부터 분명하게 찬성했고, 부안 핵폐기장 건립 강행 계획도 그랬다.

이 당은 국회 밖 대중 투쟁이 강력할 때만 그제서야 마지못해 운동의 대의를 따르는 시늉을 했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은 물로 노무현과도 거리를 두지 않는다면 민주노동당의 지지는 감소할 것이다.

결국, 정책 공조 논란의 기저에는 누가 누구를 견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깔려 있다. 저들이 우리를, 아니면 우리가 저들을?

이것은 힘의 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국회 안에서 10명의 소인이 288명의 거인을 사로잡을 수는 없다. 거대한 대중 투쟁의 압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저들이 우리를 포로로 만들 것이다.

의회주의와 대중 투쟁

보수 정당과의 정책 공조 문제는 결국 의회주의와 대중 투쟁의 관계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 변화가 점진적이고 주로 투표에 달려 있는 것이라면, 다수가 열린우리당에 투표한다는 사실이 민주노동당 의원들에게는 커다란 심리적 압박이 될 것이다.

사실, 의회주의의 문제점은 그것이 주요 개혁을 가져다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때로는 심지어 개혁을 위한 투쟁에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흔히 개량주의 정치인들은 정치는 선거와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는 개혁이 국회와 정부의 색깔이 아니라 경제의 상태와 노동계급의 힘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줬다. 정부와 국회의 색깔이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는 뜻이다.

예컨대, 1950년대 영국에서 보수당 정부는 복지 국가를 확대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노동당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도입했다.

1970년대 중엽 이후 경제 위기 때문에 개량의 여지는 매우 제한돼 있다. 그래서 오늘날 서유럽에서는 우파 정부든 사회민주주의 정부든 모두 노동자들이 경제 위기의 대가를 치르도록 강요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서유럽에서 등장했던 사회민주주의 정부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우파처럼 행동해야 했다. 국유화나 부의 급진적인 재분배도 실행할 수 없었다. 심지어 수익성을 보장하고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통화 팽창 정책조차 국제 금융 자본가들의 압력 때문에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위기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체제에 도전하는 노동자 저항이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적의 제도, 즉 자본주의 의회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 그 곳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기구 못지 않게 노동자 계급에게 매우 적대적인 환경이다.

노동자 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의회주의만은 아니다. 적의 제도 안에서 싸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 1917년 혁명 전에 러시아의 볼셰비키가 보여 준 방식이다.

짜르 치하에서 볼셰비키는 합법 활동을 위한 기회가 심각하게 제약돼 있었다. 선거 자체가 대중 행동을 위한 기회가 됐다. 볼셰비키 의원단은 의회 밖 노동자 투쟁을 옹호하는 구실을 했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 권영길 대표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 오벌린을 만나 나눈 대화는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볼셰비키적 방식보다는 서구 사회민주당의 의회주의적 방식에 더 기울어 있다는 인상을 줬다.

오벌린은 이라크인들이 흘리는 피로 이윤을 뽑아 내고 있는 보잉 코리아의 회장이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에 보잉이 한국 정부에 F-15 전투기 구입을 강요했을 때 반대한 바 있다. 그런 자에게서 환심을 사려 하는 것은 노동계급과 이라크인들에 대한 모독이다.

권 대표는 “암참이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 모두 잘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계급과 자본주의 사이의 근본적 모순을 부정했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의 시기에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 모두 잘 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희생돼야 한다.

권 대표는 개혁 지상주의적 정치인의 태도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보다는 현존 체제와 국가 구조에 의해 더 많이 영향받기 쉬움을 보여 줬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의회주의와 대중 투쟁의 관계 문제는 다른 한편에서 당과 민주노총의 관계와 잇닿아 있다. 둘의 관계 문제는 창당 이래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다.

정책위의장 선거에서 주대환 씨는 “민주노총의 요구가 있더라도 이를 ‘걸러서’ 받아들여 당이 주도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관계는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노동조합원의 의식은 이중적이다.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착취를 경험하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조건과 임금을 둘러싼 상시적인 참호 전투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사회 현실을 드러내곤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계급적 각성을 경험한다. 이런 계급 의식은 노동조합을 매개로 민주노동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민주노동당원의 규모는 민주노총 조합원보다 작고 즉각적인 계급 경험에 덜 영향받는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원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유동성이 강할 수 있다. 당 활동가들은 논쟁과 시위와 캠페인에 참가할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수동적인 당원들은 우파 사상에 더 많이 노출돼 있고, 노동조합과의 연계가 약화된다면 이들의 우경화를 부추길 수 있다.

주대환 씨는 바로 이 점, 즉 당이 계급 정당으로 비쳐지는 것을 꺼리는 듯하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의 70퍼센트가 민주노동당에 투표했다. 더구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아직 결정적 패배를 경험하지 않은 전투적인 노동자들이다. 따라서 당 내에서 민주노총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것은 당분간은 실현 불가능한 희망사항이다. 아직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이 쉽게 지울 수 없는 사회적 상징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모호함을 선호한다. 그리고 말하지 않고 실행한다. 지난 중앙위원회에서 당 지도자들은 논쟁을 통해 설득하기보다는 무대 뒤에서 조율하는 방식으로 농민을 과잉 예우하는 결정을 통과시켰다.

주대환 씨는 당의 이념은 “민주적 사회주의”이며 “SI[사회주의 인터내셔날]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SI는 냉전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국 노동당이 주도한 SI의 주요 구실은 반공주의적 십자군을 동원하고 반공주의에 좌파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1949년에 친서방적·반공주의적 당을 제외한 나머지 당들은 모두 SI에서 축출됐다.

1951년 7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대회는 이렇게 선언했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 이래, 공산주의는 국제 노동자 운동을 분열시켜 왔고, 따라서 수많은 나라에서 수십 년 동안이나 사회주의의 성취를 지체시켜 왔다.”

주대환 씨가 미국의 대북 압력에 대해 양비론적 태도를 취하고, 우파와 구별되지 않는 방식으로 북한 비판을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론, 이용대 후보처럼 북한을 사실상 옹호하는 것도 잘못된 태도다(6면을 보시오).

민주노동당의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선거가 한창이다. 이 선거에서 되도록 노동자 중심성을 견지하고 대중 운동을 지향하는 좌파 지도자들이 당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회주의에 경도되고 대중 투쟁과 거리를 두고 계급보다 국민을 선호하는 지도부가 구성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개혁 성취에 이르는 길과 더 멀어지게 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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