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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
우경화하는 일본 지배계급이 ‘천황’을 떠받드는 이유

일본 총리 아베와 내각 수뇌들의 막말이 끊이지 않는다. 총리 출신의 재무장관 아소 다로는 최근 평화헌법을 언급하며 “나치의 개헌 수법을 배워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 김후련 지음, 책세상, 580쪽, 23,000원

지난 4월 아베 내각은 일부 우익 단체들의 민간 행사였던 ‘주권 회복 기념일’을 천황까지 초대한 정부 공식 행사로 격상했다. 여기서 아베를 포함한 참석자들은 수십 년 동안 금기시돼 온 구호인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쳤다.

일본 제국 시기에 ‘천황’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당시 일본 지배계급은 천황을 ‘신의 자손’이라 선언하고는, 국민들에게 천황을 숭배하라고 강요했다. 천황의 이름으로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제국주의 침략을 자행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한 후, 천황은 권력자에서 상징으로 격하됐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일본인들은 여전히 천황제가 일본의 전통이자 문화라고 인식한다. 일본의 주류 언론과 우파 정치인 들이 여전히 천황제의 ‘신성함’을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신화와 역사를 심도 있게 연구한 김후련 교수가 쓴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낱낱이 까발린다.

저자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토대가 된 《고서기》, 《일본서기》가 쓰인 7세기부터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오늘날 과거사 부정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살핀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일본의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실제로는 근대화와 제국주의를 추진한 일본 지배계급이 만들어 낸 사상임을 증명한다. 즉 “만들어진 전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역사에서 천황은 수백 년 동안 권력에서 뒷전이었다.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하고자 했던 천황과, 봉건체제를 요구했던 사무라이(무사) 계급 간의 계급투쟁에서 천황이 매번 패배했기 때문이다. 사무라이 계급 안에서 권력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천황은 완전히 잊힌 존재였다.

그러나 사무라이 계급은 근대화를 요구한 부르주아지와의 계급투쟁에서 패배해 무너졌다. 새로운 지배계급은 일본을 자본주의 체제로 운영되는 서구적 국민국가로 바꾸고자 했다.

하지만 신정부가 추진한 징병제와 조세제도는 평민들에게 분노를 샀다. 곧 각지에서 정부의 정책에 저항하는 소요가 일어났다.

신정부는 안정적인 중앙집권체제를 세우려고 천황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부각했다.

신정부는 천황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써 놓은 천 년 전의 신화를 역사로 ‘만들며’ 천황을 신격화했다. 헌법을 제정하면서 일본은 “천황이 통치하는 국가이며, 천황은 신성불가침하다”고 규정했다. 수백 년 동안 없었던 황실 의례를 재구성하고, 사라졌던 황릉들을 임의로 조성했다.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반대하거나, 천황제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을 폭력으로 철저하게 탄압했다. 이렇게 불과 수십 년 만에 국가의 정체성이 천황에게 집중됐다.

이처럼 천황제는 일본 자본주의 탄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공황 속에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더욱 확대되고 재생산됐다. 침략 전쟁과 잔혹한 학살 들은 모두 천황의 이름과 명령하에 자행됐다.

전쟁에서 패하고 일본에 미군정이 들어서자, 천황이 전쟁 범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나 미군정을 이끌던 맥아더는 천황제를 존치하기로 결정했다. “천황제를 폐지하면 일본인들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며,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이 확장되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정은 전범들을 석방하고, 전범들이 공직에 오르지 못하게 한 조처도 해제했다. 그 결과 제2차세계대전 후 새로운 일본 정부와 정치계는 우파 인사와 전범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전쟁 전처럼 천황을 옹호했고,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의 외조부도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오늘날도 미국은 자신의 제국주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 전범의 후예들이 일본을 군사 대국화하는 것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방대한 자료와 사례 들을 바탕으로 껍데기뿐인 일본의 국수주의를 논박하는 이 책은 충분히 읽어 볼 가치가 있다.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진 당대의 경제적 조건을 심도 깊게 이해하고 싶다면 앤드류 고든이 쓴 《현대일본의 역사》(이산)를 함께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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