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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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국제연락간사인 최일붕이 영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인터뷰를 했다. [ ]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최일붕과 이수현의 첨가이다.
요즘 한국 권력자들은 한국 경제가 위기인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특히 유가 인상,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중국의 긴축 정책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외부적 요인들입니다. 현재 세계 경제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세계 경제의 전체적 모습은 사실상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유럽 대륙,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세계 대부분 지역이 그런 상황입니다.
저는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에 성장의 진정한 엔진이었던 미국 경제가 2000년에 과잉축적과 과잉설비의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 경제는 막대한 재정 부양책 덕분에 제한적 회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가가 금리를 1퍼센트대로 낮추고 부자에 대한 세금을 대폭 삭감하고 주택과 자산 가격에서 새로운 투기 거품을 조성하는 등 부양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거품 현상의 유형 변화입니다. 즉, 1990년대에 유력했던 주식 시장 거품에서 다른 부문들, 특히 주택 시장 거품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미국의 경기 부양]은 근본적으로 매우 취약한 경기 회복입니다. 현재 성장률이 꽤 높긴 하지만 말입니다.
미국 경제는 급속히 성장하는 중국 경제와 공생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올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할 것이며 그 덕분에 동아시아 경제도 회복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 경제도 중국과 무역을 늘리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중국 경제와 미국 경제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은 상당 부분 사적 자본주의와 국가 자본주의를 결합시킨 결과이며 미국 다국적기업들은 특히 미국 시장을 겨냥한 저가 제품 생산 기지로 중국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금융 수준에서도 매우 긴밀한 상호 연관이 있습니다. 미국은 막대한 국제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외 부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특히 아시아와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 같은 나라로부터 자본 유입을 통해 그 부채를 조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중국이 미국에 상품을 수출해서 달러를 벌어들이고 그 달러를 다시 미국에 빌려 줘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의 대가를 지급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매우 아슬아슬한 균형이 유지되는 상황이며 그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요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중국 경제의 내부 상황입니다. 중국 정부는 경기 과열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과연 통제가 가능할지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자본주의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방식을 고려하면, 그것[과열 경기 진정책]은 위험 부담이 매우 큰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가 [인상] 같은 뜻밖의 변수들도 있습니다. 최근 유가가 상당히 올랐는데, 그 원인은 복합적인 듯합니다. 한편으로 중국이라는 요인이 있습니다. 중국은 매우 급속히 성장하면서 세계 전역에서 원자재를 빨아들이고 있으며, 석유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중국의 호황과 미국의 회복이 겹친 것이 유가 인상의 주요 배경이라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요인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중동 정치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의 석유 시설들에 대한 공격뿐 아니라 세계 석유 시장을 좌우하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도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9·11 이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우호] 관계가 파괴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상황 통제가 훨씬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정치적 요인들의 상호 작용이 유가를 급등시켜 가뜩이나 취약한 세계 경제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데 일조할 가능성이 큽니다.
“신(새)” 제국주의는 “구(옛)” 제국주의와 어떻게 다릅니까?
먼저 우리는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역사의 한 단계로 이해합니다.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고, 자본들 간의 경제적 경쟁과 국가들 간의 지정학적 경쟁이라는 두 가지 경쟁이 결합된 단계 말입니다. 경쟁에는 두 차원, 즉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경쟁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국주의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이 두 가지 경쟁의 상호 관계가 취하는 정확한 형태는 역사적으로 변해 왔습니다. 그래서 20세기 전반기에는 대체로 엇비슷한 힘을 보유한 주요 자본주의 열강, 즉 영국·독일·미국·프랑스·러시아 등의 고전적 제국주의 경쟁이라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제가 “초강대국 제국주의”라고 부른 국면이 나타났습니다. 당시에는 서로 경쟁하는 두 제국주의 진영, 즉 미국 진영과 소련 진영이 세계를 분할했습니다.
