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天安門) 항쟁 15주년

중국 지배자들을 괴롭히는 악몽

이수현

지난 4월 19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톈안먼(天安門) 광장 일대에 비상조치가 실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동아일보〉 4월 20일치). 톈안먼 ‘사태’ 15주년을 앞두고 예상되는 시위들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중국 지배자들이 15년 전의 ‘사태’를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왜 두려워할까?

1989년 4월 15일 이른바 “개혁파” 후야오방이 사망하자, 장례식에 모여든 15만 명의 학생들은 톈안먼 광장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그들은 민주 선거, 언론·집회의 자유, 부패 종식 등의 요구를 내놓았다.

학생들의 그런 저항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1980년대 중국 경제 성장의 혼란스런 결과였다. 경제 성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았지만, 불안정과 빈곤도 증대시켜 놓았다.

톈안먼 광장의 반란을 흔히들 학생 시위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처음에 시위를 시작하긴 했지만, 곧바로 수많은 노동자들과 평범한 시민들도 그 시위에 동참했다. 그들은 거리에서 학생들의 주장을 들으며 공감했고 동지애와 연대감을 느꼈다.

정부는 마비된 듯했고 거리는 대중이 장악한 듯했다. 한 달 남짓 시위가 계속되자 5월 19일 중국 지배자들은 질서 회복을 시도했다.

당시 국가주석 양상쿤은 베이징이 무정부 상태 같다고 불평했다. 당시 총리 리펑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인민해방군에 시위 진압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것은 시위를 격화시키고 고조시킬 뿐이었다. 수도제철·제강공장 노동자들처럼 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도 있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병력 수송을 저지하기 위해 전기를 차단해 버렸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베이징 전역에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노동자들의 의도는 군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군대의 진입 속도를 늦추고 병사들과 논쟁을 해 시위대 편으로 넘어오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병사들이 거의 다 노동자와 학생 들 편으로 넘어왔다. 이제 반란이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목격자는 “48시간 동안 베이징은 완전히 민중의 손 안에 있었다.” 하고 전했다. “이제 도시 전체를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통제했다. 사람들은 5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인터내셔널 가를 부르고 또 불렀다.”

다른 도시들에서도 노동자들이 동조 시위를 벌였다. 특히 홍콩에서는 주민의 6분의 1이나 되는 1백만 명 이상이 시위 행진에 참가했다.

도살장

그러나, 비극이게도, 운동을 계속 전진시킬 수 있는 전략이 없었다. 학생 지도부는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중국의 “국익”을 해치는 것이며 노동자들이 병사들한테서 무기를 빼앗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운동이 언제까지나 정지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운동은 전진하거나, 아니면 지배자들이 선제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군대를 멈춰 세웠을 때 드러난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전환되지 못하자, 리펑과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은 새로운 군대를 투입해 시위대를 최종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6월 3일 인민해방군 탱크들이 바리케이드를 돌파하면서 톈안먼 광장의 학살은 시작됐다. 진압군의 전술은 간단했다. 장갑차를 앞세운 병사들이 도보로 전진하면서 시위대를 무차별 살해했다. “마치 도살장 같았다.”

군대가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하는 데는 나흘이 걸렸고 수천 명이 살해당했다. 공장 노동자의 아들인 19세 청년 왕웨이린이 맨 몸으로 탱크들을 막아 선 인상적인 사진은 그런 저항의 상징이 돼 전 세계로 널리 퍼졌다(위 사진). 그는 나중에 비밀리에 처형당했다.

중국 지배자들은 잔혹한 탄압으로 겨우 통제력을 되찾고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속 성장을 구가하는 중국 경제는 세계의 성장 동력으로 떠받들어진다.

그러나 연평균 10퍼센트 이상 성장하는 중국 경제가 과연 세계의 ‘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크리스 하먼의 말처럼, 중국식 “모델”의 특징인 저임금, 농촌 빈곤, 실업, 사양 산업의 인력 감축 등은 우연적 특징이 아니라 핵심적 특징이다(〈다함께〉 25호 참조).

오늘날 중국의 연평균 임금은 약 130만 원이다. 이 형편없는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자들은 매주 60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

그리고 건설 현장 같은 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시간당 임금이 아니라 성과급제 임금(개수임금)을 받는다.

게다가 전반적인 노동 과잉 때문에 고용주들은 흔히 보름이나 한 달이 지나도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며, 연말에 지급하겠다거나 공사가 다 끝나면 지급하겠다는 약속만 할 때도 있다.

사장들이 중국을 떠나거나 공사가 완공되지 못해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은 바로 이런 지독한 착취에 기초하고 있다.

또, 중국의 억압적인 정치 상황이 이런 가혹한 착취를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의 노동조합은 모두 국가 관료들이 지배한다. 그들의 모토는 “생산성 향상”이며, 경영진이 노조 대표들을 선발한다.

농촌의 상황은 훨씬 더 열악하다. 농촌 남성의 약 80퍼센트, 얼추 3억 3천만 명이 실업자다.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들어오고 그들(유민 : 流民)은 대부분 ‘산업예비군’이 된다. 그런 사람들이 상하이에만 5백만 명이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자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광둥과 후베이 성(省)에서는 공장 폐쇄와 하루 11시간 노동에 반대하는 비공인 파업들이 일어났다.

