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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꼼수로 누더기가 된 노동시간 단축 방안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최근 ‘2016년부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동시간을 1일 8시간, 1주일 40시간으로 정하고 있고, 연장근로는 1주일에 최대 12시간까지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근로기준법의 허점을 악용해 그동안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해 왔다. 이 덕에 기업들은 법정 근로시간(주당 40시간)에 연장근로(주당 12시간)와 휴일근로(토, 일 각 8시간)를 합쳐 주당 68시간까지 노동자들을 부려먹었다.

그런데 이런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현재 64퍼센트인 고용률을 2017년까지 70퍼센트로 높이겠다고 공약했고, 이를 위해선 일자리 2백38만 개를 만들어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2017년까지 연평균 노동시간을 1천9백 시간대로 단축하겠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12년 기준 2천92시간이나 된다. 네덜란드·노르웨이·독일 등이 1천5백 시간 미만인 것에 대면 한국 노동자는 주요 산업국보다 연간 4백~5백 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을 파괴하는 장시간 노동시간 체제는 바꿔야만 한다. 게다가 법정 노동시간 52시간만 준수하더라도 일자리를 70만 개 가까이 창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 점에서 많은 노동자가 이번 발표에 기대를 걸 것이다.

그러나 이번 당정합의는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누더기로 만들고 있다.

우선,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시기를 2016~18년으로 미루고 대기업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미 수년 전부터 휴일근로도 연장근로에 포함된다고 판결해 왔는데 말이다.

따라서 “행정 해석을 바꾸면 당장 시행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규모에 따라 시행 시기를 늦추면서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민주노총 김은기 사회공공성본부 국장)이라는 비판은 옳다.

임금 삭감과 노동 유연화

둘째,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 또는 1년으로 확대하는 방안과, 노사가 합의하면 한시적으로 연장근로시간을 8시간 더 늘려 주당 20시간의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의 단위 기간을 1년으로 늘리고 연장근로를 20시간까지 늘려 주면, 연간 평균 노동시간을 주 60시간까지 맞추는 것이 가능해진다.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취지를 거의 무력화하는 방안인 셈이다.

셋째, 당정합의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기존 26개에서 10개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특례 제도는 운수업, 금융업, 의료업 등에서 연장근로를 12시간 이상 허용하는 제도로,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대표적인 악법 중 하나다.

정부안대로 하면, 특례업종 노동자 수는 전체 노동자의 33퍼센트에서 14.7퍼센트로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오랫동안 근로시간 특례 제도 자체를 폐지할 것을 요구해 왔는데, 이를 물타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넷째, 노동시간 단축으로 줄어드는 임금을 보전할 방안이 전혀 없는 임금 삭감 방안이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통상임금으로는 생활하기 힘들어, 야근·특근 등을 하고 초과근로수당을 받아 임금을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휴일근로수당은 전체 임금의 약 15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휴일근로가 줄어들면 그만큼 임금이 낮아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게다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도 임금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에서는 주당 52시간까지는 연장근로가 아닌 것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른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하는 방안과 함께 추진되고 있다.

노동시간이 조금 줄어들어 부족해진 인력을 저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채우려는 것이다.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이번 방안은 노동시간 단축을 최대한 늦추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임금 삭감·노동유연성 확대를 결합시키는 정책이다.

그럼에도 경총을 비롯한 기업주들은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 기업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길길이 날뛰고 있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 착취에 조금의 흠집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주들의 이런 태도와 악화하는 한국 경제 상황을 고려해 보건대, 입법 과정에서 이 법안은 더욱 누더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노동시간을 실질적으로 즉각 단축하라고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또, 임금 삭감과 노동유연성 강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의 통상임금을 대폭 올릴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자는 요구도 결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