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판결을 앞두고:
통상임금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서 훔쳐간 ‘장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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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11월 중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공개변론 후에도 그동안 노동자들이 빼앗긴 통상임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수많은 노동조합들이 시작했다.
그러나 통상임금 소송으로 불거진 논쟁 속에는 다른 중요한 쟁점들도 있다. 통상임금 논쟁의 배경에는 임금 체계와 노동시간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통상임금은 시간외·야간·휴일근로 등 법정 노동시간 외 초과노동의 가산임금 산정 기준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자본가들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최대한 좁게 해석해, 저임으로 초과노동을 시키려 한다. 반면, 노동자들은 그동안 여러 소송과 투쟁을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점점 더 넓게 인정받아 왔다.
자본가들은 기본급으로 지급해야 할 임금을 기형적인 방식으로 쪼개 놨다. 기본급 비중을 최대한 줄이고 대신 각종 상여금과 수당 등을 지급하는 임금 체계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래서 현대차 등 완성차 노동자들의 평균 기본급은 1백50만 원가량밖에 안 된다. 현대차 노동자의 경우 기본급이 전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퍼센트밖에 안 된다. 반면 수당의 종류는 무려 40여 개나 된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 자본가들은 마땅히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할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해 왔다. 그 결과 법정 노동시간 동안의 시간당 임금보다 초과 노동시간 동안의 시간당 임금이 더 적게 됐다.
근로기준법 56조의 취지 ―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초과근로시간을 제한하고, 초과근로를 시킬 때는 그만큼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한다 ― 를 누더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통상임금 소송으로 노동자들이 받을 돈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로부터 ‘저녁이 있는 삶’, ‘건강한 삶’을 빼앗고도 지불하지 않은 ‘장물’이다.
이런 기형적 임금 체계 때문에 노동자들은 낮은 기본급으론 생활할 수 없어서 연장, 휴일, 특근 등 초과노동을 하느라 등골이 뽑힐 지경이었다.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건강한 삶과 스스로 생각하고 정치 활동을 할 여유를 뜻한다. 이런 시간이 확보돼야만 소외의 효과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기본급만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각종 수당을 기본급화해 기본급 비중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기본급의 액수는 초과노동이 필요 없을 정도로 높여야 하고, 불안정한 시급제가 아니라 월급제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통상임금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지금이 임금 체계 개선과 노동조건 악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을 주장하기에 좋은 기회다.
꼼수
한편, 자본가 계급은 국가기관들을 이용해 이 소송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 한다. 애초에 사법부가 통상임금 소송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긴 이유는 통상임금을 폭넓게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를 뒤집기 위해서였다. 박근혜 자신이 GM 회장을 만난 뒤 이런 신호를 줬다.
따라서 통상임금 판결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나올 수 있다. 물론 그동안 굳어진 판례를 뒤집는 것은 사법부에게도 부담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설사 판례가 뒤집히지 않는다 해도 모호한 판결로 나와, 기업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법망의 구멍을 찾는 꼼수를 쓰거나 임금 체계나 노동조건 개악을 시도하려 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와 경총은 통상임금 논쟁을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임금 체계를 개편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근속기간에 따라 해마다 임금이 인상되는 연공급제를 성과급제로 전환해 노동자들에게 성과를 내도록 압박하고 임금을 깎으려는 것이 대표적이다.
기업주들은 통상임금 판단의 핵심 기준인 임금의 ‘고정성’을 없애기 위해 고정적인 수당과 상여금 등을 없애 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개악에 맞서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려면 노조는 노동자 개개인의 소송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지배자들의 의식적인 판례 뒤집기 시도에 맞서 조직적으로 항의해야 한다.
아쉽게도, 통상임금 문제를 ‘특권적 노동자층’의 문제로 취급하며 쉬쉬하는 경향이 상당히 있는 듯하다. 그러나 통상임금 소송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버스 노동자들처럼 장시간 근무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환경미화원 등 ‘고소득 기득권’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들도 통상임금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소송에 참여하는 더 많은 부분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노동자들일지라도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빼앗길 이유는 없다.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 봐도 그렇거니와, 전술적 효과 면에서도 그렇다. 잘 조직된 정규직 대기업 노조가 통상임금을 넓게 인정받으면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통상임금을 산정하거나 인금 인상을 요구할 때 유리하다.
무엇보다 통상임금 소송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분위기가 지속되면, 통상임금 소송을 계기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기본급을 높이는 투쟁을 적극 벌여 나가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간질
물론 이 투쟁은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투쟁과 연관돼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통상임금 소송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비정규직 조직화 기금으로 사용하자는 제안을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안을 하는 사람들의 일부가 통상임금 소송을 ‘배부른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편, 노동부는 “[통상임금 논란이] 최저임금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이간질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저임금 사업장에서 기업주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그러나 통상임금 인정 범위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은 둘 중 하나를 희생시켜야만 하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상여금이나 수당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도록 투쟁하면서도 그만큼 최저임금 수준을 올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상이한 부분들은 서로 격려하고 고무하고 자극을 주며 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