지난 몇 년 동안 톈안먼 광장에는 정부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몰려와 시위를 벌이거나 심지어 분신자살까지 시도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또, 급속한 도시재개발로 땅을 수용당한 사람들이 보상비가 적거나 강제 이주당했다며 톈안먼 광장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15년 전 톈안먼 광장은 끔찍한 학살로 얼룩졌다. 그것은 중국 지배자들에게도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 즉 노동자 계급이라는 사회 세력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이들은 중국 지배자들의 악몽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세력이다. 그들이 언제 그 힘을 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야말로 우리의 ‘모델’이 될 것이다.

심화하고 있는 중국의 불안정

김용욱

4월 중순 중국 총리 원자바오가 중국이 경기 ‘과열’ 상태에 있음을 인정하고 성장률을 낮추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전 세계 주식 시장이 동반 하락했다.

한 경제 평론가는 아마 세계 지배자들이 공통으로 느꼈을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갑자기 중국의 경제 기적이 덜 기적적이고, 구식의 투자 거품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거품은 곧 터질 듯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중국 시장에 의존해서 성장했던 주요 아시아 국가들의 전망에도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과 한국 무역액 증대의 3분의 1과 절반이 중국 시장의 성장 덕분이었다.

4세대

지금 중국 경제가 처한 상황은 중국 지배자들의 경제 전략이 누적된 결과이다.

주룽지와 원자바오로 대표되는 중국 공산당의 4세대 지도부들은 두 가지 연관된 경제 목표를 추구했다. 하나는 이전 지도자인 덩샤오핑과 장쩌민이 개방 이후 추구했던 8∼9퍼센트의 고성장을 지속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성장에서 국내 소비의 비중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이 두 목적은 지금까지 기괴한 형태로 달성돼 왔다.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9.3퍼센트이지만, 이것은 주로 매년 20퍼센트에 가깝게 성장하는 연안 지역 경제 덕분이었다. 국내 소비 증가는 엄청난 투기 붐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 덕분에 상하이의 부동산 가격은 보통 소비자가 살 수 없는 수준이고, 시멘트와 철강 같은 원자재 가격은 2년 동안 거의 갑절로 상승했다.

중국 관료들은 성장 속도를 완만하게 늦춰, 이러한 모순된 발전 과정이 장차 가져올 경제적 파국을 피하려고 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1978년 개방 이후에 비슷한 시도를 두 번(1987년과 1993년) 한 경험이 있다.

두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중앙 정부의 어중간한 대책에 지방 관료와 (이들과 밀접히 연관된) 사기업들이 그다지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중앙 정부는 관료들에 대한 직접적 단속과 금리 인상을 포함한 더 극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경기 연착륙이 아니라 경착륙을 불렀다.

특히 1983년부터 1986년까지 4년에 걸친 경기 ‘과열’ 이후 시도된 연착륙은 결국 1989년 여름 톈안먼 항쟁을 부른 1988년 겨울∼1989년의 경제 위기로 마감됐다.

지배 관료의 처지에서는 이번에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경기 호황은 1997년부터 시작됐고, 1980년대보다 훨씬 경기가 과열돼 있다.

정부의 경기 조정은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됐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올 1/4분기 성장률은 9.8퍼센트에 달했다. 금리 상승이라는 좀더 적극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 관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은 조심스럽다.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는 최근에 중국 정부가 당면한 어려움을 이렇게 요약했다.

“[중국 정부가] 투자를 둔화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지만 … 높은 대출 이자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연안 도시들뿐 아니라 침체된 농촌 지역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고,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국영기업들이 채무 이자를 지급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또한 투기성 외자를 유인할 것이고, 중앙정부는 위안(元)화 절상 압력을 받을 것이다. 위안화 절상은 수출에 타격을 주고, 그와 동시에 더한층의 절상을 기대하는 더 많은 외자가 몰려들 것이다.”

외부 상황도 우호적이지 않다. 중국의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의 경기 회복은 불안정할 뿐 아니라 금리 인상이라는 복병도 숨어 있다. 또한 진정한 원인이 중국 경제에 있는지를 떠나 석유 등 주요 수입 원자재의 국제 가격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방조

1989년의 경험에서 보았듯이, 중국 지배자들이 연착륙에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는 단순히 경제적인 손실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동안 노동자와 농민들은 충분한 고통을 감내해 왔다.

농촌에서는 농촌신용협동조합의 채무를 받으려는 경찰을 피해 농민들이 자기 밭에 구덩이를 파고 숨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일부 노동자들은 단순히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서 분신을 해야 할만큼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작은 투쟁도 순식간에 다른 부문으로 번져나갈 수 있다.

따라서 중국 지배자들은 정치적 이유에서라도 텐안먼 항쟁 15주년이 되는 해에 경제적 경착륙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당장 단호한 조처를 취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은 모순의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을 끌면서 모순이 더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난 2월에 원자바오는 “중국은 성공적으로 산업화와 현대화를 이루거나, 아니면 경제적 간격과 사회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발전이 쇠퇴하거나 심지어는 사회적 혼란이나 저항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쩌면 중국 지배자들은 당분간 호황을 더 유지하면서 발전이 쇠퇴하는 것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발전의 혜택에서 배제당한 노동자와 농민들의 저항을 영원히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