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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 살인마가 죽었다

그 살인마가 20년만 일찍 죽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 하고 크리스 하먼은 회상한다

지난 토요일[6월 5일]에 죽은 미국의 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에 대해 세계 지도자들은 아낌없는 칭찬을 늘어놓고 있다. 토니 블레어는 “대서양 이쪽 편[유럽]에서는 그를 존경하는 많은 이들이 그를 애타게 그리워할 것이다” 하고 말했다.

프랑스의 쟈크 시라크는 레이건의 죽음이 그를 “매우 슬프게 한다”고 말했다. 독일 대통령 요하네스 라우는 그를 “독일의 충실한 벗이자 동맹”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조지 W 부시는 “그가 구원한 세계”를 운운했다. 그러나 레이건은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세계의 부자들(특히 미국의 부자들)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행사하는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범죄도 주저하지 않았던 살인자였다.

그는 미 제국주의가 수세에 몰려 있던 1981년 1월에 대통령이 됐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배한 지 6년밖에 안 됐고, 친미 독재정권들인 이란의 샤[파흘라비 국왕]와 니카라과의 소모사가 혁명으로 타도된 지 2년밖에 안 된 시점에서였다.

레이건의 핵심 목표는 어떤 인명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미국의 패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1980년 말에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했다. 레이건은 이라크를 지원하기 위해 도널드 럼스펠드를 바그다드에 보냈다. 후세인이 쿠르드족 반군을 상대로 독가스를 사용한 뒤에도 미국의 지원은 계속됐다.

중동에서 미국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레이건은 1982년에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지원했다. 사브라와 샤틸라의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으로 정점에 달한 그 침공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에는 미국의 전함들이 베이루트 시를 포격함으로써 이스라엘 군의 베이루트 탈출을 엄호했다.

레이건은 중앙 아메리카를 킬링필드로 만들어 놓았다. CIA는 니카라과의 혁명 정부에 맞서 싸울 테러리스트 부대를 창설했는데, 그들이 바로 콘트라였다. 콘트라가 정부 지지자들을 살육하고 경제를 파괴하는 작전을 벌이면서 수만 명이 수난을 당했다. 니카라과의 항구에 폭발물을 매설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미국의 요원들도 콘트라의 작전을 보조했다.

인접국들인 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에서 미국은 암살단을 재정 지원했다. 이 암살단들은 단 1년 사이에 엘살바도르에서 4만 명을 죽였다. 이들의 활동 기간 중에 레이건이 온두라스에 파견한 인물은 존 네그로폰테였는데, 그는 이 달 말에 이라크의 새 총독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오사마 빈 라덴

남아프리카에서 레이건은 남아공의 인종 분리 정권을 후원해 인접국인 모잠비크와 앙골라를 풍비박산나게 만들었다. 또한 레이건 시절에 미군은 카리브 해의 작은 나라인 그레나다를 침공했고 미군 전폭기들은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를 폭격했다.

미국의 패권을 회복하기 위한 레이건의 핵심 과제 하나는 라이벌인 소련의 영향력을 꺾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 군비의 대대적인 증강을 추진했고 신종 대량살상무기인 핵탄두 크루즈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했다.

레이건 밑에 있는 장군들은 “전역” 제한핵전쟁 준비 태세에 관해 얘기했다. 그 목적은 어마어마한 군비 경쟁을 촉발해 소련을 파산으로 몰아넣는 데 있었다.

레이건의 지지자들은 그가 이런 식으로 옛 소련의 민중을 “해방”시켰다고 말한다. 하지만 옛 소련의 민중은 레이건이 등장하기 오래 전부터 이미 스스로 해방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1953년 동독, 1956년 헝가리, 1968년 체코, 1980년 폴란드의 민중 봉기들이 그 사례들이다. 레이건이 한 짓은 그 나라들을 절망적인 경제 위기로 내몰아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을 뿐이다.

미국식 “해방”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는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의 사례에서 가장 확연히 드러난다. 레이건이 막 집권했을 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민중 반란이 소련의 점령군을 점점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레이건 정부는 이 반란이 미국에 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 반란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미국은 반란 세력 가운데 친미 분파에게 소련군뿐 아니라 경쟁 분파들을 상대로 사용할 현대식 무기와 돈을 지원했다. 그러한 친미 분자 가운데 한 사람이던 헤크마티야르는 미국이 건네준 무기를 사용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미 소련군이 카불에서 떠난 지 한참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미국이 후원한 또 한 사람은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인물이었다.

조지 W 부시는 레이건이 미국을 “부흥”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직 극소수 미국인들만이 레이건의 정책으로 혜택을 봤다. 레이건은 대통령 취임 초기에 항공관제사 노조의 파업을 분쇄하고 노조원들을 전원 해고해 노동운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그는 막대한 부를 노동 대중에게서 부자들에게로 재분배하는 정책을 시작했고 그 정책은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의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25년 전보다 더 낮은 실질임금을 받으며 레이건 취임 초기와 비교해 1년에 160시간(한 달) 더 오래 일한다.

블레어·부시·시라크 같은 자들은 바로 이 때문에 레이건을 찬양한다. 하지만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은 그가 20년 전에 죽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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