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촛불항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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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게이트’ 항의 촛불운동이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복지 먹튀, 연이은 부패 비리로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분노가 쌓여 가던 참에 국정원 게이트는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됐다. 취임 반년도 안 돼 수만 명 규모의 촛불집회가 도심에서 매주 열리게 된 것이다. 우파 정권의 연속 집권에 풀 죽었던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이런 양상 때문에 지금의 촛불운동은 여러모로 2008년 촛불항쟁(이하 ‘촛불항쟁’)을 떠올리게 한다. 촛불항쟁 역시 당선 직후부터 민영화, 경쟁 교육 등 온갖 반동적 개악을 밀어붙이던 이명박에 대한 누적된 불만의 폭발이었다. 취임 1백 일도 되지 않아서 최대 1백만 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촛불항쟁은 ‘한국 사회 보수화론’에 대한 통쾌한 반박이었다.
방아쇠
그런데 한편에서는 지금의 촛불이 2008년 때처럼 폭발적 성장을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의문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 장악을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물론 ‘이명박근혜’가 언론을 장악해 국정원 게이트의 진실이 계속 가려져 온 것은 사실이다. 주류 언론은 철저히 이 쟁점을 은폐·축소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흉기로 쓰이는 언론에 대한 분노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촛불집회가 계속 커져 온 것은 저들의 술수에도 결국 진실이 퍼져 나가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 일각에서는 광우병은 접근하기 쉬운 ‘먹을거리’ 문제였지만 국정원 게이트는 민주주의 쟁점이라 거리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은 촛불항쟁의 방아쇠 구실을 했을 뿐이다. 촛불은 반(反)이명박 쟁점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이 됐다. 그래서 청소년, 비정규직 청년들, 대학생들, 노동자들까지 폭넓게 운동에 참가했고 운동 초기부터 이명박 퇴진과 탄핵 구호가 터져 나왔다.
지금의 촛불운동도 더한층 성장하려면 쟁점 확대를 통해 박근혜에 맞선 다양한 불만이 거리로 나오도록 조직해야 한다. 실제로 철도, 쌍용차, 언론, 진주의료원 노동자들의 발언은 촛불집회에서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운동을 이끌고 있는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의 주요 세력들은 이런 과제에 소극적이다. 이들은 국정조사로 초점을 맞추며 운동의 요구를 제한하려 하기도 했다.
지금은 주요 사회 운동 단체들이 뒤늦게 운동에 참가해서 운동 참가자들의 뒤를 좇기 급급했던 2008년과는 다르다. 당시 거리를 압도한 것은 대중의 자발성이었다.
잠재력
그러나 연이은 우파 정권의 집권과 2008년 후반 이래 깊어지는 세계경제 위기는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냈을 것이다.
촛불항쟁이 온전히 승리하지 못한 경험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드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
물론, 촛불항쟁은 이명박 정권과 그가 추진하려던 정책들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러나 결정적 승리를 쟁취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2008년에도 1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지만 승리하지 못했다’는 물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온건 개혁주의자들은 ‘거리 시위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정치가 필요하다’며 민주당과의 동맹을 통한 의회 정치로 나아갔다. 이들은 지금도 촛불집회를 국정조사의 보조물로 여기며 민주당과의 공조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2008년 촛불항쟁의 진정한 교훈을 이끌고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2008년 촛불은 다양한 요구와 목소리가 분출하며 아래로부터 자발성과 투지가 만개할 때 놀라운 변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 줬다.
이 잠재력을 현실로 만드는 데서 실종된 핵심 고리는 노동자 투쟁이었다. 거리의 촛불시위와 “국가 골간 산업을 모두 틀어쥔 저력 있는 집단”인 조직노동자들의 파업이 결합했다면 그 효과는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두 시간 상징적 파업을 조직하는 데 그쳤다.
이런 점에서 철도노조가 적극적으로 국정원 게이트 촛불운동에 참가해 철도 민영화 반대 투쟁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서서히 불붙는 노동자 투쟁이 국정원 게이트 촛불과 결합한다면 박근혜 정부는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릴 것이다.
또한 2008년 촛불항쟁은 대중 투쟁에 함께하고 배우려 하면서도 이런 과제를 일관되게 추구할 혁명적 정치와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당시 노동자연대다함께와 같은 좌파는 개혁주의자들이 주춤거릴 때 거리 행진을 이끌며 운동의 질적 도약에 기여했다. 또 쟁점 확대와 이명박 퇴진 요구, 노동자 파업의 필요성 등을 제기하며 승리를 위해 촛불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려 했다.
반민주·반노동의 뿌리인 박근혜 정부에 강력하게 맞서려는 사람들은 이 교훈을 지금의 촛불운동에 적용하려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