소련 몰락 이후 새 제국주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이 신제국주의는 조금 복잡한데, 왜냐하면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경쟁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둘이 20세기 전반기보다는 더 분리돼 있기 때문입니다. 서방 자본주의 진영 안에서는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세 부분인 미국·유럽연합(EU)·일본 사이에 심각한 경제적 긴장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들은 단결해 있으며 똑같은 서방 진영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탈냉전 시대에 우리는 미국이 서방 자본주의에 대한 지도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단결한 서방 자본주의 진영을 정당화해 주었던 소련이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특히 부시 정부는 미국의 세계 지배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서 다른 주요 자본주의 열강보다 훨씬 더 우월한 미국의 군사력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음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일부 열강이 9·11 이후 미국 편에 붙었지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추진할 정책이 아니라 전술적 책략이었음은 지각 있는 사람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충돌 가능성이 꽤 높은데, 특히 대만 독립을 위해 [중국과의] 대결 정책을 추구하는 대만 총통[천수이볜]을 부시 정부가 지지한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을 과시하기 위해 감행한 이라크 전쟁도 미국과 프랑스·독일 사이에 중요한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국주의간 충돌의 두 측면[경제적 측면과 지정학적 측면]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경제 면에서는 훨씬 더 평준화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제력은 다른 열강의 도전 의지를 억제하는 군사력보다 훨씬 덜 우세합니다. 비록 그들이 미국에 군사적으로 도전하기를 바라지 않고 또 이를 두려워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들은 미국에 반대해 책략을 부릴 수는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현재 상황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제국주의는 안정적입니까?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앞서 말씀드린 내용의 함의는 신제국주의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세 가지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장기적인 요인입니다. 세계 경제력 분포는 미국에 불리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중국 문제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미국 지배계급 내에는 중국의 호황이 미국 제국주의에 매우 위험하다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겠지만, 중기적으로는 중국이 지금처럼 고속 성장한다면 동아시아 지역 패권을 둘러싸고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여기에 미국과 EU 사이의 긴장―저는 그 긴장의 근원이 경제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을 덧붙여,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 상황은 미국에 유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시 정부의 국방부 부장관 폴 월포위츠 같은 자들이 바로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세력 저울은 우리에게 불리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9·11이 가져다 준 기회와 우리의 군사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미국의 세계 지배력을 확실하게 굳혀야 한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상황은 그들 뜻대로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둘째, 앞서 지적했듯이, 미국이 추구하는 일방주의적 정책들은 부시 정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클린턴 정부 시절 시작된 것입니다. 미국이 그런 정책들을 추구하게 된 데는 앞서 말한 그런 갈등과 절차 무시 경향이 반영돼 있습니다. 절차 무시 경향은 미국과 대등한 체하거나 대등하다고 착각하는 동맹국들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비롯하는 모종의 타협이나 정책 결정 지연을 참지 못하고 미국의 군사력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하는 경향입니다. 미국 일방주의의 진전은 기존 관계, 특히 서방 자본주의 진영의 핵심인 대서양 양안(兩岸)의 미국과 주요 유럽 자본가 계급 사이의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번째 불안정 요인은 이라크의 상황입니다.[이 문제는 다음 질문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이라크 전쟁과 그것이 세계 정치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라크 전쟁이 입증한 것과 이라크 전쟁의 현황을 살펴보죠. 요즘 CNN을 보면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년 전에 CNN은 이라크 침략과 정복에 대해서 과거 시제로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현재 시제로 이야기합니다.[이라크에서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인 듯함.]
이라크 전쟁은 두 가지를 입증했습니다. 재래식 전쟁터에서 탱크 따위의 [재래식] 무기로 미국에 도전했다가는 누구든 박살날 것이라는 점이 그 하나입니다. 가슴 철렁한 일이죠.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미국 권력의 한계도 보여 주었습니다. 재래식 전쟁으로 미국에 도전하는 어리석은 자를 군사적으로 파괴하는 것과 한 나라, [그것도] 이라크 같은 큰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인구가 많고 구성이 복잡하고, 정치적으로 능동적인 국민이 미군의 자국 주둔을 원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전쟁 전에 완전히 예견할 수 있었던 문제입니다. 럼스펠드 같은 자들의 이라크 점령 이후 대처 방안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 미국 권력자들 내부에서는 분노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지금 미국은 매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라크 내에서] 무장 저항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는 신문 인터뷰에서 적어도 내년 1월 “총선” 실시 전까지는 폭력 사태가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미국에게 골치 아픈 이유는, 반란은 성장하는데 이에 대처할 미군 ― 육군 말입니다 ― 이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태를 조장한 것은 럼스펠드의 군사 독트린이었습니다. 럼스펠드는 미국 육군을 비교적 소규모의 첨단 기동군으로 재편해 전쟁터에서 적을 파괴하는 능력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군은 한 나라를 지배·통치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유 병력도 없습니다. 그들이 왜 주한미군 거의 4천 명을 빼내려고 하겠습니까? 병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군사] 전문가들이 럼스펠드가 미국 육군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어려운 조건에서 이라크에서 장기 복무한 미군 병사들이 지치고 힘들어하면 소규모 미국 육군이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육군은 50만 명 규모입니다. 