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만이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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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만이 대안이다
장호종
7월 2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던 송두율 교수가 집행유예로 석방되자 한나라당과 보수 우익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용갑은 “친북세력들은 송두율 석방을 국가보안법 폐지의 호기로 삼아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조선일보〉는 “송씨가 ‘법이라고 할 수 없는 법’이라고 매도하는 그 법으로 재판부가 그에게 핵심쟁점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가”(〈조선일보〉 7월 22일치 사설)라며 개탄했다.
“국가보안법, 논의해 볼 만하다.”(〈조선일보〉 5월 1일치 사설)던 말과 달리 이 자들은 실제로는 국보법이 어떤 식으로든 바뀌는 걸 원하지 않는다.
길길이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덕룡은 국가보안법을 “체제 수호의 보루”라며 폐지 불가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당대표 박근혜는 “내가 대표로 남아 있는 한 [국가보안법] 폐지는 없다.”며 개폐 논란에 못을 박았다.
그러나, 압도적인 개폐 여론에 못 이겨 논의해 보자던 국가보안법 ‘개정’조차 순전한 위선일 뿐이다.
김대중 정권 이후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람들의 95.8퍼센트가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등) 적용을 받았는데, 바로 이 7조를 유지시키는 것이 ‘개정’ 주장의 핵심이다.
한나라당은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의문사위에서 배제하는 법률안을 만들려 하고 있고, 검찰은 송두율 교수에 대해 “기획입국” 의도가 있었는지 조사중이라며 오히려 공안 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편,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일관되게 추진하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국민의 압도다수가 국가보안법 개폐를 지지하는데도 노무현 정부는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으로 96명(2004년 7월 28일 현재, 민가협 통계)이나 구속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일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도 한나라당 눈치를 살피느라 벌써부터 슬그머니 물러서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폐지 입장을 주도해 온 임종석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동시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선전선동이나 찬양집회 개최 등 헌법 정신을 흔들고 사회질서를 문란케 할 목적이 뚜렷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관련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 형법 내 관련 조항 신설이나 개정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며 형법삽입론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바로 이 내용이 국가보안법 7조의 핵심 내용이고 과거 정권들은 바로 이런 식의 기만으로 국가보안법을 지금까지 유지시켜 왔다.
1980년 전두환이 반공법을 폐지하고 국가보안법으로 통합하면서, 반공법 4조를 국보법 7조로 삽입, 둔갑시켰다. 김대중의 ‘민주질서 수호법’도 사실상 국가보안법 7조를 유지하기 위한 편법에 불과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국보법의 암세포를 형법 속으로 전파하는 ‘폐지+형법개정’ 주장은 위장폐지 음모에 다름 아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런 시도조차 단속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천정배는 “폐지와 개정 주장은 서로 다른 게 아니며, 당내 논의를 통해 충분히 접근할 수 있다”며 언제든지 개정으로 당론을 정할 수 있다는 암시를 줬다.
김근태도 “폐지안을 내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다. 김근태는 “불필요한 ‘색깔논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국가보안법 폐지 추진위에 참여하지도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 당대표 신기남은 지난 21일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간담회’에서 “[국보법을] 한순간에 벗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간담회에서 국보법 폐지 시민모임 대표 최창우 씨는 “열린우리당은 집권당으로서 추상적인 다수결의 논리에 계속 숨고 있다. … 16대 때는 다수결이 안 되기 때문에 (폐지를) 못한다고 했고, 지금은 야당이 협조를 하지 않아서 다수가 안 된다고 빼고 있다.”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비판했다.
기만
개정·대체입법·형법개정은 모두 어떻게든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 악법을 유지시킬 뿐이다. 국가보안법은 아무 조건 없이 폐지돼야 한다.
따라서 기성 정당 모두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열린우리당 내 일부 국회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주도권을 쥐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일관되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 온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들과 독립적으로 행동할 때만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있다.
지난 8월 9일 민변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2004년을 국가보안법 폐지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며 8월 10일 재발족을 위한 기자회견을 했다. 이 기자회견에서 9월 5일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국민대회’와 12월 1일 ‘국가보안법폐지 총력결의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또, 일상 캠페인과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 운동 등 적극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