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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이 버리고 싶지 않은 무기:
국가보안법은 왜 없어져야 하나?

작년 6월 15일에 김대중과 김정일의 남북한 정상회담이 있었고 작년 말에는 김대중이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반민주적 법률인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폐지되지 않고 있다.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받을 당시 "평화와 인권을 위해 남은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지만 수상 뒤로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람이 3일에 한 명꼴로 생겨났다.

김대중은 누차 국가보안법 개정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했다. 김대중 그 자신이 국가보안법의 최대 피해자였지만 대통령 당선 뒤 그가 지난해 8월까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한 사람은 모두 870명으로, 해마다 약 3백 명에 이르고 있다.

변화를 바라는 대중의 열망을 등에 업고 등장한 김대중 정권 하에서도 인권과 민주주의는 한치도 진전되지 않았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198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국가보안법 구속자(총 6010명, 〈인권하루소식〉 제1786호)의 연평균 수치가 김대중 재임 기간의 연평균치와 비슷하다.

국민의 압도 다수가 국가보안법 개폐를 지지(1998년 11월 〈한겨레〉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87퍼센트가, 2000년 6월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85퍼센트가 국가보안법의 개폐를 지지했다)하고 있는데도 김대중은 이를 무시하고 국가보안법으로 수많은 활동가들을 구속했다.

민주주의

김대중 정부는 김정일 정부와의 화해·협력을 추구해 그 결실로 작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김대중이 추진하고 있는 대북 화해·협력은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는 작년에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자신감을 얻어 호텔롯데와 사회보험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또, 금융 노동자들과 대우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진압 경찰과 헬리콥터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그런데 김대중의 대북 화해와 협력 노력은 현재의 국가보안법과 충돌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김대중이 최대 치적으로 꼽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은 현행 국가보안법의 모든 조항에 저촉되는 일이었다. 남북한 장관급 회담이 열리고 남북 경협이 이뤄지며 이산 가족이 남북한을 오가면서 상봉하는 현실은 ‘북한의 위협’때문에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논리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게다가 남북 관계 해빙 상황에서 노동자와 학생 들의 국가보안법 철폐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작년 12월 민변 소속 변호사와 민교협 소속 교수 40∼50여 명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항의 가두 시위와 3일 간의 농성을 했다. 올해 1월 초에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서준식 대표를 포함한 인권 활동가 16명이 폭설과 영하 10도의 혹한 속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및 국가인권위원회법·부패방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13일 동안 노상 단식농성을 했다.

농성단은 "개혁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추악한 독재자의 모습을 닮아 가는" 김대중 정부를 규탄했다. "지난 3년간 개혁의 이름 아래 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 구조조정밖에 한 일이 없는" 김대중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정권 퇴진 투쟁말고 달리 길이 없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여러 시민 단체와 종교 단체 등이 국가보안법을 개정 또는 폐지하라는 주장을 모르쇠로 일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개혁 입법의 처리가 지연돼 김대중을 지지했던 시민 단체들의 이반이 더욱 가속되고 있었다.

그러자 김대중은 "나라의 최대사는 안보이고 대통령의 최고 책임도 국가 안보이며 국가 안보는 우리의 공동 목표"라며 보수 세력의 우려를 안심시키면서도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고치지 않아 국가보안법 개정이 시기상조라는 말도 있는데 … 북한이 안 하더라도 우리는 해서 우월성을 보여주는 게 진정한 우리의 갈 길"(1월 13일치 〈조선일보〉)이라고 말했다.

이반

김대중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보수 세력들의 반격은 즉각적이고 전방위적이었다.

이회창은 "지금 보안법을 개정하면 격렬한 국론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며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총선 직전 북한 지배자들과 모의하여 ‘총풍’ 사건까지 일으킨 장본인이었던 그가 ‘국가 안보’와 ‘합리적 운용’을 주장하는 것은 순전한 위선일 뿐이다.

〈조선일보〉는 1월 14일 ‘국가보안법이 인권과 무슨 관계가 있나’라는 사설에서 "대남 적화통일을 ‘조선 노동당의 당면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노동당 규약의 공격성과는 달리 우리의 국보법은 방어적 장치이다. … 그것은 법적 실효성보다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그 상징성이 더 크다."며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동아일보〉도 "아직도 상당수 국민에게는 ‘국보법은 국가 안보’란 상징성으로 각인되어 있다."(2월 1일치)고 지적하면서 국가보안법 개정이 시기상조임을 밝히고 있다.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 회장인 정승화는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에 변화가 없는데 보안법을 개폐하는 것은 무장을 해제하는 것과 같다"며 보안법 개정 움직임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국가 안보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없다는 이들의 논리는 국가보안법 구속자들의 구속 사유들을 보면 역겨운 거짓말임이 금세 드러난다.