한국 육군도 틀림없이 그보다 많을 겁니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력을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통해 중동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반대 세력을 굴복시키려는 부시 정부의 전략 목표 하나가 어긋나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보기로는 한국의 우파들이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때문에 “안보공백이 생겨날 것”이라고 주장하더군요. 저는 북한이 공격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을 손봐줄 수 있다는 럼스펠드의 위협은 지금으로선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종의 농담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상황은 아주 심각합니다. [아부 그라이브 감옥의] 고문은 단순히 역겹거나 어리석은 몇몇 병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체계적인 것이었으며, 그 고문 사실이 드러난 데서 비롯한 도덕적 위기는 미국의 처지를 국제적으로 약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내부의 위기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이라크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은 아주 현실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은 어떤 의미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입니까?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다양한 측면에 저항하는 것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즉,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점점 더 득세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금융 기구들이 강화시킨, 그러나 거대 다국적기업이나 초국적기업들에 유리하다는 게 너무 뻔한 일련의 자유시장 정책들에 반대하는 것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지금 그 운동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그들은 자신이 자본주의에 반대하지 않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할 뿐이라거나 기업의 권력이 통제돼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라는 등의 답변을 듣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운동을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부르더라도 이것이 자본주의 폐지를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단순히 기존 체제의 특정 측면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논리 자체에 도전하는 운동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자본주의 작동 방식의 핵심인 상품화와 사유화 논리 전체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운동의 논리가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비록 운동 내부의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분명히 깨닫고 있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그 때문에 “반자본주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붙인 꼬리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것이 가장 좋은 꼬리표라고 생각해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에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그 운동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습니까?
저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매우 중요한 국면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성장했으며 일부 전술적 성공들도 거뒀습니다. 그런 성공에 자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회담이 실패한 것이나 칸쿤 회담이 실패한 것은 단지 반자본주의 운동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복합적인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반자본주의 운동이 제공한 틀 속에서 세계 반전 운동이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운동이 성공하면 할수록 전략적 선택도 더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지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문제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저항의 문제로 그치지도 않습니다.
운동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어떤 대안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우리는 많은 경향들이 운동 안에서 구체화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프랑스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ATTAC)의 개량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더 규제되는 자본주의를 원합니다. 네그리와 홀로웨이 같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자율주의자들은 매우 급진적 미사여구와 가끔은 훨씬 더 신중하고 개량주의적인 실천 사이에서 동요하지만 분명히 운동 내 좌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진 좌파로 알려진 세력들도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리폰다찌오네(재건공산당)와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 같은 조직들은 운동이 창출한 새로운 전망이나 실천들과 고전적 좌파 전통을 운동 안에서 결합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급진 좌파 자체가 매우 다양한 경향입니다. 리폰다찌오네와 SWP의 정치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운동 안에는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두 가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체제의 논리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지난 2백 년 동안 억압과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의 경험, 풍부한 전술적·전략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전술과 전략을 제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반자본주의 운동이 새로운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새로운 운동입니다. 그러나 지금 운동이 직면한 문제들도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제국주의는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어려운 선택도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국가 문제도 새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공해야 하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체제에 대한 이런 인식이며 전략과 전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운동 안에서 그리고 서로 다른 투쟁들 안에서 우리의 사상에 따라 조직되고 단결된 방식으로 행동해 온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오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여러분은 우리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하고 운동에서 배워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운동에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운동 안에서 벌어지는 이 힘들고 중요한 전략적 논쟁들에서 우리가 뭔가 중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초 뭄바이 세계사회포럼(WSF)은 반전 운동과 반자본주의 운동의 결합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있다면, 어떻게 일어나고 있습니까?
