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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적 분석:
케인스주의가 긴축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세계경제가 여전히 위기를 헤어나지 못하면서 주류 시장주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인기를 얻고 있다. 서점가에서는 폴 크루그먼, 스티글리츠 등 케인스주의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다. 자유시장에 대한 케인스주의적 비판은 분명히 타당하고 활용할 측면이 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계속되는 위기는 국가 개입도 자유시장도 고장난 자본주의를 고치지 못한 과정이기도 했다. 한계와 모순을 드러낸 양적완화, 아베노믹스 같은 돈 풀기도 사실 케인스주의적 성격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가 케인스주의의 약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근래 긴축에 반대하는 많은 주장들은 케인스주의적이었다.

이것을 보면, 마치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1930년대 대공황과 그 뒤를 따랐던 장기 불황을 설명하거나 혹은 무엇을 할지에 대해 별 기여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내 생각에 자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케인스주의 이론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다.

먼저 경제학에 케인스가 핵심적으로 기여한 부분을 살펴보자. 케인스가 거시경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제출한 국가 수입과 지출에 관한 일련의 공식을 보면, 국민소득은 국민지출과 같다.

뉴딜 정책이 1930년대 대불황에서 미국 경제를 구출했는가? 케인스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해 왔지만 뉴딜 정책은 1938년에 경제가 다시 급격한 침체에 빠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사진은 뉴딜 정책의 상징인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 현장. ⓒ사진 출처 미국의회도서관

그리고 국민소득은 이윤과 임금의 합이고 국민지출은 투자와 소비의 합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윤과 임금을 더한 것은 투자와 소비를 더한 것과 같다. 임금을 모두 소비에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이윤과 투자는 같아야 한다.

케인스는 별도의 논거 없이 투자가 이윤을 창출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투자를 낳는가? 케인스는 개별 기업인의 주관적 결정이라 말한다.

무엇이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가? 케인스는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이나 투자 보상에 대한 여러 기대 같은 것들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생각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윤이 투자를 낳고, 자본에 의한 노동력 착취가 이윤의 원천이라고 본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개별 인간 행위를 정신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형태의 계급사회에 기반해 인과관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이윤이 투자를 낳기 때문에 이윤이 증가하지 않으면 투자는 증가할 수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투자는 이윤을 직접 만들지 않는 정부 지출을 제한하게 된다. 케인스주의 정책 결론과 반대로, 자본주의는 정부 지출이 아니라 정부 저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케인스주의자들은 이윤이 아니라 산출량을 위주로 본다. 그들은 경제에서 정부 지출의 모든 변화가 소비와 국가 경제에 산출량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정부 지출이 삭감되면 국내총생산이 작아진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른바 재정승수*다.

케인스주의의 세계적 권위자 폴 크루그먼은 블로그에 “유로존의 긴축 경험을 보면 아주 커다란 케인스주의적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썼다. IMF도 그리스 정부가 지출을 삭감할수록(16퍼센트) 실질 국내총생산은 그보다 더 많이 하락(19퍼센트)했다며 같은 주장을 했다.

그러나 케인스주의가 말하는 이 승수효과에는 문제가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분석을 봐도 IMF의 주장은 잘못됐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IMF의 작업을 재현해 보[니] … 대상 국가나 시기를 바꾸면 바로 [승수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리스와 독일을 제외하고 계산하면 [승수효과가 크다는] IMF 결론은 통계적으로 무의미하다.

“IMF는 자신의 결과가 대상 시기와 무관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특정 기간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 2010년 재정적자 규모 전망치는 2010년이나 2011년의 경제성장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안 됐다.”

과거의 케인스주의 승수효과를 분석해 보면, 대상 시기에 따라 재정승수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IMF도 “선진 경제에서 2009년까지 30년 동안 평균 재정승수가 0.5에 가깝다”고 인정했다. 정부지출과 세금의 변화가 30년 동안 경제 성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인과관계

케인스주의는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불황이 적자와 부채를 키워서 정부를 긴축으로 내모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긴축이 대공황을 유발한 것이 아니라 대공황이 긴축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와 반대로, 대규모 재정 적자와 높은 부채가 GDP 성장을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는 긴축주의자들의 연구도 엄청나게 많다. 공공부채 비율이 더 빠르게 줄어들수록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더 빨리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불황이 높은 부채를 유발하기 때문에 부채를 줄이는 유일한 길은 성장을 촉진하는 것뿐이라는 케인스주의자들의 설명이나, 높은 부채가 불황을 유발하기 때문에 성장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부채를 줄이는 것뿐이라는 긴축주의자들의 설명은 모두 증거가 없다.

나는 1998년 이래 일본, 미국, 유로존의 GDP 대비 재정적자와 실질 GDP 성장을 비교해 봤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듯, 1998년은 일본 관료들이 케인스주의적 정부 지출 정책에 집중하기 시작한 해이다. 결과는 어땠는가?

1998~2007년, 일본의 실질 GDP 성장은 평균 1퍼센트인 반면, 평균 재정적자는 GDP의 6.9퍼센트였다. 같은 기간 미국 재정적자는 GDP의 2퍼센트로 일본의 3분의 1도 안 되는 반면, 실질 GDP 성장은 연 3퍼센트로 일본보다 세 배 높았다. 유로존의 재정적자는 심지어 더 적은 GDP 대비 1.9퍼센트였다. 그러나 실질 GDP 성장은 여전히 연 평균 2.3퍼센트로 일본의 두 배 이상이었다. 2002~07년의 신용호황 기간 동안 일본 정부는 미국이나 유로존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출했는데도 실질 GDP 성장은 가장 낮았다.

