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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청와대 앞 농성: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한발 물러서다

“세월호 사고는 ...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하고 망발을 한 KBS 보도국장 김시곤이 9일 낮 보도국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날 밤 유족들의 항의 방문 때 코빼기도 비추지 않은 KBS 사장 길환영도 9일 낮 농성장에 직접 나와 유족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유족 등 수백여 명이 청와대 앞까지 가서 진을 치고서야 그나마 조그만 결과물을 얻은 것이다. 유족들은 애초에 KBS 항의방문을 위한 상경이었던 만큼 이런 조처를 ‘사과’로 인정하고 농성을 마무리했다.

유족들은 “저희 도와주러 오신 시민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게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이 나라를 바꿔 나갈 것입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하고 말했다.

계기

사실 KBS 김시곤의 망언은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다. 유족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이미 '전원 구조' 같은 터무니없는 오보와 편향 보도에 환멸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KBS 사측은 8일 밤 상경해 항의 방문을 한 유족들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출입증이 없다며 문전박대했다. 새벽이 돼서야 얼굴을 보인 보도본부장은 ‘그런 발언은 없었다, 오해다’ 하는 어이없는 변명을 해댔다.

사장의 사과와 당사자의 파면을 바란 유족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새벽에 청와대로 향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이날도 박근혜의 (자기 지지자가 아닌 노동계급의) 손님 맞이는 무례하고 야비하기 짝이 없었다. 만나서 말이라도 들어달라는 유족들의 요구에 박근혜가 보낸 답은 경찰 약 1천여 명과 경찰차벽이었다.

결국 유족들은 그 새벽에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여기에 전날 정부를 규탄하는 만민공동회에 참가했던 사람들도 함께했다.

아침이 밝자 SNS와 뉴스로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밤샘 항의방문과 농성으로 지친 이들에게 자발적으로 음료와 국물, 식사, 각종 물품을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생겨났고, 농성자들이 주문한 도시락 1백 개의 가격을 대신 치른 시민도 있었다.

오전 11시경에는 생존자 학생들의 가족도 농성에 합류했다. 이들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한 재발 방지 대안 마련은 모든 피해자 가족의 요구라며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해 사람들에게 힘을 줬다.

정오경에는 유족 대표들이 중간 보고를 했다. 청와대 정무수석 박준우와 홍보수석 이정현은 유족 대표들이 전한 구조 과정의 부조리함을 듣고는 ‘자신들은 전혀 그런 상황을 몰랐다’ 하고 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혀를 찼다.

이 정권은 구조 상황과 관련한 언론 보도들을 모니터링조차 안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권의 좋은 친구’인 MBC와 KBS 등과 조중동만 보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유족들이 면담을 요구하며 잠 한숨 못 잔 몸으로 천막도 양산도 마다하며 오뉴월 땡볕을 견디고 있을 때, 박근혜는 또 반격에 골몰하는 지시를 하고 있었다. 기자가 잠시 들어간 농성장 앞 청운동 주민센터 내 TV에서는 마침 박근혜의 긴급민생대책회의 발언이 뉴스로 나오고 있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서민경기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박근혜는 “사회분열”이 경제회복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고 협박까지 했다.

몇백 미터 앞에 자신을 만나겠다고 온 피해자 가족들을 박대하면서, 생명과 안전, 고통과 한숨보다는 기업주들의 사업을 더 걱정한 것이다.

박근혜는 그동안에도 '조문 쇼' 등 온갖 책임 회피를 일삼고, 또 적반하장으로 ‘국가 개조’ 운운하며 이번 참사를 공공부문 ‘정상화’ 정책에 역이용할 궁리만 해 왔다.

위기

그럼에도 오늘 정권의 조처는 박근혜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번 농성이 자칫 박근혜 책임론과 청와대 앞 대규모 농성으로 번질까 두려운 정권이 KBS 사장 길환영을 압박해 꼬리 자르기를 한 것이다.

정무수석 박준우는 농성이 끝난 뒤 “사안이 굉장히 심각해 KBS에 최대한 노력을 해 달라고 부탁한 결과”라며 이런 추론을 사실로 인정했다.

이 때문에 김시곤은 사임의 변에서 “사사건건 보도본부에 개입한 길환영 사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대놓고 불만을 토로했다. 왜곡 보도는 애초에 진정한 안전과 생명 구조 의지가 없었던 정부를 감싸려는 것이었으니 억울하다는 것이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자다.

이런 추잡한 자들의 자중지란에서 드러나듯이,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계급 편향 본질과 부패를 환히 드러내며 박근혜의 정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이 정도 조처로 유족과 생존자 가족들, 그리고 이 참사에 함께 슬퍼하며 분노하는 수백만 대중을 위로할 순 없다. 애초 보도국장 (자진 사임이 아닌) 파면을 요구한 유족들로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농성이 끝은 아니다. 9일 아침 청와대 앞 농성에 새로 합류한 생존자 가족 한 분의 말처럼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추모와 규탄의 결합은 물론이고, 올바른 분석과 대안을 위한 토론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사고 원인부터 구조, 수습 과정까지 자본주의 ‘이윤’체제의 우선순위가 노동계급 대중의 생명과 안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준 사건이다. 후순위는커녕 도대체 순위에 들어있기나 할까 하는 의심은 정당한 것이다.

안전 문제에서 드러난 국가의 부패와 무능은 바로 이 우선순위에서 비롯한 것이다. 구조 첫날부터 해경 인력의 5분의 4가 구조가 아니라 유족 감시에 배치된 것은 현재의 국가가 무엇에 유능하고, 무엇에 무능한지 보여 줬다.

이것은 단지 대한민국 국가(또는 체제)의 문제만이 아니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의 카트리나 사태 때 부시 정부의 연방재난관리청은 (마치 한국의 해경처럼) 수많은 기관의 수송 관련 도움 제안을 거절하고, 부시 정부 지지자인 기업에게 버스 수송 사업을 맡겼다. 그런데 이 업체는 트럭 업체였다!

당시 수난을 당한 (대부분 흑인 등 가난한 노동계급이었던) 사람들이 겨우 살아나 처음 맞닥뜨린 것은 총을 든 군인들이었다. 미국의 통치자들은 (일상의 기초가 붕괴된 그 난리통 속에서도) ‘질서 유지’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체제의 우선순위다. 그 때문에 노동계급 대중의 다수가 본능적으로 이번 사고를 내 일처럼 여기고, 피해자들에게 깊이 공감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노동계급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제대로 된 세상에서 살려면 많은 것들을 바꾸고 싸워 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더는 통치자들이 시키는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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