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은 ‘냉전 악법’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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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에게 간첩 혐의로 10년형을 구형했다. 민경우 씨는 “북한 동포와 대화·접촉”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된 사실에 항의하며 〈민중의 소리〉에 옥중기고를 보내고 있다. 그는 1997년에도 간첩 혐의로 2년 4개월 간 옥살이를 했고 지금도 7개월이 넘게 감옥에 갇혀 있다.
남한 정부는 북한에 ‘잠입·탈출’하고 ‘수괴’를 만나는 권력자들 중 어느 누구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지 않으면서 한 번도 북에 가보지 못했고 북한 사람을 만나 본 일도 없이 전화·팩스·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는 이유로 민경우 씨를 구속했다.
죽은 정주영을 비롯해 경협과 개발을 이유로 휴전선을 넘나든 여러 남한 기업인들 중 어느 누구도 구속되지 않았다. 박근혜도 북한에 다녀왔고, 실제로 남북정상회담은 현행 국가보안법의 모든 조항에 저촉되는 일이었다.
민경우 씨는 무조건, 즉각 풀려나야 한다.
남한 지배자들이 국가 안보를 빌미로 좌파 민족주의를 집요하게 공격해 온 이유는 운동의 특정 부위, 특정 사상을 공격해서 운동 전체를 분열시켜 위축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럼으로써 노동자 대중이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완전히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1987년 이래로 성장해 온 전투적인 노동운동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국가보안법은 노동운동의 가장 선진적인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 적용되곤 했다.”(박원순, 《국가보안법 연구 2》)
국가보안법으로 가장 많은 탄압을 받아 온 한총련은 그 전신인 전대협 시절부터 노동운동을 지지하고 군사독재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가장 전투적으로 싸워 온 단체 중 하나다.
그러나 민경우 씨가 얼마 전 옥중기고 “한미동맹과 국가보안법”이라는 글에서 국가보안법의 ‘본질’이 “남북이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것을 가로막는”데에 있다고 말한 것은 오해이다.
오히려 국가보안법은 본질적으로 “‘내부의 국민’을 상대로 ‘정권안보’를 지키는 법률”《박원순, 국가보안법연구 3》이고 이를 위해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아 온 법이었다.
전체 국가보안법 구속자의 압도다수가 국가보안법 7조 고무·찬양 등의 적용을 받은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국가보안법 7조는 다른 모든 조항들과는 달리 “북한 및 그와 연계된 자와의 관계가 전혀 없어도 처벌 가능”하도록 “매우 광범위하고 애매하게 돼 있어 시민적 자유를 직접 위협한다.”(한인섭, 《관훈저널》 통권 75호)
“한총련 다음으로 끊임없이 국가권력의 감시를 받으며 형사처벌된”(이상희, 2000년 국가보안법 보고서) 단체인 국제사회주의자들은 1998년에는 17명이, 1999년에는 9명이, 2000년에는 14명이 구속됐다. 그런데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친북”은커녕 북한 체제에 비판적이었는데도 1992년 2월부터 2001년 5월까지 155명이나 구속됐다.
또한,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라거나 민주화운동을 억압했기 때문에 …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보편적이거나 국가보안법 자체를 문제삼지 않고 운영을 개선하면 되는 문제로 왜곡하기 쉽다.”는 민씨의 주장도 별로 근거가 없다.
국가보안법의 “운영을 개선하면 되는 문제로 왜곡”한 건 ‘국가안보’를 위해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제한해도 된다고 여긴 사람들이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일관되게 주장하기 위해서는 친북이든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이든 “보편적인” “사상과 양심의 [완전한]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