반전 투쟁과 반자본주의 투쟁의 결합이나 중첩 과정이 시작된 방식을 봅시다. 유럽의 반자본주의 투쟁이 절정에 이른 것은 2001년 7월 제노바 G8[최강 8대국] 정상회담 항의 시위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 두 달도 채 안 돼 9·11 테러 공격이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동원[G8 반대 제노바 시위] 덕분에 아주 재빠르게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제노바 시위를 건설한 활동가들은 반전 시위들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유럽 최대 규모의 시위들이 이탈리아·스페인·영국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이탈리아는 제노바 시위가 벌어진 나라였고 스페인과 영국에서도 상당한 [반자본주의] 동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반전 운동과 반자본주의 운동이 예리하게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운동 내 우파가 유럽의 [반자본주의] 운동이 반전 쟁점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뒤에서 강력하게 훼방을 놓기는 했지만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2002년 11월 피렌체에서 열린 유럽사회포럼(ESF)은 지난해[2003년] 2월 15일 시위의 발판이 됐습니다.
이 과정은 이제 세계화됐고, 그래서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과 전쟁 반대 운동의 상호 연관을 이해하는 단체들―한국의 ‘아래로부터 세계화’나 [동남아시아의] ‘남반구초점’ 같은 ― 이 등장한 것입니다.
‘남반구 초점’은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해 왔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반자본주의 운동에 적극 참가해 아주 일관되게 WTO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 월든 벨로나 니콜라 불라드 등 ‘남반구 초점’의 주요 인사들은 또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반대 운동의 운명이 “테러와의 전쟁” 상황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뭄바이[WSF]는 특히 유럽과 아시아의 활동가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이 수렴 과정을 더 촉진시켰습니다.
물론 대규모 공산당들과 오랜 반제국주의 투쟁의 역사를 가진 인도의 수많은 활동가들에게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과 반제국주의 투쟁의 연관은 자명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겠지요.
실제로 그런 일[반전 운동과 반자본주의 운동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냐고요? 물론입니다. 저는 뭄바이[WSF]가 이라크 침략 1년 항의 3·20 시위의 발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위는 제 예상보다 규모도 더 컸고 더 성공적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2백만 명이 시위를 벌이고, 스페인에서 50만 명, 뉴욕과 런던에서 약 10만 명씩 시위를 벌인 것은 일부 주요 참전국들, 즉 전쟁과 점령에 참여한 나라들에서 운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물론 저는 유럽과 미국 등 제가 더 잘 아는 지역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곳 한국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벌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수준에서 진행중인 공동 활동의 진정한 성과였습니다.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은 좌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혁명적 좌파를 포함해서 좌파는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이런 운동들은 선택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제 말은 우리가 운동의 일부가 되지 못하면 운동을 비난하며 방관자로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좌파의 일부가 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모종의 선택 과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4인터내셔널의 많은 동지들을 특히 신뢰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동지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의 초기 국면부터 운동에 적극 개입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좌파들이 실제로 반자본주의 운동을 외면했습니다. 스칸디나비아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혁명적 좌파를 자처하는 많은 좌파들이 반자본주의 운동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듯합니다.
영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기층 반전 운동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좌파는 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그런 운동에 적대적입니다. 그들이 그러는 특별한 이유는 매우 일관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런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무슬림들이 반전 운동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것도 싫어합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유럽 최대의 무슬림 공동체와 세속적 좌파를 분리시키는 거대한 틈이 있습니다. 전쟁과 점령에 반대하는 운동에서 세속적 좌파가 한 역할은 사실 보잘것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인종 차별에 분노한 무슬림 젊은이들을 알 카에다의 품으로 들이미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지는 1970년대에 1968년 이후의 학생 운동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학생 운동의 일반적 성격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학생 운동이 사회주의 운동에 제공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지난 세대 급진 좌파의 역사를 살펴보면 학생 운동이 아주 중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좌파는 대학생들에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생들이 흔히 반동적 태도를 취한 소수 특권층이었던 때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1930년대 초에 독일 학생들은 대부분 히틀러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은 사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인구 대비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졸업 후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되거나 투자 은행가가 되지는 못합니다. 대다수는 숙련직에 취업해 꽤나 틀에 박힌 일을 합니다. 반드시 보수가 높은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대부분 프롤레타리아적인 미래를 갖게 됩니다.
그들은 또한 학교 다니는 동안 상대적으로 여유 시간이 많습니다. 심지어 제가 학교 다닐 때보다 학생들의 금전 사정이 훨씬 나빠진 요즘에도 학생들은 여러 사상에 대해 생각하거나 정치적 조직화 활동에 참가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지난 세대에 대학생들이 활동가들의 매우 중요한 원천이었고 급진 좌파를 지지하는 중요한 세력이었습니다. 1968년 세대가 바로 그랬습니다. 오늘날보다 더 인상적이었죠.
