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둥성 소요:
고도성장이 낳은 환경오염에 불만이 폭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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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중국 광둥성 마오밍시에서 파라자일렌(PX) 공장 건설 계획에 반대하는 대규모 소요가 일어났다. 그 지역 지방정부가 국유기업 시노펙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기존의 석유화학 공장에 연간 생산량 60만 톤 규모의 파라자일렌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려 하자, 환경오염을 우려한 현지 주민이 강력하게 항의에 나섰던 것이다.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수천 명에서 많게는 2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파라자일렌 공장 건설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처음에 시위대의 행진은 평화적으로 진행됐지만, 이윽고 중무장한 경찰의 잔인한 진압으로 시위는 순식간에 격렬한 소요 사태로 비화했다. 일부 중화권 언론들은 소요가 격화하자 당국이 탱크와 무장 차량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주민들은 진압 과정에서 15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돌멩이를 던지고 경찰 차량을 불지르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무장 경찰들의 모습과 도로 한복판에 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쓰러진 시위 참가자의 사진들이 올라왔다. 한 목격자는 웨이보에서 마오밍시 전체가 전쟁터와 같다며 연대를 호소했다.
중국 당국은 소요 사태가 터지자마자 인터넷 검열을 강화하며 언론을 통제하고 나섰다. 웨이보나 중국 국내 포털 사이트에 마오밍 관련 소식과 사진이 올라오면, 얼마 안 가 바로 삭제됐다.
소요 사태가 터진 직후, 당국은 “소수의 불법분자들이 군중을 선동해 과격 시위를 주도했다”며 시위대에 비난을 퍼부었다. 나중에 당국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시인했지만, 사망자는 없다고 우겼다.
저항의 확산
△환경오염에 맞선 투쟁은 오늘날 중국에서 벌어지는 저항 운동의 중요한 일부다 경찰 폭력에 분노한 마오밍 주민들이 경찰 초소를 불태웠다 ⓒ사진 출처 http://www.molihua.org/
중국 당국은 저항의 확산을 막으려 꽤 애썼지만, 이 사태가 전국적 화제가 되는 것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 지난주 내내 마오밍에서 시위가 계속됐다. 홍콩 언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일부 참가자들이 사망자와 부상자를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팻말을 들었다고 했다. 일부 학생들은 수업 거부, 일부 노동자들은 연대 파업에 나섰다.
저항은 광둥성의 다른 도시로 확산됐다. 광둥성의 성도인 광저우에서 연대 시위가 일어났고, 이는 곧 인근 도시 선전으로도 번졌다. 중국의 주요 제조업 밀집지역이자 노동자 투쟁이 가장 활발한 광둥성에서 말이다.
마오밍 주민이 파라자일렌 공장 건설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파라자일렌은 플라스틱병, 필름, 폴리에스테르 의류 등을 만드는 데 광범하게 쓰이는 석유화학 제품 원료다. 그런데 파라자일렌이 흡입되거나 몸 속으로 들어가면 인체에 해롭다. 파라자일렌은 발암물질인데다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인화성이 높아, 화재가 나면 공장 주변의 주민이 위험해질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이런 우려를 무시하고 파라자일렌의 국내 생산을 늘리려 애써 왔다. 국내 수요가 빠르게 늘어, 파라자일렌의 수입 의존도가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계획에 발맞춰, 지방정부들도 앞다퉈 기업들과 손잡고 파라자일렌 공장을 건설하려 했다.
파라자일렌 공장이 들어서는 지역의 주민과 노동자들은 이 공장이 안전하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이런 불신에는 근거가 있다. 예컨대 지난해 7월 장저우에서 파라자일렌 공장 폭발 사고가 일어났는데, 사고가 나기 전에 관영 〈런민리바오〉(인민일보)는 파라자일렌이 “커피만큼이나 무해하다” 하고 보도했다!
다롄 시위
파라자일렌 공장을 비롯한 위험한 화학공장 반대 시위는 2000년대 중국에서 벌어진 집단적 저항의 중요한 일부였다. 2007년 중국 푸젠성 샤먼시에서 공장 건설 반대 시위가 강력하게 일어나, 결국 지역 당국이 다른 지역으로 공장 건설을 이전하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2012년 저장성 닝보에서도 주민 시위가 연일 계속되자 예정된 공장 건설 계획이 좌절됐고, 지난해 5월 윈난성 쿤밍에서도 지역 주민들이 승리해 공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시킨 바 있다.
특히, 2011년 8월 랴오닝성 다롄에서 벌어진 파라자일렌 공장 반대 시위는 매우 대단한 사건이었다. 다롄 주거지 근처의 파라자일렌 공장에서 강으로 배출된 유독 물질이 태풍과 함께 주거 지역을 덮칠 뻔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위가 시작됐다.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분노한 주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는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환경오염 반대 시위이자 1989년 톈안먼 항쟁 이후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위였을 것이다.
아마도 공장 반대 시위에 나선 마오밍 주민은 이런 사례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오밍 소요가 커지면서 이웃 도시로 번지고 동조 파업까지 일어나자, 중앙 정부와 마오밍 당국은 여론을 수렴해 공장 건설을 진행하겠다며 일단 불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의 지배 관료들은 자칫 이 사태가 커지면 다른 사회적 불만과 결합돼, 예측 불가능한 사태로 번질 것을 우려했던 듯하다.
그러나 관료가 공장 건설 계획을 쉽사리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파라자일렌 공장의 확장과 개조에 관한 인허가 권한을 지방정부에 넘겨 줘, 관련 인허가 절차가 더 쉽게 이뤄지도록 해 준 바 있다. 그리고 마오밍 당국은 학교에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장 건설 찬성 서명을 받고 있고, 밤에 대학 기숙사를 조사하고 대학생들의 외출을 금하기도 했다.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환경오염은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베이징의 ‘살인 스모그’는 중국 환경 문제의 대표적 사례다. 그래서 환경 파괴와 오염을 둘러싼 불만과 저항은 상당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 2006년 중국 환경부의 한 고위 관료가 2005년에 환경 파괴에 항의하는 시위가 매주 1천 건 가량 발생했다고 밝혀, 나라가 발칵 뒤집힌 바 있다. 앞서 봤듯이, 이런 시위 중 일부는 거의 봉기 수준이다. 따라서 이런 저항이 다른 사회적 불만이나 노동자 투쟁과 결합되면, 중국 전체를 뒤흔드는 사태로도 발전할지 모른다.
한국에도 파라자일렌 문제가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파라자일렌 생산국이지만, 공급보다 수요가 더 빨리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5년까지 중국의 파라자일렌 수요가 1천6백만 톤가량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국민일보〉, 3월 31일)
그래서 한국의 석유화학 기업들도 경쟁적으로 파라자일렌 공장을 새로 짓거나 증설하고 있다. 그동안 파라자일렌 사업이 이 기업들한테 상당한 수익을 안겨 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도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같은 대기업들이 외국 자본과 합작해 파라자일렌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외국인투자촉진법을 개정하며 이 기업들을 지원해 줬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파라자일렌 공장의 유해성 문제가 일부 지역의 환경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예컨대 SK인천석유화학은 인천 서구에 파라자일렌 공장을 증설하려 한다. 그러나 공장 바로 맞은편에 주택가와 초등학교가 있어서, 인근 주민들이 공장 건설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등교를 거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