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내릴 수 없는 배 ─ 세월호로 드러난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말하다》:
국가는 방관자가 아니라 공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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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리를 타고 떠나는 수학여행은 남다르다. 항공으로 출발하는 여행과는 전혀 다른 추억·낭만·감동을 선사하면서 여유와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 해운업체의 광고 문구 같은 이 말은 놀랍게도 세월호 참사 한 달 전인 2014년 3월, 서울시교육청의 공문에 나오는 것이다. 비행기 대신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라는 교육당국의 노골적 권고는 2011년부터 시작됐다.
2011년 9월 부산지방해양항만청과 제주해양관리단이 보낸 협조 공문에 호응해, 교육청들은 “바다에 대한 친근함과 해양에 도전하는 개척 정신[을] 함양”하고 “저렴하고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여객선 이용을 권장하는 공문을 ‘제주뱃길 이용 수학여행 안내’라는 이름으로 일선 학교로 내려보낸다.
해운업체들의 안전 관리 소홀을 모르지 않았을 정부는 그동안 고유가와 저가 항공사 등장 등으로 위기에 빠진 해운업계를 지원하고자 규제를 완화하고 폐기 처분해야 할 선박의 생명을 늘려 줘 위험을 더 키웠다. 여기에 교육청들이 학생들을 동원해 수요까지 창출해 준 것이다.
‘크루즈산업 육성 방안’은 박근혜의 대선 공약이었고,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 개정안’은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가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에야 일단 정지됐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는 세월호 정국을 끝내려는 시도 속에서 이 법이 투자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석훈의 책 《내릴 수 없는 배》는 유령선 같은 세월호가 어떻게 버젓이 운항될 수 있었는지를 들춰낸다. 저자는 통계 자료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 가며 규제 완화, 민영화, 비정규직의 폐해 등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쉽게 설명한다.
저자는 대안으로 해운업체의 완전공영제를 제안한다. 완전공영제를 하면 안전 규제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남용 억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내재적 논리까지 파고들지는 못한다. 그러니 문제 해결을 너무 단순하게 ‘국가’에 의존한다. 국가도 참사의 원인인 자본주의 이윤 경쟁 시스템의 일부인데 말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선박을 운영한다고 해도 가능한 수준에서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력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청와대가 책임졌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원상복귀” 시키는 것이 대안이라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책임
물론, 국가가 직접 나서 재난 구조 과정을 책임지는 게 더 나은 면이 있다. 그래야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힐 수 있고, 정부에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사실, 박근혜가 위기 관리 책임을 직접 맡으려 하지 않는 것은 책임 회피다.
그런데 전 통일부장관 이종석의 회고록 《칼날 위의 평화》를 보면, 노무현이 위기 관리를 NSC 중심으로 체계화한 것은 2003년 화물연대 파업으로 물류대란이 벌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위기 관리 대응 매뉴얼이 형식적으로는 만들어졌지만, 위기 관리가 제대로 된 적은 별로 없다.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 자체가 평범한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 보호와 이윤 중심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 작동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계급적 본질은 세월호 참사에서도 드러난다. 계속 밝혀지는 사실을 보면, 국가가 희생자들을 구할 생각 자체가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가 재난 대응에 일관되게 나설 의지와 능력이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래서 저자가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우파 정부의 집권과 연결시키는 것도 현실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우파가 아니었지만, 김대중 정부는 규제 완화, 민영화, 비정규직을 확대했고,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를 적극 추진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원인들을 제공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정치적 약점 때문에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한국식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온건한 주장을 하지만, 《내릴 수 없는 배》는 세월호 참사 과정의 구체적 폭로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