케인스주의는 지출(수요)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GDP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이윤에서 자본주의적 투자로, 투자에서 고용·임금·소비로 나아가며 경제를 분석한다. 소비와 GDP 성장이 투자 이윤율에 종속되지 그 반대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오늘날의 경제를 분석하는 것이 옳은지 확인하려면, 정부가 지출과 세금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이윤율을 높이는지 낮추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 이윤율을 올리지 못한다면 추가 정부 지출로 GDP가 잠깐 올라간다 해도 더 긴 저성장과 불황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부 지출을 늘려 주로 사회적 소득 배분과 복지에 투자하면, 자본가들에게 부담을 지울 것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않기 때문에 이윤율을 낮출 것이다.

정부가 교육과 의료 같은 공공 서비스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이윤율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정부가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면, 그 계약을 얻는 자본 부문의 이윤율은 높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비용을 이윤에 더 높은 세금을 매겨 조달한다면 전체적으로 이윤율은 올라가지 않는다.

심지어 노동자 임금에 더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다른 정부 지출을 삭감해 정부 재정을 마련한다 해도, 지출이 노동 대비 자본 비율이 낮은 부문으로 가는 경우에만 (사회기반시설 프로젝트에서는 흔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이윤율이 높아질 것이다. 정부가 지출 비용을 빌려온 돈으로 마련하면, 금리가 올라 이윤율 회복을 제한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 지출이 는다고 이윤율이 높아진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고, 그 반대가 더 사실에 가깝다.

마르크스주의적 예측

1997년 이후 대다수 선진 자본주의에서 이윤율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으로는 이윤율이 하락하면 투자 성장율이 떨어지고 GDP 성장도 느려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1998년부터 2001년의 가벼운 불황까지 4년 동안 미국의 실질 투자 성장률은 6.1퍼센트였는데 그 기간 미국 정부 재정은 흑자였고, 실질 GDP 성장은 한 해 3.6퍼센트였다.

그러나 2001년의 불황 이후 2002~07년 신용 호황 동안, 미국 실질 투자 성장율은 한 해에 2.2퍼센트까지 낮아졌다. 정부는 연평균 GDP 대비 3.6퍼센트에 달하는 재정 적자를 유지하며 돈을 풀었지만, 실질 GDP 성장은 연평균 2.6퍼센트까지 낮아졌다. 유럽도 같은 상황이었다.

경제의 생산적 부문에 대한 자본주의적 투자의 추이 변화는 더 흥미롭다. 1998~2001년 생산적 부문들에서 미국 실질 투자는 1년에 7.2퍼센트 올랐으나 2001~07년에는 그 전의 절반인 연평균 3.5퍼센트에 불과했다. 유럽도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장기적으로 투자나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어떤 증거도 없는 것 같다. 반대 증거가 더 많다.

그렇다고 긴축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같은 나라들을 인용하면서 긴축이 옳다는 (연봉 47만 불에 세금도 내지 않는)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의 주장은 정말 헛소리다. 이 조그만 자본주의 나라들은 다른 나라보다 사정이 약간 나을 뿐이다.

그것도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규모의 재정 이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는 예산의 대략 20퍼센트를 유럽연합의 기금으로 충당한다. 은행이 긴급 구제를 받은 것은 아니고, 스웨덴과 다른 북유럽 은행들이 에스토니아 은행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정부 부채가 높았던 적도 없다.

재정 긴축 때문에 이들 경제가 호전된 것이 아니다. 노동권을 파괴했기 때문에 고용주들의 이윤이 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주 많은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유럽 지역으로 떠나서, 숙련 노동인구가 사라졌다. 1991년에 라트비아 인구는 2백70만 명이었는데, 최근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인구가 2백만 명으로 떨어졌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적을 것이다.

영국 정부는 긴축에 매달리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긴축이 영국 경제 침체의 유일하거나 가장 주요한 원인인 것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은 진정한 원인은 영국 지대추구 자본주의의 실패다. 경제의 생산적인 부문들에서 생산성이 침체하고 투자는 붕괴했다. 자본 소유자들은 현금을 쌓아 놓고, 해외로 보내거나 금융 자산을 구입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는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실물 경제는 침체하고, 민간 부문이 지배하기 때문에 관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영국 기업들이 국내에서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경제의 생산적 부문인 제조업에서 이윤율이 1997년 이래 계속해서 하락했고 1990년대 초 이래로 보지 못한 저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 불황에 대한 올바른 대안은 무엇인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생산이 충분한 이윤을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 위기의 근원이라고 본다. 그래서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 낡거나 “죽은” 자본(고용인들, 오래된 기술, 수익성이 없는 약한 자본주의 기업들)을 충분히 파괴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자본주의가 약화할 것이다. 이런 장기 불황 속에서 또 다른 커다란 경기 침체가 올 수도 있다.

케인스주의적 정부 지출은 노동계급의 고통을 일부 완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윤율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희생해야 가능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사회적 생산의 지배적인 형태인 한, 정부 지출 증가는 자본주의를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연시킬 뿐이다.

장기 불황을 끝장내고 커다란 침체를 피하고 싶다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끝내고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계획되는 사회적 생산으로 자본주의를 대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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