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 평등 지수 111위:
드러난 ‘여성 대통령 시대’의 실체
〈노동자 연대〉 구독
세계경제포럼(WEF)이 ‘2013 세계 성 격차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1백36개국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경제적 참여·정치 권한·교육 수준 등의 격차를 분석했다. 여기서 한국은 1백11위를 기록했다. OECD 국가들 중 터키 다음으로 꼴찌다.
여성 대통령 시대라며 으쓱거리던 박근혜 정부가 윤창중 성희롱 사건으로 망신살 뻗치더니, 이번 보고서로 생색낼 건더기조차 사라진 것이다.
여성가족부 장관 조윤선은 성 격차 보고서의 “통계나 자료 부실”을 문제 삼았다. 2008년부터 한국이 1백 위 안에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본다면 참 비루한 해명이다. 게다가 이번 통계에서 아랍에미리트가 1백9위, 바레인이 1백12위를 기록했는데, 한국의 우익과 이슬람 혐오주의자들이 아랍 국가들의 여성 인권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역겨운 일이었는지 보여 준다.
보고서의 세부 지표들을 보면, ‘여성 문맹률’과 ‘기대수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한국은 거의 모든 지표가 바닥을 기고 있다.
‘여성의 정치 권한’ 지표는 86위로 여성 대통령의 존재와 큰 괴리를 보였다. 여성 국회의원은 전체의 15퍼센트, 정부 요직 중 여성 공직자는 약 2퍼센트에 불과하다. 여전히 여성의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심각한 것은 노동계급 여성들의 삶이다. 노동계급 여성들은 ‘유리천장’까지 올라가 보기는커녕 바닥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부차적 노동력
특히 ‘경제적 참여 및 기회 지표’가 지난해에 견줘 두 계단 후퇴한 1백18위를 기록했다. 대체로 남성과 여성의 노동조건 격차가 벌어진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2012년 세계 성 격차 보고서’와 비교해 보면, 2013년 들어 여성의 노동 참여는 87위로 네 계단 뒤로 밀렸고, 여성 소득은 남성 소득의 44퍼센트 수준으로 1백8위에서 제자리걸음을 했다. 유사업종의 남녀 임금 격차는 세 계단 후퇴해 1백20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여성이 지금껏 투표도 못했고 차량 운전도 금지된 사우디아라비아(1백11위)보다도 낮은 것이다.
이런 전반적 후퇴는 박근혜의 여성 정책과도 관련 있다. 박근혜는 취임 후 여성을 위한 정책을 언급했는데, 그러면서 압도 다수가 여성인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박근혜가 내놓은 대표적인 여성 정책 중 하나인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육아와 생계의 이중 굴레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시간제 일자리를 감내하는 여성의 처지를 아예 공고화하겠다는 것이다. 대선 때 약속했던 무상보육은 정부가 재정 책임을 회피하면서 시작부터 위기를 맞이했다. 사실상 박근혜의 여성 노동 정책은 또다시 여성들에게 ‘양육도 저질 일자리도 더 감내하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열악한 여성의 조건을 더 옥죄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여성 차별은 노동계급 남성에게도 해롭다. 이번 보고서가 여성과 남성 사이의 큰 격차를 보여 준다고 해서, 그것이 평범한 남성들이 월등히 좋은 조건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배계급은 여성의 열악한 처지를 이용해 남성들의 노동조건을 발목 잡고, 궁극적으론 노동계급 전체의 조건을 하락시키려 한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고, ‘남성·대기업·정규직 위주로 짜여진’ 고용시장을 탈피해야 한다며 고용이 조금 더 안정적인 일자리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처럼 박근혜가 이끄는 지배계급은 여성 차별을 전혀 극복할 생각이 없고, 오히려 그것을 온존하고 이용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 여성은 무상으로 집안일과 양육을 대개 도맡아 한다. 또, 자본가들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나왔을 때도 ‘반찬값 벌러 나온’ 부차적 노동력 취급하며 저임금을 강요한다. 자본가들에게 여성 차별은 ‘수지 맞는 장사’다. 자본가들은 이런 현실을 굳히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생각을 퍼뜨리며 노동자들을 서로 이간시킨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는 어디든 정도는 다를지라도 여성 차별이 존재한다. ‘2013 세계 성 격차 보고서’는 결론에서 “전 세계 어떤 나라도 성 평등을 이루진 못했다”며 최상위권인 아이슬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등지에서도 여성이 남성의 81~87퍼센트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실은 여성 차별을 뿌리 뽑으려면, 결국 자본주의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이것은 여성의 처지를 더 벼랑으로 몰려는 시도에 왜 여성과 남성 노동자가 함께 단결해서 맞서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