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복지국가의 이면: 개혁주의 환상에 대한 경고:
사민당의 집권보다 파시스트 정당의 급성장이 더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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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스웨덴 총선에서 중도좌파인 사민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이 승리해 8년 만에 정권을 잡았다. 주류 언론은 물론이고 국내 진보 언론들도 사민당의 승리를 부각해 보도했다.
그러나 사민당의 득표율은 2010년보다 0.3퍼센트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따로 있다. 파시스트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득표율을 갑절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급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스웨덴민주당의 득표율은 2010년 5.7퍼센트에서 2014년 12.9퍼센트로 껑충 뛰었다.
1988년에 창당한 스웨덴민주당은 스웨덴당의 후신이다. 스웨덴당은 ‘스웨덴을 스웨덴답게 지키자’와 스웨덴진보당이 1986년 통합해 창당한 정당이다. ‘스웨덴을 스웨덴답게 지키자’는 독일 나치를 지지한 ‘새로운 스웨덴 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결성된 단체였다. 스웨덴진보당은 한때 노르웨이진보당과 일체감을 느꼈는데, 2011년 7월 청소년 70여 명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바로 노르웨이진보당 당원이었다. 스웨덴민주당의 초대 대표는 나치 정당인 노르딕제국당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지난 8년 동안 연립정부를 이끌었던 중도우파 온건당은 선거 전부터 패색이 짙었다. 그동안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환멸과 불만 때문이었다. 우파 정부는 부유세를 폐지하고, 소득세와 법인세를 감면했다. 국가 지원 요양원과 유치원들을 민영화했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학교 민영화도 더 확산시켜, 사립학교 재학생이 전체 학생의 20퍼센트를 차지하게 됐다. 민영화된 학교 가운데는 영리 기업과 사모펀드가 운영하는 학교가 더 많다. 다른 모든 나라에서처럼, 민영화 과정에서 부패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스웨덴 국민 70퍼센트가 공공복지 영역을 민영화한 정부 정책이 실패했다고 본다.
사민당의 복지국가 공격
스웨덴은 선진국 클럽인 OECD 소속 나라 중 소득 격차 증대 속도가 가장 빠르다. 스웨덴의 상대적 빈곤율은 1995년 6.5퍼센트에서 2011년 14퍼센트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1년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이 15.2퍼센트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급속한 불평등 심화를 배경으로 2005년, 2006년, 2008년, 2009년, 2013년 가난한 도시들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소박한 개혁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복지 천국”, “지상 낙원”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현실이다.
우파 정부 8년 동안 사태가 악화한 것이 사실이지만, 야당인 사민당의 도전도 시원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대에 복지국가를 해체하기 시작한 장본인이 바로 사민당이었다.
경제 위기 속에서 1994년 집권한 사민당은 재정적자와 대외부채 해소가 최우선이라며 민영화, 연금 삭감, 교육·의료 부문 규제 완화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1998년에는 연금을 ‘개혁’해,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한 기초연금을 저소득 계층 노인만을 대상으로 한 최소보장연금으로 바꿨다. 자본주의 국가를 인수해 사회를 개혁한다는 개혁주의 전략이 현실에서는 노동계급에게서 개혁을 회수해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지난 20여 년 동안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컸고, 스웨덴민주당은 이를 이용해 성장할 수 있었다.
한편, 공산당의 후신인 좌파당은 복지 혜택을 부당하게 많이 받는 자들을 폭로하는 운동에 주력했다. 그것을 급격한 소득 격차 증대나 신자유주의 같은 더 넓은 문제들과 연결시키지 않았다. 또한, 사민당이 집권하면 연립정부에 들어갈 요량으로 “합리적”이고 “믿을 만한” 정당으로 보이려 애썼다. 그래서 좌파당의 득표율은 겨우 0.1퍼센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스웨덴민주당이 성장한 데에는 이주민 배척과 인종차별 증가도 한몫했다. 선거 직전인 7월 스웨덴 총리는 이민자들이 복지를 훔쳐간다고 비난했다. 스웨덴의 이민자를 10분의 1로 줄이겠다는 스웨덴민주당에 날개를 달아 준 격이었다.
하지만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흐름도 있다. 선거 바로 다음 날 수천 명이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