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박근혜식 고통 전가의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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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박근혜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하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 과정으로 보건대, 박근혜 정부 안에서조차 제대로 조율이 안 된 채 발표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예를 들어, 기획재정부는 3개년 계획을 준비하라는 박근혜의 지시에 따라 2월 20일쯤에 ‘15대 중점과제, 100대 실행과제’를 마련해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기재부의 안을 무시하고 2월 25일에 자신이 직접 손본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기재부는 이미 배포한 보도자료를 취소하고 부랴부랴 새로운 계획을 보도자료로 내놓았다.
이처럼 계획을 급조하다 보니 혼란도 발생했다. 예를 들어, 박근혜는 월세 부담을 줄여 준다며 ‘월세 세액공제’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에 따라 세금을 더 부담하게 된 집주인들의 반발이 거세자 일주일 만에 집주인들의 세금을 감면해 주는 보완책을 내놓아야만 했다.
또,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는 경제 이념인 ‘창조경제’는 여전히 실체를 알 수 없어서 3개년 계획에 실린 창조경제 방안들은 과거 김대중 정부의 ‘벤처 정책’이나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 등과 별다른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정부 지원으로 기업들을 후원하는 이런 정책은 거품을 만들어 오히려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준 바 있다.
노동유연화
이런 혼란과 말잔치는 분명 박근혜 정부의 위신과 정책 집행력을 깎아먹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근혜가 직접 고른 3개년 계획은 박근혜 정부의 본질을 분명히 드러내 주고 있다.
박근혜는 3개년 계획을 통해 이전까지 내놓았던 ‘경제민주화’나 복지 공약 같은 입발림 소리조차 내팽개치고,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 같은 친기업·친부유층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첫째, 3개년 계획은 그동안 추진해 온 ‘공공부문 정상화’ 정책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즉, 과도한 부채를 빌미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과 노동조건 악화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또, 박근혜는 기재부 계획에는 없던 공무원·군인·사학연금 개악안을 3개년 계획에 직접 포함시켰다. 이는 공공부문 부채를 축소하고 국민연금·기초연금 개악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
게다가 3월 5일에 발표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세부 실행과제’에는 “효율적인 인력 운용을 가로막는 노동조합 동의권 남용 등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해 기업 경영 유연성 제고”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시 말해, 단협 개악으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공격했듯이 민간부문 노동자들을 공격할 수 있도록 임단협 교섭 지침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는 ‘공공부문 정상화’가 공공부문 구조조정만 노린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 공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계획이라는 〈노동자 연대〉(〈레프트21〉) 신문의 지적이 옳았음을 보여 준다.
둘째, 3개년 계획에는 “파견업 범위·기간을 확대”하는 파견법 개악안과 사내하도급을 합법화하는 사내하도급법 도입, 시간제 일자리 확대 방안 같은 비정규직 확대 정책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기에, 근로시간을 단축한다면서 “예외적 연장근로 한도 확대” 방안과 “근로시간의 탄력적 운용” 방안을 포함시키고, 정년을 연장한다면서 “임금피크제 확산 지원”을 포함시키고,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고용보험 혜택을 준다면서 “실업급여 반복 수급자에 대해 수급액의 단계적 축소 등 제재 강화”를 포함시켜, 오히려 노동조건을 악화하고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정책을 대거 포함시켰다.
이처럼 3개년 계획은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부문의 노동조건과 임금을 공격하는 대대적인 노동유연화 정책이다.
셋째, 3개년 계획은 민영화와 공공요금 인상 계획이다.
박근혜는 공공기관 부채를 감축한다며 공기업 자산매각을 추진하고 있고, 공공부문의 “비정상적인 관행과 낮은 생산성”을 언급하며 “경쟁원리를 과감하게 도입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공기업 분할과 자회사 신설’이다. 기획재정부는 “수서발 KTX와 같은 기업분할, 자회사 신설 사례를 항만 등 다른 공공부문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민영화와 규제 완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전기·가스·우편·수도 같은 다른 공공부문에도 적용해, 돈이 되는 알짜배기 부분을 분리하고, 훗날 이 자회사를 사기업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최근 추진하고 있는 의료민영화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원격진료와 영리 자회사 설립뿐 아니라 “경제자유구역 내 투자개방형 병원 규제를 합리화”한다며 영리의료법인에 대한 규제를 풀기로 했다. 이미 경제자유구역이 여덟 군데나 있으므로 이는 한국의 의료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민영화·규제완화를 보건의료, 교육, 금융, 관광, 소프트웨어 등 5대 유망서비스업에서 일제히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넷째, 3개년 계획은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 지원 정책이다.
박근혜는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로 생각하고 규제를 확확 들어내야” 한다거나 “규제 개혁이라 쓰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읽는다”며, 연일 규제 완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규제총량제”와 “자동효력 상실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다를 바 없다.
여기에 최근 위기를 겪고 있는 건설 대기업을 지원한다며, 정부가 보유한 외환보유액 중 11조 원을 대출해 주기로 했다.
조바심
이처럼 박근혜의 3개년 계획은 노동유연성을 강화하고, 민영화와 정부 지원으로 수익성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구하려는 정책이다.
물론 그 대가는 노동자들이 지게 된다. 경제 위기와 저성장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노동자들을 더한층 쥐어짜려는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신흥국의 위기와 중국 경기의 둔화 등을 보면서 더욱 조바심을 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에게 이 과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지난 연말에 벌어진 철도 파업은 박근혜와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노동자들에게 줬고, 불통 강성 정부를 진정한 위기로 몰아넣었다.
최근에는 보건의료노조가 민영화 반대 분위기에 힘을 얻어,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도 한국노총과 그 외 공공부문 노동조합들과 연대해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박근혜에 맞선 저항의 선두에서 강력히 투쟁하면 지난 연말에 그랬듯이 학생, 청년,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저항의 초점을 제공하고 광범한 사회적 연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