국가보안법은 이승만 정권 이래로 그 쓰임새가 정치적·시민권 권리를 억압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구속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유를 보면 소위 "이적 행위"라고 하는 "반국가단체"에 대한 찬양과 고무 조항(7조)으로 구속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이 생긴 이래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 행위를 한 ‘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설사 이러한 행위를 한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형법의 내란·외환죄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데도 국가보안법을 유지하는 것은 이 법이 내부의 반대파를 단속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 준다. 실제로 많은 국가보안법 구속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거나 시위·집회를 개최하거나 운동의 발전을 위해 정치 조직을 건설하거나 하려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아 왔다.

국가보안법으로 가장 많은 탄압을 받아 왔던 한총련은 "불법 폭력 집단"이라는 왜곡된 이미지와는 달리 불가피하지 않은 한은 언제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집회와 시위를 주최해 왔다. 또 한총련 학생들은 그 단체의 탄생 이래로 아무도 고의로 죽인 적이 없을 뿐더러 테러를 자신들의 활동 방법으로 삼고 있지도 않다.

훨씬 더 분명한 사례로서 최근에 국가보안법 7조(‘이적’ 활동) 위반으로 구속된 민주노동당원 여섯 명은 평소 북한을 이롭게 하기는커녕 북한 체제에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이다. 이들 여섯 명은 롯데와 사회보험, 국민·주택 은행, 대우차 노동자들의 투쟁 등에 적극적으로 연루해 그들의 정당한 투쟁에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이다.

이들 여섯 명은 2∼3년 전 노동자 집회에서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김대중 정부를 비난하고 노동자와 학생 들에게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투쟁하자는 내용이 담긴 표현물을 소지하거나 판매했다는 이유로 구속했다.

이것은 국가보안법이 북한의 존재를 핑계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장치임을 뜻한다. 노동자 투쟁에 적극 동참하여 정리해고, 구조조정, 민영화 등에 맞서 싸우자고 주장하는 것을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은 반노동자적 악법이다.

게걸음

김정일 답방과 관련하여 냉전 우익의 반격이 잇따르자 김대중은 김정일 답방과 무관하게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에서 한발 후퇴했다. 민주당 대표 김중권은 2월 4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이후에나 국가보안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으로 냉전 우익의 걱정을 달랠 수는 없었다. 2월 12일 국회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정일이 답방할 때 "6·25 전쟁, KAL기 폭파 사건 등 남북한 과거사에 대한 북한측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김대중은 냉전 우익과 갈등이 빚어질 때에는 항상 그들에게 타협하는 방식으로 매듭짓곤 했는데, 이번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은 냉전 우익을 달래기 위해 민주노동당원 여섯 명을 그 제단에 바쳤다.

국가보안법 개폐가 쟁점이 되고 있을 동안, 냉전 우익의 과장과 달리 김대중과 민주당이 국가보안법 개정안으로 내놓은 것들은 알량하기 그지 없는 것들이었다.

민주당은 반국가단체를 정의할 때 ‘정부 참칭’ 부분을 삭제하고(2조 부분 개정), 찬양·고무 조항과 이적표현물 관련 조항을 완화하고(7조 부분 완화), 불고지죄를 폐지하는(10조 완전 삭제)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들이 이 개정안에 대해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은 전적으로 옳다. 1999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286명의 구속 사유를 보면, 제7조의 찬양·고무가 261명으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머지 25명도 민주당의 개정안으로 국가보안법의 그물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경우는 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불만을 가진 여야 소장파 국회의원 23명은 2월 14일 국가보안법 등 3대 개혁법안을 공동 추진하고 각종 민생관련 입법 과정에서 독자 목소리를 내기 위한 연대기구를 출범시켰다.

정치개혁모임은 국가보안법 개정과 관련해 당론에 따른 투표를 하지 않고 자유 의사에 따라 투표하자고 했지만 당 지도부의 압력 때문에 후퇴했다. 더욱이 개혁모임에서 밝히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정안도 생색내기이긴 마찬가지여서 민주당의 개정안과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개혁모임에 속한 민주당 의원 임종석이 제시한 이른바 ‘한총련 해법’은 개혁모임의 한계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는 1996년 연세대 사태 때문에 5기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됐지만 이러한 적용이 이후 새롭게 구성된 한총련까지 적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