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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주 씨가 지난 호에 쓴 독자편지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간도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한국의 우익 이데올로그들이 오히려 간도문제를
양날의 칼
이런 종류의 이데올로기는 실제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 즉 외부를 향한 물리적 행동의 선포라기보다는 오히려 내부를 향한 주장 ― 대체로는 계급 분열을 은폐하는 민족적 단결을 주장하는 ― 일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한국 측의 대응은 이런 점에서 동전의 앞뒷면일 뿐이다.
문명주 씨는 이 점을 과소평가하거나, 혹은 너무 진지한 나머지 비약이라는 우를 범하는 듯하다. 언제 나타날지도 모를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은 영토분쟁 과정이기도 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전통시대 왕조국가의 영역
그런데 동북아시아에서 왜 하필 국경이 분명히 그어진 지도가 18세기 이후에나 등장하고, 또한 압도적으로 서양에서 제작된 것인지에 대한 해명은 없다.
자유의 공간
조선 후기까지도 조선의 북방방어선은 압록강과 두만강 경계에서 크게 후퇴해 있다는 점과 심지어 동해안 일부 지역에 여진족들이 살고 있었다는 점을 제쳐두고라도, 간도는 한국 땅이라는 식의 주장은 그 자체로 매우 성립하기 힘들다.
간도가 한국 땅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지역이 고조선
첫째 근거는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 고조선
둘째로,
거듭된 비약을 인정해서 간도에 대한 1909년 협약이 문제가 된다고 해도, 간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데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북한과 중국이 1962년에 맺은 협약으로 현재의 국경은 압록강-두만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간도지역은 청조의
이 때의 월경은 농토개간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도망, 채집
청나라의 봉금조치가 해제된 것은 19세기 들어와서였다. 이 조치는 중원 지역의 토지 압박과 러시아의 팽창에 대한 대응이었다. 청나라는 봉금을 해제하면서 변경의 비어 있는 지역을 내실화하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족, 그리고 나중에는 조선인의 이주를 용인했다. 간도지역으로의 조선인 이주도 문명주 씨의 주장과는 달리 19세기 들어와 본격화한다.
이 지역에 대한 당시 청-조 양국 간 분쟁의 맥락도 현대와는 다르다. 분쟁의 핵심은 이주한 조선인에 대한 관할권
간도 이주 조선인들에 대한 관할권 마찰 때문에 2백 년 가까이 아무 문제도 없었던 백두산 정계비가 갑자기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서간도 지역에서는 대체로 청나라의 관할권이 인정됐다. 다만 북간도 지역은 청나라뿐 아니라 조선도 지방행정 구역으로 편입시켜 서로 관할권을 주장했다.
간도문제에 관해 역사적 연속성을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있다. 그것은 19세기 흉년과 정부의 가혹한 수탈을 피해 목숨을 걸고 이주한 조선 농민들을 악착같이 쫓아가 조세를 수탈하려 했던 조선 정부와,
한규한
송두율 교수 석방은 피억압자 운동의 승리
서울고등법원은 7월 21일 송두율 교수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송두율 교수가 1991∼1994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난 점은 유죄 판결했지만,
판사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검찰의 핵심 공소 내용이
우익들은 급진화하는 사회 분위기를 냉각시키고 우리 운동을 위축시키려고 송두율 교수를 마녀사냥해 왔다. 심지어 MBC PD수첩이 송두율 교수 특집 방송을 내보내는 것조차 막으려고 갖은 압력을 행사했다. 옳게도 MBC노조는
송두율 교수의 석방은 우리 운동의 승리다. 이제는 국가보안법을 실제로 폐지하기 위해 더 전진해야 한다.
