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을 심판할 자격이 없는 미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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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을 심판할 자격이 없는 미국 정부
지난 7월 1일 이라크 특별재판소 법정에서 사담 후세인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미국은 기만적 주권이양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식 재판 일정보다 훨씬 앞당겨, 형식적으로는 이라크 재판부가 진행하는 공개 재판을 열었다.
하지만 재판은 사실상 미국이 조종했다. 범죄 증거 조사는 미국의 연방수사국(FBI), 법무부 조사관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라크 재판부에 대한 법률자문도 미국 전문가들이 맡고 있다. 재판 과정에 드는 비용도 모두 워싱턴이 부담한다.
특별재판소 법정은 미군 기지 ‘캠프 빅토리’ 내에 설치됐고, 후세인은 미군 헬기로 호송됐으며, 법정은 미군 당국이 조종하고 감시했다. 사담 후세인을 구금하고 있는 미국은 그가 수감된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없앴고, 각국의 TV에 “미군 검열 필“이라고 찍힌 재판 녹화 테이프를 보냈다. 그리고 향후 “특별재판소의 모든 심리는 언론 취재를 불허“했다.
얼마 전까지 미국은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개발·보유를 문제삼았지만 무기가 발견되지 않자 이제는 주로 이라크 내에서의 독재와 관련된 혐의들을 적용하고 있다. .
후세인이 악독한 독재자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1990년까지 미국 정부는 독재자 후세인의 후원자였다.
후원자
바트당이 1963년과 1968년에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할 때 미국은 쿠데타를 지원했다. CIA는 쿠데타 세력에게 공산주의자들과 반대파들 명단을 넘겨 줬고, 바트당 정권은 이 반대파들을 학살했다.
쿠르드족에 대한 독가스 학살은 1970년대 미국의 한 기업이 이라크에 생화학 무기 공장 설계도를 제공하는 것을 미국 정부가 용인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게다가 1979년 이란에서 민중 혁명이 발생하자, 1980년대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이란과 전쟁을 벌인 후세인에게 막대한 무기를 제공했다.
1988년 후세인이 할라브자의 쿠르드족 민간인들을 독가스로 학살한 뒤에도 미국은 후세인을 계속 지지했다.
기고만장해진 후세인은 마침내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침공 전에 묵인했던 미국은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냉전 해체 이후 세계 패권을 과시하기 위해 걸프전을 일으켰다.
미국은 걸프전이 독재자 후세인 제거를 목표로 한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991년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와 북부의 쿠르드족이 반(反)후세인 봉기를 일으켰을 때, 미국은 후세인이 그 봉기를 무참히 진압하도록 방조했다.
독재자 후세인을 키운 미국이 그를 심판한다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