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로 드러난 박근혜의 ‘노동시간 단축’ 약속:
실노동시간 줄이고 기본급을 대폭 인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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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통상임금, 노사(정) 관계 등 주요 노동 현안에 대한 ‘사회적 타협’을 시도했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사정소위가 4월 23일 합의안 도출에 실패한 채 활동을 마감했다. 특히 이들은 핵심 의제로 부각됐던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서도 꾀죄죄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실종”되고 “불법 장시간 노동 합법화 논의로 변질”됐다고 평했다.
실제로 정부·여당과 경총은 소위 기간 내내 주당 최대 52시간 노동(기본 40시간 + 연장근무 12시간)을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누더기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썼다. 현행법보다 노동시간을 더 늘리고 그 시행도 최대한 늦추려 한 것이다. ‘2017년까지 연간 근로시간을 1천9백 시간 이하로 줄이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은 기초연금 등 복지 공약처럼 대국민 사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7년까지 위법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면제하는 안을 제시하며 사실상 법 시행을 유예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막판에는 여기서 더 후퇴해 처벌 면제 기간을 5~6년으로 연장하는 방안까지 저울질했다. 노동자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기업주들의 비용 부담을 헤아리며 새누리당과의 “야합”에 골몰했던 것이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의 뒷걸음질에도 불구하고 판은 깨졌다. 박근혜 정부와 경총 등이 최악의 패를 던지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4월 21일 마지막 회의에서 현행법을 개악해 항구적으로 주당 60시간 노동을 법제화하고, 그 시행도 2017년부터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해 2026년에 완수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게다가 2017년 말까지는 휴일근무에 지급해야 할 가산 수당도 현행 50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삭감하자고 했다. 최소한의 노동시간을 규제한 법이 있어도 정부가 나서 이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재계가 이토록 강력하게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고 나선 것은 점점 악화하는 경제 상황 때문이다. 중국 성장률 둔화와 미국 양적완화 축소로 인한 신흥국 위기 속에서 한국 지배자들은 적은 비용으로 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더 커졌다.
탄력적 근로 시간제
그래서 경총은 전 세계적인 경쟁에서 한국 기업들이 뒤지지 않으려면 ‘우리 법만 규제를 강화해선 안 된다’며 노동시간 단축에 반감을 드러냈다. 관련법의 영향을 크게 받는 자동차 등 제조업체들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가 약화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생산차질, 인건비 상승, 노사갈등 증대” 등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재계는 노동시간 단축이 “기업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만 줄 것이라며, 서두를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주요 산업국보다 4백~5백 시간이나 더 길다. 세계 최장시간 노동으로 등골이 휘어가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시급하게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휴대폰 부품사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지난해 6월 과로사한 31세 노동자의 비극을 떠올려 보라.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사망·재해가 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노동시간 단축은 당장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편,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시간 단축이 시간당 임금을 인상시킬 것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쥐어짜고 법적으로 보장된 휴일근무 수당조차 떼먹은 데 대한 최소한의 도덕적 죄책감조차 없이, 이윤을 조금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재계는 이미 노사정소위에서 휴일근무 가산 수당 삭감과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까지 주장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사장들이 마음대로 노동시간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특정 주에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해 일해도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돼 인건비를 줄이는 효과를 낸다.
경계
저들은 마치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인상으로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처럼 과장하지만, 실제 인건비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퍼센트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금의 경제 위기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이윤에 눈 먼 광란의 시장 경쟁에서 비롯한 것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기업주들의 이윤 보호를 위해 임금과 노동조건을 희생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1998년에 임금 삭감 없는 주 35시간을 도입한 바 있다. 이미 1935년에 ILO조차 “노동시간 단축은 생활수준의 저하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당장 대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천문학적인 사내 유보금만으로도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임금 삭감을 전제로 한다면 노동자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잔업·특근 등 초과근무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실노동시간은 다시 늘어나게 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기본급을 대폭 인상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노동강도 강화에도 반대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고용 증가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일각에선 법정 노동시간 단축이 실노동시간을 줄이지 못했다는 회의감도 있는 게 사실이다. 2004년부터 도입된 주 40시간제가 누더기가 되고, 노동시간 단축 특례 업종을 두면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자의 38퍼센트에 해당하는 4백만 명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던 탓이다. 게다가 임금 인상이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다시 초과근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민주노총의 제안대로 즉각적인 근로기준법 적용, 특례업종 폐지, 근로기준법 제외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 등의 조처가 실질적으로 취해져야 한다. 기본급을 대폭 인상하고 노동강도도 높이지 말아야 한다.
이제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 관한 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간 모양새다.
국회 환노위 위원장 신계륜은 “노사정 간 협의를 통해 문제가 진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앞으로도 노사정위가 남아 있다고 암시했지만, 이미 각계는 노사정소위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도 노사정위 협상은 없다고 선언했고, 대법원 판결을 이용해 투쟁을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언론들도 대체로 대법원이 조만간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된다’고 판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결코 사태를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법원 판결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나왔던 게 사실이지만, 대법원이 정부·재계를 위한 정치적 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이미 대법원 판결이 난 통상임금 소송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데서 보듯, 이번에도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경총은 노사정소위 논의가 끝나기도 전에 “근로시간 단축 입법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고 언론에 밝힌 바도 있다. 경총 부회장 김영배는 “대법원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취지의 판결을 해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경계를 늦추지 말고 지금부터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