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노동자 연대〉 구독
미국의 다급한 처지를 드러내다
김용욱
주한미군 제2사단 중 일부 병력이 이라크로 차출될 예정이란 발표가 나온 후 보수 언론들은 온통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원래 주한미군은 이른바 ‘럼스펠드 독트린’에 따라서 지상군을 줄이고 기동성 있는 첨단군으로 재편될 예정이었다.
주한미군의 갑작스런 차출이 이라크 추가 파병 지연에 대한 보복이라는 우파들의 주장은 억지이다. 진실은 이라크인들의 격렬한 저항과 심각한 외교적 고립 때문에 미국이 다급하게 군대를 차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황은 지난 두 달 간 현기증이 날 만큼 빠른 속도로 악화돼 왔다. 4월 초에 팔루자와 나자프를 포함한 대규모 봉기가 발생했으며, 5월 초에는 아부 그라이브 감옥의 학대 사건이 폭로됐다.
그리고 스페인이 이미 군대를 철수했고 최근에는 이탈리아마저 철군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원래 올해 1월부터 제2차세계대전 이래 최대 규모의 세계적 미군 순환·재배치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 상황 악화 때문에 이것은 엉망이 됐다. 이라크에 10만 명 규모의 미군만 배치한다는 계획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오히려 국방부에서는 현재 13만 8천 명에다 추가 파병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큰소리
또한 미군의 구성도 갈수록 경장비로 무장하고 훈련 수준도 낮은 주방위군과 예비군 중심으로 되고 있다. 이 과정도 순조롭지 않았다. 이라크에 새로 배치된 주방위군 중 최소한 1만 명은 파병 일주일 전에야 소집이 통보됐고, 추가로 소집된 8천 명은 파병이 취소됐지만, 계속 전황이 악화되면서 그 중 4천 명이 다시 소집됐다.
이번 발표가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후퇴를 계획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지 W 부시는 중동에서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확대하고 싶어한다.
럼스펠드가 2003년 1월에, 동시에 두 곳에서 전쟁을 벌일 수 있다고 큰소리쳤을 때 이라크 외에 염두에 둔 곳은 다름 아닌 한반도였다. 미군을 전진 배치하겠다는 4개 지역 중 3곳이 아시아·태평양에 위치해 있다.
군비 증강
그러나 이번 재배치는 ‘공백’을 보충하는 분명한 후속조치 없이 발표됐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여러 대안이 논의됐지만 “뚜렷한 결론 없이 끝났다.”
이것은 미국이 군사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미국의 〈피츠버그 타임스〉는 “[제2사단] 재배치는 미국이 모든 곳에서 원하는 것을 할 만큼 충분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 줬다”면서, “부시 행정부는 군사력을 사용한 선제 공격으로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하지 말고 우선순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라고 충고했다.
노무현은 미군 재배치가 가져올 ‘대북 공백’을 메운답시고 ‘협력적 자주국방’을 들먹이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몇 년 간 수십 조 원을 들여서 첨단 무기를 구매한다는 계획이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의 우선순위가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준 것이다.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발표 이후 탄핵 후 폭풍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우파들은 자신들이 ‘컴백’할 수 있는 호재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듯했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철저하게 악용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약발은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55퍼센트가 주한미군 차출에 대해 ‘안보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17대 국회에서 이라크 파병은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개원하자마자 파병철회를 제기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열우당은 이라크 파병 문제로 더욱 분열이 심화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