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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과 네이더

녹색당과 네이더

미국 녹색당은 6월 말 전당대회에서 랠프 네이더를 거부했다. 네이더는 1996년과 2000년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었고, 특히 2000년 대선에서는 그보다 1년 전 시애틀 시위에서 시작된 반자본주의 운동의 부양력 덕분에 270만 표나 얻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녹색당 대의원들의 다수는 네이더를 거부했는데, 그 핵심 이유는 민주당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네이더의 “이기주의”―당원도 아닌 네이더가 자신의 명망을 위해 녹색당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나 녹색당 자체의 독자 후보 필요성―네이더는 자신을 녹색당 후보로 지명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라 녹색당 당원인 피터 카메호를 러닝 메이트로 한 무소속 출마를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을 둘러댔지만, 사실은 네이더가 출마하면 2000년 대선 때처럼 박빙의 승부처에서 케리에 불리한 결과가 빚어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녹색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데이빗 캅은 이른바 “안전한 주(州)들” 전략을 주장했다. 즉, 부시와 케리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주들에서 녹색당 후보가 선전(善戰)하면 부시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사태가 발생하므로 그런 곳에서는 부시의 패배를 위해 녹색당 후보가 소극적인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팻 라마르슈는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뒤 인터뷰에서 케리가 부시를 이길 가능성이 위협받는다면 자신은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네이더-카메호 팀을 지지한 녹색당원들은 그런 주장을 거부했다. 그들은 “우리의 과제는 전쟁에 찬성하는 민주당 후보를 백악관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동성애자 커플의 결혼을 허용해 유명해진 뉴욕주 팰츠 시장 제이슨 웨스트는 캅의 전략이 케리가 부시와 사뭇 다른 진보주의자라는 착각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안타깝게도 대의원 다수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2차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네이더-카메호 팀은 308표 대 408표로 패배했다.

박빙

사실, 네이더가 비록 녹색당원은 아니지만 그는 어떤 당원보다도 녹색당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1996년과 2000년 대선 출마 덕분에 녹색당의 주 지부는 네 배나 늘었다. 2000년 대선 이후 네이더는 중앙 수준에서든 지역 수준에서든 녹색당 정치자금 모금의 일등공신이었다. 녹색당 스스로 자신들의 급속한 성장이 2001년 이후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다.
물론 올해 네이더의 일부 행보가 좌파의 실망을 자아낸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우파인 개혁당의 승인을 받으려 한 것이나 케리와 민주당에 필요 이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 점 등이 그렇다.
그러나 지금 네이더에게 쏟아지는 비방은 이런 좌파적 비판들이 아니다. 2000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 앨 고어의 표를 잠식해 “부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것들이다. 부시 승리의 진정한 일등공신은 부시보다 50만 표나 더 얻고도 흑인 유권자들의 선거 부정 항의 투쟁을 외면한 채 무기력하게 부시에게 굴복한 고어 자신이었다.
녹색당이 네이더를 거부한 것은 기성 정치 체제에 환멸을 느껴 새로운 좌파적 대안을 찾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저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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