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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과 비정부기구들(NGOs)

비정부기구들(NGOs)은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구실을 한다고 크리스 하먼은 말한다

몇 달 전 파키스탄에서 좌파 활동가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나에게 계속 제기한 질문이 하나 있었다. “도대체 NGOs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그들이 투쟁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까?” 걱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마 서방 활동가들이 그 질문을 들었다면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흔히 서방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NGO들을 기업과 정부의 잘못을 폭로하는 활동가들이라고 여긴다. 나오미 클라인은 《노 로고》[중앙M&B]에서 NGO들이 기업의 권력을 마비시키는 ‘벌떼’의 일부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NGO들 가운데 운동하는 NGO들은 극소수다. 다수는 사뭇 다른 구실을 한다.

신자유주의 확산의 부수 효과 중 하나는 각국 정부가 자발적 기구들을 이용해 국가가 제공해야 할 서비스를 대체하는 정책들을 의식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모잠비크에서는 NGO들이 교통 체계 전체를 운영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노르웨이 난민회의의 코너르 폴리가 말했듯이 NGO들이 “공공 서비스, 보건의료, 교육 등 국가 기능의 책임을 떠맡아 왔다.”

1990년 세계적으로 14만 5천 개였던 NGO들의 수가 10년 뒤 25만 5천 개로 크게 늘어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NGO들로 유입되는 돈도 크게 증가해, 오늘날 영국에서만 [NGO들의] 총지출이 50억 파운드(약 10조 6천6백억 원)를 넘는다.

그런 NGO들의 다수는 좋든 싫든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서비스의 격차를 싼값에 메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권한 부여” 등의 용어를 사용해 그들이 악화하고 있는 격차를 미봉책으로 땜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호전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파키스탄 활동가들의 비판은 단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NGO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운동을 주도하는 NGO들을 겨냥한 비판이기도 했다.

그런 NGO들은 민중 운동들을 일탈시킨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들은 다른 기층 운동가들과 달리 돈을 갖고 있고, 그 돈은 서방 다국적기업들이나 정부 기구들이 운영하는 재단들에서 나온다. 덕분에 그들이 외부에서 어떤 지역으로 들어가 그들의 운동을 진전시키는 데 필요한 재정과 자원을 현지 주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현지 활동가들이 대가를 치른다. NGO들은 기부자들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자신들의 요구를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못지 않게 심각한 점으로, NGO의 돈은 특권 활동가층을 만들어 내고 그들을 주위 민중과 단절시키는 경향도 있는데, 이들은 NGO의 행운을 계속 유지하는 데 몰두하는 소관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NGO들은 자신들이 장려한 운동들이 체제 전체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단일 쟁점에 국한시키며, 아래로부터 통제받지 않는 지도자들을 선정한다. 그런 비판은 매우 실질적인 문제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많은 나라에서 운동 NGO들의 영향력이 좌파의 영향력보다 훨씬 더 급속히 커지고 있다. 이 점은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에서 매우 분명히 드러났다. 당시 NGO들이 데려온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연설들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많은 NGO 활동가들은 좌파 출신이거나 잠재적으로 좌파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구 좌파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나가떨어졌다. 그들의 다수는 환멸, 특히 동구권 해체 이후의 환멸 때문에 세계 체제와의 전면 충돌이라는 사상에서 후퇴해 각종 단일 쟁점 운동으로 돌아섰다.

NGO들의 대거 성장은 이런 변화에 딱 맞아떨어졌다. 그 덕분에 NGO 활동가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낡은 관념들을 보존할 수 있었고 그런 활동을 하면서 봉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한때 골수 극좌파였던 사람들이 지금 많은 NGO들을 관리하는 방식이 바로 이런 것이다.

좌파 조직들이 더는 선동하려 하지 않는 쟁점들을 제기함으로써 NGO들은 지지를 얻어 냈다. 그 결과 제3세계 나라들에서 노동자·농민·빈민의 조직화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그들밖에 없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부정적 특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단일 쟁점 선동을 통한 개혁의 가능성이 줄어들자 상근 활동가들은 민중과 체제를 화해시키는 중재자들이 되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반발을 초래했다. 많은 NGO 활동가들과 특히 그들이 조직한 기층 운동 단체들은 이런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일부는 심지어 작은 성과라도 얻기 위해서는 단일 쟁점 운동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분화는 완전하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도 NGO들이 돈을 모으고 조직하는 방식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없다. 그 활동가들은 사람들을 투쟁에 끌어들이지만, 그런 투쟁이 NGO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흔히 그 전투성을 억제하기 십상이다.

한 가지 제한적 방식에서 운동 NGO들은 훨씬 더 오래된 현상, 즉 개량주의적 노동조합 운동을 닮았다. 개량주의적 노동조합 운동도 사람들을 조직해 체제의 개혁을 요구하지만, 체제 전체에 맞서 싸우는 전투적 투쟁을 방해하는 통제된 방식으로 그렇게 하려 한다. 또, 특권적 상근간부층을 갖추고 있는데, 이들은 새로운 활동가들과 기층 민중을 분리시키려 하고, 새 활동가들을 자기네 방식과 구조에 적응시키려 한다.

진정한 좌파의 과제는 그런 관료 구조들을 통제할 수 없다며 그냥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기구들을 완전히 신뢰해 그에 휩쓸려 들어가거나 그들의 특권을 공유하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전술적으로 그들에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즉, 공동전선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사람들을 운동에 끌어들여 공식 구조들에 구현된 많은 개량주의 관념들과 충돌하게 만드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비슷하다는 점이 지나치게 강조돼서는 안 된다. 대체로 NGO들은 노동자들처럼 응집력 있고 강력한 집단들을 조직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억압받는 집단들의 일부를 조직하는 반면, 최근 몇 년 동안 좌파는 흔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는 NGO들이 조직한 사람들을 더 광범한 투쟁으로 끌어들일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운동 NGO들이 체제의 부속물일 뿐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개량주의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의 불만을 왜곡된 방식으로나마 부분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많은 NGO들이 시애틀·제노바·피렌체·파리·뭄바이에서 시위에 참가했던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참여를 환영함과 동시에 그들의 방법이 우리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파키스탄 동지들이 NGO들을 비판한 것은 옳았다. 그들이 틀린 점은 우리가 새로운 운동을 건설할 수 있는 방식이 NGO들과 그 주위 사람들에 등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