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집행부 선거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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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현대차지부 1차 투표를 앞두고 다섯 선본이 출마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는2011년 이경훈을 꺾고 당선한 문용문 집행부에 대한 평가 속에서 가늠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먼저 문용문 집행부에 대한 평가를 해보자.
(1) 문용문 집행부 등장 배경을 돌아보기
문용문 집행부는 공동 집행부다. 문용문 지부장이 속한 의견그룹 ‘민주현장’뿐 아니라 ‘금속연대’가 공동으로 집행부를 구성했다.
문용문 집행부 등장의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현대차가 계속 당기순이익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2009년 현대차 사측은 경제 위기의 충격을 이용해 주간연속2교대 도입 약속을 어겼고, 임금 동결을 강요했다. 그러나 2009년 당기순이익은 2008년에 견줘 두 배로 뛰었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늘었다. 이 속에서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몫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을 것이다.
둘째, 전임 이경훈 집행부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있었다. 우파인 이경훈은 2009년 경제 위기 충격 때문에 조합원들이 위축된 상황과, 윤해모 집행부가 무책임하게 사퇴하면서 생긴 환멸을 이용해서 ‘실리’를 내걸고 당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경훈은 무쟁의로 일관하며 2009년에는 임금을 동결했고, 10년과 11년에도 임금인상률은 낮은 수준에 그쳤다.
셋째, 2010년 11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1공장 CTS 점거 파업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점거파업은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부각시켰고, 이경훈 지도부의 파업 파괴자 구실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넷째, 전체 노동운동의 자신감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것의 반영이었다. 2012년 1월 엔진공장에서 사측의 통제에 항의해 신승훈 열사가 분신 사망하자, 울산공장 엔진사업부는 전면 파업을 벌이고, 전 조합원 결의대회에는 4천여 명이나 모여 사측을 굴복시켰다. 이런 분위기가 문용문 당선의 배경이 됐다.
(2) 현대차 노동자들의 기대는 충족됐는가
이런 배경 속에서 현대차 노동자들은 문용문 집행부에게, 자신들의 오랜 염원이던 주간연속2교대 도입과 임금의 대폭 인상을 기대했다. 노조가 분리돼 있어 투표권은 없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새로운 민주파 집행부에게 이경훈과 다른 태도를 기대했다.
문용문 지부장도 2011년 당선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핵심 과제로 “공정 분배 실현, 주간연속2교대, 불법파견”를 꼽았다. 그렇다면 현대차 노동자들의 열망은 얼마나 실현됐는가?
① 주간연속2교대 도입과 임단협
문용문 집행부는 지난해와 올해 두 해 연속 파업을 벌였고, 이 속에서 올 3월부터 주간연속2교대가 도입됐다. 노동시간도 2백10시간 정도 줄었다. 이것은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용문 집행부는 주간연속2교대 문제에서 많은 것을 양보했다. 2012년 4월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인 3무 원칙(노동유연화·노동강도 강화·임금삭감 없는 주간연속2교대)에서 후퇴했다. 근무시간도 ‘1조 8시간/ 2조 8시간’이 아니라 ‘1조 8시간/ 2조 9시간’으로 합의했다. 그래서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노동시간도 기대만큼은 줄어들지는 못하는 형태로 주간연속2교대가 도입됐다.
아울러 M/H 공동위원회 구성을 합의해 노동유연화의 길을 터줬다. 그래서 지난해 잠정합의안은 52퍼센트로 겨우 과반을 넘겼다.
게다가 올 4월 특근 합의를 해 줘 특근 수당이 깎여 임금 보전도 이루지 못했다.
2013년 임단협 투쟁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기본급 대폭 인상을 이루지 못한 것, 정년연장 요구를 철회한 것, 활동가들에게 내려진 손배가압류를 철회시키지 못한 것 등에 불만이 있었다. 이 때문에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성률은 그리 높지 않은 55퍼센트에 그쳤다.
② 비정규직 문제
문용문 집행부 2년 동안 비정규직 문제에서도 큰 진전이 없었다. 불법파견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물론 이경훈이 파업 파괴자 구실을 한 데 반해, 문용문 지도부는 지난해 7월과 11월 등 비정규직 대체인력 저지 투쟁에 연대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사측이 신규채용 안을 내놓자 이 배신적 안을 교섭 의제로 올리려 시도했고, 결정적인 국면마다 후퇴를 종용하며 연대 투쟁 확대보다는 양보교섭을 종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문용문 지도부는, 현대차 사측이 불법파견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도입하는 촉탁계약직 채용을 합의해 줘 버렸다.
