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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입 개방 반대 투쟁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쌀 수입 개방 반대 투쟁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쌀 관세화 유예 조항이 사라지고 쌀 수입 개방으로 값싼 외국산 쌀이 들어오면 한국의 수많은 농민들은 더 많은 빚과 도산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한 토론회에서 전농 관계자는 “제초제병이 마치 소주병처럼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욱이 현재 9개국과 쌀 재협상을 하고 있는 외통부 관계자들은 관세화(국내 시장 보호 조치 철폐)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쌀지키기 식량주권수호 국민운동본부가 농민들의 입장에서 ‘우리쌀 지키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것이 농업에 대한 신자유주의 해법과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한 유일한 방식일지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미친 듯이 요동치는 자본주의 곡물 시장에서 경쟁력 없는 농민들한테 안전 장치를 풀라는 WTO의 압력이야말로 진정한 문제의 원인이다.

우리쌀 지키기

WTO 반대를 단지 형식적 슬로건으로서가 아니라 칸쿤 1주년을 기념하는 투쟁 방향으로 전면에 내세운다면 어떨까?
그리 된다면 농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진정한 근본 원인을 부각시키면서도 자포니카계 쌀보다 한국 쌀이 더 우수하다는 민족주의를 부추길 위험성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쌀 지키기’라는 관점은 의도치 않게 WTO에 반대하는 세계의 수많은 농민들을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 한국과 쌀 협상을 하고 있는 9개국 가운데 하나인 타이의 농민들은 막대한 곡물 시장에서 이윤을 뽑고 있는 타이의 CP라는 거대 곡물 기업의 그늘에서 가난과 씨름하고 있다.
세계 농민들의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가 말하듯이 전 세계의 대다수 농민들은 “농작물 가격을 떨어뜨리도록 고안된 과잉생산의 희생자”이며 “시장 규제 철폐에 의해서 고통”받고 있다.
우리쌀 지키기보다는 “WTO 반대” 구호가 훨씬 더 광범한 사람들을 단결하도록 만든다. 또한, 국민운동본부가 WTO 반대를 주되게 제기했다면 농민들뿐 아니라 WTO 일반이사회가 통과시킨 도하개발의제를 우려하는 광범한 사람들이 함께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보건의료와 교육, 더 나아가 수백 가지 분야의 공공 서비스에서 더 많은 시장화를 부를 WTO의 서비스협정과 더 많은 쓰레기 만두를 양산할 WTO의 식품안전위생협정은 농업 협정만큼이나 위선적이고 악독하다.
식량안보(Food Security)라는 개념이 다소 협소하다는 의미있는 지적도 되새길 만하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유전자조작식품을 경고하는 《위험한 미래》의 저자 권영근 씨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식량안보는 다국적기업이 위협하는 식품안전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반자본주의 운동가인 조제 보베도 자본주의의 “나쁜 먹을거리” 생산에 반대하는 운동으로서 식품안전을 주장하고 있다.

WTO

이미 유전자조작된 농산물들은 국내에서도 쟁점이 돼 왔다. 2002년 미국 무역대표부는 한국의 유전자조작식품 표시제 완화를 요구해서 환경·소비자 단체들이 크게 반발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미 벼, 감자, 고추 등 약 35개 작물에 대한 유전자조작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식량안보를 쌀만이 아니라 환경과 건강을 망치는 이윤 체제의 먹을거리 생산과 연결시켜 소비자들과 환경단체, 더 나아가 노동자들이 함께 단결해서 WTO에 맞서 싸우는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쌀 수입이 개방되면 노동자들이 값싼 쌀을 구입할 수 있는데 농민들의 쌀 투쟁에 지지를 보낼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솔직한 물음도 있다. 이 물음에 대한 근본적인 답변은 가난한 농민들과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는 공동의 적을 향해 함께 싸울 수 있는 방법과 근거들을 적극 채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WTO 반대나 도하개발의제 규탄 같은 쟁점들 때문에 쌀 수입 개방 반대라는 농민들의 요구가 부각되지 않고 묻혀버리는 것을 우려하는 농민들의 정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적을 분명히 하고 그 적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람들, 특히 자본주의 시장 체제를 효과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는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함께 싸울 수 있는 더 효과적인 방법을 적극 채택할 필요는 여전하다.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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