제가 보기에는 한국의 1987년과 1988년이 우리의 1968년과 비슷한 듯합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학생들의 투쟁과 노동자들의 투쟁이 상호 작용했고 이는 1960년대 말 프랑스나 이탈리아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비록 그런 투쟁에서 배출된 사람들이 나중에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할지라도 말입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급진화 경험이었습니다. 1960년대의 투쟁이 없었다면, 오늘날 [영국의] SWP나 프랑스의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같은 혁명적 좌파 조직들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의 투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특정 쟁점을 둘러싸고 결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영국 학생들은 고등교육의 시장화 때문에 점점 더 높은 등록금을 내야 합니다. 이처럼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불만 사항들이나 또는 전쟁 같은 더 광범한 정치적 문제들 때문에 스스로 동원될 수 있습니다.
제가 덧붙이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늘날 특히 유럽에서 ― 다른 지역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 반전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한 가지는 고등학생들이 매우 많이 참가한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에서 이 점이 매우 두드러졌던 것은 지난해 3월 미국의 이라크 침략 때였습니다. 영국에서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1968년의 중요한 특징이었지만 영국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고등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영국에 관한 한, 분명히 이것은 토니 블레어의 심각한 패배였습니다. 지난해 3월 20일 남녀 고등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와 국회의사당까지 반전 시위를 벌였을 때 블레어는 노동당의 [지지 기반이 될 수도 있었을] 한 세대를 잃은 것입니다.
한국의 일부 좌파는 “한국의 재(再)식민지화”를 말합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고도의 국민적 경제 자급자족 체제, 국가 주도 축적 과정, 국가와 재벌의 결탁, 외국의 경쟁 자본을 배제하기 위한 온갖 규제 등 한국식 자본주의 모델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1997년 IMF 위기를 이용해 한국 경제를 자유화 과정에 더 개방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이 이미 그 때 시작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이후 외국 다국적기업들이 한국에 들어와 수익성 높은 부도 기업들을 곶감 빼먹듯이 빼먹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의 재식민지화로 귀결됐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 자본주의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경쟁자입니다. 경제 대국은 아니지만 한 경기자입니다. 몇 주 전에 핀란드의 노키아 ― 가장 성공적인 핸드폰 제조업체 ― 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파이낸셜 타임스〉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노키아의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노키아의 주요 경쟁업체 중 하나인 삼성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이것은 작은 사례일 뿐이지만, 한국을 모종의 피해자로만 여기는 것이 잘못임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한국 자본가들은 세계 자본가 계급의 일부이며, 그들은 한국 노동자들뿐 아니라 영국을 포함한 세계 전역의 많은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 [자본가들]이 영국에 투자해 영국 노동자들이 한국 기업들에 고용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식민지가 본국을 식민지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제 말은 우리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다양한 자본가 계급들이 다양한 수준에서 [경기자로] 참가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말입니다.
제가 그런 주장을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정치적 결론입니다. 그런 주장이 옳다면 한국인들은 외국의 적에 맞서 모두 단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자들이 사용자들과 단결해야 할까요? 바로 이것이 그런 주장의 논리적 결론입니다. 저는 이것이 엄청난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 경제가 중국 경제와 더 긴밀히 통합됐음을 생각해 보시라는 겁니다. 물론 그것은 엄청난 착취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노동자들에게] 기막힌 기회이기도 합니다. 한국 노동자들과 중국 노동자들의 접촉과 협력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며 지난 20년 간 한국 조직 노동계급의 투쟁과 전투성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기막히게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을 중국의 형제 자매들이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요.
최근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약진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노동당이 의회 진출을 계기로 체제 내로 흡수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회주의와 대중 투쟁의 관계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먼저 탄핵 위기와 그에 따른 총선 결과가 한국 사회의 좌경화를 확인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구래의 보수파인 한나라당과 부패한 김대중 잔당[민주당]이 찌그러졌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전환점인 듯합니다.