결국 이경훈에 실망한 노동자들이 민주파 문용문 집행부를 뽑고 기대를 보냈지만, 문용문 집행부도 여러 면에서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의 한계를 보여 주며 실망을 자아낸 것이다.
문용문 집행부 2년 동안 성취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추려 보면 현대차 노동자들의 열망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주간연속2교대를 제대로 완성시키기 위한 과제들이 있다. 8/8 도입, 기본급 대폭인상, 노동강도 완화, 특근 문제 해결 등이 그것이다.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과 촉탁 계약직 문제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과제도 여전하다. 이런 현대차 노동자들의 열망에 비춰 이번 선거에 출마한 각 선본들을 살펴 보자.
(3) 출마한 후보들 살펴보기
① 이경훈이 ‘현장노동자’라는 전혀 걸맞지 않는 명칭을 사용하는 의견그룹으로 다시 출마했다. 이경훈은 1995년 사측의 통제와 탄압에 맞서 분신했던 양봉수 열사 투쟁 때 이를 외면했던 이영복 집행부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이영복 집행부는 양봉수 열사가 복직 투쟁을 할 때에도 “우리 회사에 해고자는 없다”며 철저히 외면했다. 이경훈은 2009년 지부장에 당선하고 무쟁의로 일관했다, 2010년 11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파업 때는 사실상 파업 파괴자 구실을 했다. 그래놓고 이번 선거에서 자신을 ‘2010년 비정규직 투쟁 연대에 적극 나섰던 인물’이라고 광고하고 있다. 뻔뻔함에 어안이 벙벙하다.
이경훈은 “실리는 경제 투쟁인데, 좌파들은 경제 투쟁에 무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두루 알다시피 그는 무쟁의로 일관했다. 투쟁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는 후보다.
② 하부영(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역임, 2000년 정갑득 집행부에서 부위원장) 후보가 출마했다.
하부영 후보는 자신이 속한 ‘들불’뿐 아니라 이경훈 의견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조직과 이경훈 그룹과의 통합에 반대한 온건한 그룹, 2008년 ‘민투위’에서 제명된 윤해모가 포함돼 있는 조직 등이 지지하고 함께하고 있다. 다들 온건한 그룹이다.
그동안 ‘들불’은 주간연속2교대 도입과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시간을 단축하되 임금 손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우려스러운 주장도 해 왔다. “노동시간 단축을 하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이중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거나 “노사 간 50퍼센트 손해 본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부영 후보가 부위원장일 때 정갑득 집행부가 비정규직 16.9퍼센트 투입에 합의한 것도 오점으로 남아 있다.
③ 문용문 지부장이 속한 ‘민주현장’은 김주철(구의원과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을 지냈다) 후보가 출마했다. 김주철 후보는 자신이 계승해야 하는 문용문 집행부에 대해서 주로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다.
성과로는 심야노동 철폐, 통상임금소송 쟁취, 기본급 10만 원 돌파 등 실질임금 인상을 꼽고 있고, 한계로는 2013년 단협 쟁취 미흡, 사측의 공격에 강력한 응징 미흡을 꼽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투쟁 연대에서 보인 잘못에 대해서는 자성적 언급이 없다. 2년간 실망과 불만이 컸던 것을 본다면 정확한 평가가 아니다.
④ 공동 집행부를 구성했던 금속연대는 김희환 후보가 출마했다. 문용문 집행부와 공동 집행에 대한 평가를 아직 내놓지는 않고 있다. 공동 집행부였다는 것을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듯한데 금속연대도 문용문 집행부에 대한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⑤ ‘민투위’는 손덕헌(2003년 근골격계 투쟁을 이끌었다) 후보가 출마했다.
민투위는 현대차에서 좌파 지도부 세우기 “전략”의 약점을 고스란히 보여 준 의견그룹이다. 전투적 활동가들로 출발했지만, 민투위 소속 회원들이 노동조합 집행권을 잡으면 후퇴와 동요를 보였고, 민투위 소속 회원들은 이에 침묵하거나 혼란에 빠졌다.
2001년 이상욱 집행부 시절 효성 연대 파업을 철회하고, 2005년 이상욱 집행부 시절 비정규직 류기혁 열사 투쟁 때 열사로 인정하지 않으며 공장 안팎의 비판을 받았다. 2008년 윤해모 집행부 시절에는 주간연속2교대 양보교섭을 하다가 급기야 무책임하게 사퇴했다.
