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내가 경험한 민영화된 미국 의료 시스템:
가난하면 결코 아파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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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 봤어? 의사가 뭐래?” 우리가 흔히 하는 이 표현들을 미국인들은 잘 쓰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의료비라는 공포가 상식인 그 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약 먹었어? 먹을 비타민 있어? 물 많이 마시고 푹 쉬어” 할 뿐이다.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는 의료 민영화가 사회의 핫이슈인 지금 “완성된 의료 민영화의 사회”에서 살아 본 내 경험이, 이미 저항을 조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뚜렷한 정당성을 주고 이 싸움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같이 싸우자는 제안이 되기를 바라며 〈노동자 연대〉에 글을 기고한다.
싹싹한 미국인들은 유학생이던 나와 친해질 때마다 한국이랑 미국이랑 어떻게 다른지 또 어디가 더 좋은지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두 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비교해서 이야기해 주고는 했는데 덕분에 미국에서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구급차 이용 요금 3백만 원
우선 이미 유명한 미국의 앰뷸런스에 대한 일화다. 학업을 마치고 마리아나(29)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부모님 댁을 방문 중이던 그녀는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놀란 그녀의 엄마가 앰뷸런스를 불렀다. 다행히 큰일이 아니어서 응급실에서 별다른 진료를 받지 않은 그녀는 몇 주 후 앰뷸런스 이용 요금으로 3천 달러, 한화로 대략 3백만 원가량의 청구서를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한 그녀의 당시 월급과 비슷한 금액이었다. 너무 비상식적인 일이라 과장되거나 잘못 들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의료민영화적” 관점으로 상황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도 않다. 미국의 앰뷸런스는 통상 5백 달러가량의 기본요금(이미 비싸다!)에 자잘한 상황 별로 추가 요금이 붙는데 요금이 추가되는 경우는, 앰뷸런스 안에서 진행된 시술 및 응급처치의 내용, 환자이송거리, 사이렌과 경광등을 켰는지 여부, 보호자를 동반했는지 여부 등등이 있다. 마리아나의 경우, 그녀의 어머니가 동행했고 의식이 없는 사이 여러 가지 시술들이 이뤄진 것이다.
앰뷸런스 이야기 하나 더. 간호사가 되려고 공부하는 조단(24)은 지난해 교통사고 상황을 지나다가 부서진 승용차 안에서 운전자가 빠져 나오는 것을 도왔다. 주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지만 그 후 도착한 엠블란스 구조대원들의 대우는 달랐다. 운전자를 돕느라 다친 조단이 손과 팔에 묻은 유리파편을 닦아낼 거즈를 달라고 요청하자 구조대원은 그에게 어떤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고 아무 의료보험에도 가입해 있지 않던 조단은 결국 거즈 없이 가던 길을 가야 했단다.
다음 내가 겪은 일은 민영화된 의료의 왕국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비쌀 뿐 아니라 느리고 불편하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지난해 가을 나는 잇몸에 문제가 생겨서 아프고 무서웠다. 돈도 없고 가입 된 보험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원, 한국으로 치면 보건소 같은 곳을 찾아냈다. 오후에 첫 방문을 했는데, 검진을 받으려면 그 병원에 먼저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은 아침에만 하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오라더라. 수업이 없는 날을 기다려 안내받은 대로 일찍 갔더니 진료인력이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7시에 병원문이 열리면 그 전부터 줄을 선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준다더라. 난 그 번호표가 다 나간 후 병원에 갔고 그래서 또 진료받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 잇몸 염증은 다 나았다. 말 그대로 내 몸의 치유능력이 미국의 서민의료시스템보다 빨랐던 것이다. 아픈 것은 나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을까 걱정돼 일찍부터 줄 서서 그 등록이라는 것을 했다. 그런데 그 병원을 이용하기 위해서 내 신분과 소득수준, 그러니까 너무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혀 없지도 않은 수준의 소득이 있다는 것을 지난해 낸 소득세 영수증과 월세 얼마짜리의 집에 사는지가 나오는 계약서 따위로 증명해야 했다.
기다림의 연속
잇몸 사건을 겪은 후, 그냥 “안 아파야지” 하며 미국에 사는 것은 위험할 수 있음을 깨닫고, 나는 갖은 고생과 상담 그리고 나의 가난함에 대한 증명을 통해 어렵게 그리고 운 좋게 메디칼 (Medi-Cal) 이라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일부 빈민들에게 제공하는 의료보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적는데 나는 매우 운이 좋아서 이 제도의 혜택을 받게 된 경우다. 각종 증명서 제출과 사회복지사분과의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그리고 당시 진행되던 오바마케어로 인한 시스템적 혼란을 통해 간신히 두어달 만에 메디칼에 들어갔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쓰는 이유는 이 메디칼이라는 제도의 혜택이 노동계급 일반이 가지고 있는 수준의 의료보험만큼 좋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 이후에 내가 겪은 경험은 빈민으로서가 아니라 미국의 노동계급 일반, 그중 의료보험에 가입된 노동자의 경험과 같을 거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기침이 심해서 3월 초에 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그로부터 2주쯤 뒤인 3월 19일에나 의사를 볼 수 있었다. “나 병원가야 돼” 라는 표현이 영어에서 “I have to see a doctor”보다 “I have a doctor’s appointment”라고 더 많이 쓰이는 것만으로도 내가 원할 때 병원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화로 예약을 잡고 그 날을 기다려 의사를 만나는 미국의 의료문화를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에 가입할 때 어떤 병원 어떤 의사를 나의 주치의로 할지 정해야 해서 그 병원이 붐비거나 나의 주치의가 바쁘면 그냥 2주든 얼마든 기다려야 한다.
어쨌든 병원에 갔더니 결핵이 의심된다고 X-ray를 찍으라고 하고는, 또 그 병원 그리고 내 보험과 연결된 방사선과의 주소를 줬다. 그 병원에서 8킬로미터, 그러니까 서울로 치면 고려대에서 연세대쯤 되는, 전혀 가깝지 않은 곳에서 X-ray를 찍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병원을 떠나며 또 가장 가까운 날에 예약을 잡으니 그것이 3월 29일이었고, 나는 그날부터 약을 타먹을 수 있었다. 정리하면,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의사를 보려고 시도한 지 약 한 달 만에 나에게 필요한 약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주 나는 똑같은 약을 받으려 서울의 한 보건소를 찾았다. 번호표 뽑고, 간호사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보건소 지하에서 X-ray를 찍고, 2층에서 피 뽑고, 1층에서 의사와 진료하고 약까지 받는 데 48분이 걸렸다. 그리고 한 푼도 안 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아프다고 하면, 일을 하시던 엄마는 늘 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위로를 구하는 아이에게 하기에 다소 쌀쌀맞은 말이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 생각하니 가난하기는 했지만 아들에게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울엄마의 사정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한국의 공공의료가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나도 안다. 분명한 것은 미국 민중의 처절한 삶에 비춰볼 때, 의료 민영화는 우리가 결코 걷지 말아야 할 길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