덧붙이면, 저는 ‘다함께’가 노무현 탄핵 반대 운동에 참가한 것이 완전히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노무현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하는 부르주아 정치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구체제가 필사적으로 권력을 유지해 살아남기 위해 직선 대통령을 완전히 황당한 근거로 탄핵했을 때 사회주의자들은 한 쪽을 편들어야 합니다. ‘다함께’는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성공은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부분적으로 민주화된 이후 부르주아 정당들과 매우 부패하고 기회주의적인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한국 정치를 지배해 온 점을 고려하면, 노동조합과 긴밀히 연결된 정당이 의회에 진출했다는 사실은 거대한 진보입니다. 미국처럼 부시와 케리, 끔찍한 부르주아 정치인 둘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것보다는 노동자들의 독립적 정치 대표가 있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미국에서는 부시나 케리를 선택하지 않으면 기권해야 합니다. 노동자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겁니다.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이 체제 내 통합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냐구요? 물론 그런 위험은 아주 큽니다. 영국 노동당의 역사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노동당 내 기층 활동가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사회민주주의 정책 채택에 반대하고 당이 체제에 완전히 흡수되는 것에 반대해 싸우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의회주의와 대중 투쟁의 관계는 좀 복잡합니다. 대규모 투쟁 분출 덕분에 노동자 정당이 의회 진출에 성공을 거둘 때도 있지만, 그것이 투쟁을 대체할 때도 있습니다. 투쟁이 급격히 분출했다가 퇴조하는 시기에는,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는 사장들을 꺾을 수 없었어도 적어도 투표소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 사회 전반의 이데올로기가 좌파 후보들의 승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바뀔 때도 있습니다. 아마 한국 상황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거대한 승리를 반영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한국 노동계급 투쟁의 초기 상황과 비교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의 좌경화가 존재하고 그것이 선거로 드러난 것입니다.
영국의 SWP는 급진좌파 선거연합, 즉 리스펙트(RESPECT)에 참가해 선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영국에서도 반전 운동이 초래한 정치적 급진화가 선거 승리로 반영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결과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지도부 선거에서 올바른 대북 정책이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전통은 항상 북한을 국가자본주의라고 분명히 규정해 왔습니다. 남한이나 다른 서방 자본주의 나라들과 결코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이 거대한 경제적·인도주의적 재앙에 시달린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좌파가 완전히 실패한 체제의 팬 클럽 노릇을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한반도의 군사적 분단에도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에도 반대해야 합니다. 1953년에 한국전쟁이 끝난 뒤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1950년대 이후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했던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가 있네 없네 하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완전한 위선입니다. 우리는 군사적 대결을 반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경제적 고립화에도 반대해야 하고, 앞으로 남북한의 인민이 평화적·민주적으로 통일하기를 바라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북한이 반제국주의 투쟁의 보루라는 견해가 매우 위험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한 좌파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좌파를 외국 간첩으로 몰아 탄압하기 일쑤였습니다. 탄압 자체뿐 아니라 완전히 재앙적으로 실패한 사회와 좌파가 동일시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따라서 좌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분단 종식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독일 통일 등의 사례를 보면, 북한의 나쁜 점이 드러나는 것은 우파들에게 이용돼 십중팔구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끔찍한 역사의 유산일 뿐입니다. 유럽에서 우리는 그런 부정적 영향이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저항의 발전을 결코 저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북한 문제뿐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논쟁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미국의 정책은 순전한 위선입니다. 이것은 비단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실입니다.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신화를 둘러싼 야단법석을 보십시오. 그러나 미국은 이스라엘이 수백 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 안 합니다. 미국은 또 맘만 먹으면 세계의 많은 지역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의 위선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라는 북한이 무얼 하고 있는지, 무엇에 기대려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저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서울을 겨냥한 재래식 무기를 대거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은 왜 남한 노동계급과 척 지을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핵무기는 말할 것도 없고 재래식 대량살상무기로도 살해당할 사람들은 바로 남한 노동계급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지배하는 핵 위계질서를 매우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 등 주요 핵 열강이 자신들의 핵무기 독점은 유지하면서도 다른 나라의 핵무기 개발은 거부하는 방식 말입니다. 그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별 국가들이, 특히 제국주의에 맞서 세계 노동계급의 편임을 자처하는 국가들이 그들 자신의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거나 합리적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이른바 “스웨덴식 사회 모델”에 대한 기대가 높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면에서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운영 방식이 민족주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이 한국적 가치나 전통만이 미래의 대안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둘째, 스웨덴 모델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그것이 시장을 규제하고 인간의 복지나 사회적 가치·연대 등등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모델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그러나 스웨덴 사람들에게 스웨덴식 사회 모델을 물어 보면 아마 그들은 그게 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런 게 결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