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철도 소위 합의는 정부의 자회사 분할, 요금 인상 추진에 명분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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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철도산업발전 국회 소위원회(이하 철도 소위)는 ‘정부의 철도산업발전방안에 대한 제언’ 보고서를 제출하며 활동을 마감했다. 17일 국회 국토교통위는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철도 민영화에 제동을 걸 어떤 내용도 담지 못했다. 여당의 강력한 반발로 수서KTX 민간 매각 방지법도 끌어내지 못했고, 향후 추진될 정부의 철도공사 자회사 분할 계획에 대한 비판도 담지 못했다.
심지어 철도 소위는 요금 인상을 주문해 철도 민영화 반대 운동의 핵심 우려 사항을 나서서 현실화하는 합의를 했다. 철도 민영화 반대 운동은 시장 논리에 따른 요금 인상이 아니라 ‘착한 적자’가 필요하다며 정부의 재정 확대를 주장해 왔다.
철도 소위가 진행되는 동안 사측은 철도 파업에 대한 보복에 나서 철도 조합원 4백4명을 해고하는 등 중징계를 내렸고, 손해배상 1백60억 원, 노조기금 가압류 1백16억 원 등 탄압을 가했다. 철도공사는 4월 초에 한 조합원이 강제전출에 대한 압박감으로 자살하고 현장조합원들이 격렬하게 저항에 나섰음에도 강제전출을 밀어붙였다. 철도 소위는 이런 사태를 막는 데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철도노조도 이와 같은 이유로 이 볼품 없는 합의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사회적 논의 결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성명을 냈다.
그런데 이번 합의 보고서의 문제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강조하는 ‘구분 회계 도입’에 합의한 것은 매우 우려스런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구분 회계는 정부가 공공기관 부채 관리 강화를 위해 이 제도가 필요하다며 지난해 LH·철도공사 등 7개 공기업을 시범기관으로 지정한 것이다. 특히 철도의 경우, 사업자·노선별로 회계를 구분해 적자 요소를 분명하게 밝히겠다고 한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것은 부채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해 임금과 일자리를 공격할 명분으로 이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흑자 노선 수익으로 적자 노선을 지원해 온 교차보조를 봉쇄하고 심지어 적자 부문의 분리 매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구분 회계 도입이 곧바로 자회사 분할과 등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철도공사를 여러 자회사로 분할하기 위한 포석 깔기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정부가 철도공사에서 분리해 설립하려는 화물 자회사를 지원하기 위한 ‘철도물류지원법’ 제정에 합의한 것도 적절치 않다.
이 밖에도 정부에게 철도 지원을 확대하라고 주문하며 그 전제로 ‘강력한 경영 정상화 노력’을든 것도 우려스럽다. 철도공사가 내놓은 ‘정상화 대책’이 인건비 절감처럼 임금·노동조건과 일자리를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상화 대책은 이용객이 적은 역을 무인화하거나 아웃소싱을 주고 적자선 운행을 축소하는 등 공공성을 후퇴시키는 내용도 포함했다.
사실상 이번 철도 소위 합의는 단지 얻은 게 없는 ‘빈손’ 합의 정도가 아니라, 정부·여당의 입장이 대부분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철도 소위원장인 새누리당 강석호는 “철도 경영 정상화를 위한 권고 사항이 많이 포함됐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뒷문
그런데 여당이야 그렇다 치고 야당들도 문제의 보고서에 합의했다.
사실 새정치민주연합은 철도를 분할 민영화하는 것에는 정부·여당과 견해 차이를 보였지만, 철도공사 자체의 경영 효율화는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입장 때문에 적자 해소를 위한 요금 인상, 이른바 ‘투명한 경영’ 등을 위한 조처들에 반대하지 않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똑같은 논리로 집권 시절에 공기업 민영화와 구조조정을 추진했고, 인력 감축 등 고강도 구조조정과 수익성 강화에 일관되게 맞서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들은 철도공사의 회계 분리에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철도 분할 민영화는 반대하지만 회계 분리는 해야 한다’는 논리는 뒷문을 열어놓은 채 도둑을 막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조차 ‘투명한 경영’ 논리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은 유감스럽다. 물론 오병윤 의원은 수서KTX 민간매각 법제화나 공항철도 매각 반대, 노조 탄압 중단 등을 철도 소위에서 주장했다. 그럼에도 최종 순간에 ‘판을 깨지는 말아야 한다’는 압력을 받아 위의 내용들에 합의해 준 듯한데 이는 잘못된 태도다.
철도노조 중앙 지도부도 최종 합의 전에 합의 반대를 촉구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철도 소위는 지난해 철도 파업이 철도 역사상 최장기 파업을 기록하며 박근혜를 위기로 몰아 넣는 상황에서 여야가 파업 종료를 위해 내놓은 알맹이 없는 중재안이었다. 당시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모처럼 제 역할을 했다며 철도노조와 여야 간의 합의를 치켜세웠지만 이는 허망한 기대였다.
이번 철도 소위의 교훈은 민영화를 막을 힘은 제도 정치권이 아니라 지난해 12월 파업에서 그 잠재력을 보여 준 바 있는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과 광범한 연대에서 나온다는 점을 확인시켜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