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KT ‘구조조정’과 민주파 투사들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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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백혈병 노동자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삼성전자 출신 황창규가 이제 KT에 들어와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명예퇴직 강요 속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무려 8천3백20명이 퇴직서를 썼다. 이것은 전체 직원의 4분의 1에 해당하고, 단일 기업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명예퇴직 신청자의 평균 나이는 51세밖에 되지 않고, 40대도 31퍼센트나 된다. 청춘을 바친 노동자들이 정년에 한참 못 미치는 나이에 퇴물 취급을 받고 쫓겨났다.
이 과정은 말이 ‘명예’ 퇴직이지, 정리해고나 다름없었다. 퇴직 대상자들의 자리에 짐 싸라고 박스를 갖다 놓고, 하루 종일 회의실에 가둬 놓고 퇴직을 강요했다. 퇴직하지 않으면 비연고지로 보내거나 이상한 일을 맡겨 괴롭힐 거라는 협박도 공공연히 했다.
자녀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 힘들어도 버티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자녀 대학 학자금 지원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사측은 구조조정안에 반대하는 총회 소집 서명을 받은 KT민주동지회 회원 2명을 징계위에 회부했다. 쫓겨날 노동자들의 피눈물 속에 KT의 주가는 올라 대주주만 살판났다.
KT는 경영이 어려워졌다며 노동자들을 퇴출시켰지만, KT 경영에 노동자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최근 수년 동안 회사 순이익도 1조 원이 넘었다.
그런 KT가 지난해 수익이 크게 악화한 것은 통신 시장 경쟁과 전임 회장 이석채 탓이다. 이석채는 이명박의 낙하산으로 들어와 횡령, 배임, 대출사기, 고객 정보 유출, 사업 실패 등을 저질러 놓고도 지난해 연봉을 30억 원이나 챙겨 ‘먹튀’했다. 그런데 왜 노동자들이 희생해야 하는가.
명예퇴직은 마무리됐지만, 아직 구조조정은 끝나지 않았다. 사측은 당장 5월부터 현장 영업, 개통, AS 업무 등을 외주화하려 한다.
사측은 이 분야의 노동자들 중 명예퇴직을 거부한 사람들을 비연고지로 보내거나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 적응할 수 없는 업무를 주고 지속적인 퇴출 압박을 할 것이라고 위협해 왔다.
이미 KT는 전화 교환 업무를 하던 여성 노동자에게 전봇대를 타게 하는 등 악랄한 ‘퇴출 프로그램’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혀 끝내 해고한 전력이 있다.
투쟁을 조직하기
KT민주동지회의 민주파 투사들은 이런 악몽을 막기 위해, 앞으로 지속될 외주화와 상시적 구조조정 압박에 맞서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비록 대규모 명예퇴직 강요는 막지 못했지만, 명예퇴직 국면에서 여러 조합원들이 어용노조 지도부의 배신적 합의에 분노해 KT민주동지회의 어용노조 탄핵 서명에 동참하고 지지금을 보내 주는 등 지지가 있었다.
민주파 투사들은 당면 상황에서 노조 집행권 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당장 벌어질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위원회 구실을 하면서 조합원들의 분노를 대변하고 항의 운동을 건설해 나가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지지를 모을 여지도 생길 것이다.
물론 배신적 합의를 한 어용노조 위원장은 탄핵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먼저 민주파가 노조 집행권을 장악해야만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어용노조하에서 투쟁위원회 같은 비공식 투쟁체를 만들어 투쟁을 조직한 경험이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노조 집행권을 가져야 비로소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노조는 때때로 투쟁의 전제 조건이기보다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KT의 악랄한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있는 만큼, 민주파 투사들이 저항의 구심이 돼 싸워 나간다면 사회적 지지와 연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