조승희
경기침체의 원인을 노조에 전가하는 모건스탠리
미국의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기분 나쁜 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이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실로 역겹고 가증스러운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소위
도리어 물가인상은 경쟁적 이윤추구가 낳은 세계적
모건스탠리 아시아태평양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앤디 시에는
한편, 시에는 중국의 자산 버블의 지속 현상을 지적하면서 국가의
경기순환의 저점과 고점 사이에서 돈을 풀든지 묶든지 양자택일 하는 것밖에 대안이 없는 이 자들이 양념 삼아 용도 폐기된 케인즈주의적 시장개입을 들고 나왔다고 해서 뭐 새로울 것은 없다.
어차피 모건스탠리가 쌓아온
박 종 남
〈다함께〉 33호에 실린 정성진 교수의
1997년 이전 한국경제가 건실했으며, 위기는 금융자유화라는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거나 지금의 경제적 이행의 성격에 대해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선 정교수가 이들을 비판하려다 다소 간과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정교수는
간과
그러나 이것이 사실일까? 그리고 설사 그러한 수치들이 이전과 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현재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전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비중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5월 말 기준으로 우리 나라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주식 규모 3백47조 원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의 비중은 43.1%에 이른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핵심 우량기업들의 외국인 지분 비율은 이미 50%를 훌쩍 넘긴 지 오래다―삼성전자
이들 자본의 상당수는 투기성 단기자본이다. 이들의 특성은 시세차익이 기대될 때 들어왔다가 충분히 이익을 챙긴 다음 더 챙길 것이 없으면 미련 없이 털고 일어선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은 대체로 기업 설비투자 같은 것보다는 오히려 배당이나 자사주를 매입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이 보통이다.
빠져나감
이러한 결과로, 올해 3월 증권거래소 상장 주식회사들이 주주들에게 나눠준 배당금은 모두 7조 2천2백66억 원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가운데 37.4%에 이르는 2조 7백44억 원을 챙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밖에도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기업 인수와 증권투자를 통해 챙긴 이익은 모두 7조 5천억 원에 이른다. 1998년부터 따지면 모두 1백10조 원이 빠져나간 셈이다.
지난해 1월, SK텔레콤이 2조 4천9백억 원 규모의 설비투자 계획을 발표했다가 외국인 주식 투자자들이 주식을 투매해, 주가가 폭락하면서 몇 시간 만에 투자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은 이러한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기업 설비투자는 지난해 1.5% 줄어든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0.3% 줄어들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이윤율 저하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투자를 기피하는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또한 위에서 든 과정
부채 문제를 보자.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말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기업의 설비투자 자금 가운데 외부자금 비율은 1993년∼1997년 72.3%에서 1998년∼2004년 29.0%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을 수 있는 것은 기업이 더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 것이 주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기업의 현금 보유고는 65조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자라는 측면도 살펴보자. 지난 7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삼성
우선, 국내외 금리가 모두 낮았다는 점
이러한 여러 가지 점에 비추어볼 때 실물부분에서 금융부문으로의 잉여가치의 유출은 경제 위기 국면이라는 현재에 비추어볼 때 상당한 부담이며 그 효과 또한 실물경제에 실제적인 주름을 지게 할 만큼 파괴적이라는 점 또한 강조하고 싶다.
문명주
반론에 대한 답변
문명주 씨의 독자편지는 〈다함께〉 33호에 발표한 나의 글에 대한 반론이라기보다는, 최근 기업의 투자 부진의 원인에 대한
문명주 씨의 반론은 이와 같은 나의 비판을 전혀 뒤집지 못한다. 문명주 씨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자본의 지분 증대와 이로 인한 외국자본으로의 이윤 유출
문명주 씨가 주목한 이와 같은 현상은
아울러, 문명주씨와
정성진
자아도취에 빠진 탐욕스런
지난 7월 5일부터 MBC에서
드라마 제작진은
그러나 정주영과 이병철은 자본가 계급의 영웅이어도, 동시대를 살아온 노동자와 서민들에게는
이른바
당연하게도 노동법은 노동자들에게
정주영이 만든 현대중공업은
경제위기가 심화하고 반기업 정서가 상당히 높은 지금, 기업주를 주인공으로 한
유쾌한 점은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
김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