당시 민투위는 윤해모 집행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냈고, 윤해모가 무책임하게 사퇴한 후에는 윤해모와 수석부지부장, 사무국장을 제명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도 민투위에 대한 불신이 커져 왔다.
(4)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현재 다섯 선본 모두 조합원의 열망을 반영해 공약에서는 8/8 조기 도입, 기본급 강화, 월급제 등을 주장하고 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등 비정규직 공약에서도 큰 차이는 없다.
그런데 지지 여부를 결정할 때, 주장(공약)뿐 아니라 실천과 기반을 함께 봐야 한다.
민주현장과 금속연대는 현 문용문 집행부를 배출한 곳으로서 그 과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올해 현대차 노동자들은 특근 합의와 임단협 합의에서 문용문 집행부에게 큰 불만과 불신을 드러냈다.
하부영 후보는 임금 삭감을 감수하는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입장이므로 노동자들의 조건을 제대로 방어할 수 없어 보인다.
민투위는 몇 차례 집행부를 잡으면서 노동자들에게 실망을 안기며 부정적인 인상을 남겨 왔다. 무엇보다 진지한 활동가들 사이에서 민투위는 아직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이 때문에 현대차지부 1차 투표에서는 흔쾌히 지지 후보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민투위 후보에게 비판적 투표를 하는 게 상대적으로 나은 선택지로 보인다.
2010년 비정규직의 CTS 점거 파업 때 1공장의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민투위 활동가들은 적극적인 연대에 나선 바 있다. 올해 현대차 울산 1공장에서 벌어진 특근 거부 투쟁 등에서도 1공장 민투위 활동가들은 그 투쟁의 일부였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민투위 소속 집행부의 배신 때문에 민투위가 하나의 조직으로서 충분히 신뢰를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더라도, 민투위 내의 전투적인 활동가들과 소통하고 연대한다는 맥락에서 민투위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 투표가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이다.
물론, 기권을 생각하는 전투적 활동가들의 고민도 크게 이해할 측면이 있지만, 실천과 기반을 볼 때 이경훈을 비롯한 모든 후보와 의견그룹이 똑같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2차 결선 투표에서는 이경훈 후보와 4명의 민주파 후보중 한 명이 겨루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따라서 2차 결선 투표에서는 이경훈을 떨어뜨리기 위해 민주파 후보(누가 되든)에 투표해야 할 것이다.
노동과 자본의 대립 구도가 더 근본적이고, 노동조합 상근간부층과 현장조합원의 차이가 그 다음으로 중요하지만, 현대차에서 우파 지도부의 재등장은 노동운동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5) 활동가들의 과제
‘현장조직’이라고 칭하지만, 그 목적을 노동조합 집행부 장악에 두고, 집행부를 장악하고 나서는 후퇴와 양보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장조직’에 대한 냉소와 반감이 자라 왔다.
이것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야당일 때는 현장파였다가 여당이 되면 국민파가 된다”는 ‘현장조직’에 관한 냉소는 이를 잘 보여 준다.
‘현장조직’의 이런 한계는, 노동자와 기업주 사이에서 중재와 협상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며 갈수록 보수화하는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의 문제와 연관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좀 더 전투적인 ‘현장조직’ 건설, 좀 더 좌파적인 지도부 세우기 등에 매달리다가 결국 실망만 쌓여 가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차에서 민투위, 기아차에서 ‘금속노동자의힘’이 이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 줬다고 할 수 있다.
기아차에서 전투적 ‘현장조직’으로 출발했던 ‘금속노동자의힘’ 소속 김성락 집행부는 사측과 현장조합원 사이에서 협상과 교섭을 우선하며, 현장조합원을 동원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무쟁의로 일관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도 소홀했다. 이 때문에 ‘금속노동자의힘’ 활동가들은 혼란에 빠졌다. ‘금속노동자의힘’을 방어하기 위해 김성락 지도부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
이런 혼란의 반복을 종식시키려면 좌파 지도부 세우기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지도부가 싸울 때는 이를 지지하며 함께 투쟁하고, 이들이 후퇴하고 동요할 때는 독립적인 투쟁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올해 현대차에서 문용문 집행부의 부적절한 특근 합의에 맞서 1공장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투쟁은 그 가능성을 보여 줬다. 그러나 이 투쟁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그러진 바 있다. 전투적 활동가들은 당장 쉽지 않아 보여도 참을성있게 인내심을 갖고 이런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혁명적 조직이 존재한다면, 작업장에서 이런 대안을 건설하고 기회가 왔을 때 이런 투쟁을 이끄는 데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