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환 선본은 이렇게 주장한다. “민주노총은 이제 산별연맹과 기업별 임단협 투쟁을 뛰어넘[고] … 시기 집중이라는 방식을 탈피하여 민주노총 중심성을 확보 … 전략적 투쟁과제를 제시해야 [한다.]”
사실 민주노총 집행부가 개별 사안에 총파업을 남발하지 말고, 정치투쟁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은 제5대 이수호 집행부가 2004년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내놓은 바 있다.(“준비된 총파업”)
당시 중앙파 집행부는 실질적인 투쟁 조직은 하지 않으면서 파업 계획만 남발한다는 투쟁적 조합원들의 불만을 샀다. 이수호·이석행 후보 조는 이를 차용해 선거에 이용한 것이다.
‘파업을 남발하지 말자’는 주장은 그동안 파업을 회피한 소심함과 개혁주의를 은폐한 채, 투쟁을 자제하고 교섭(개별, 산별, 노사정)을 더 중시하자는 말이다.
이런 입장은 조직 노동계급 전체를 동원하는 정치투쟁에도 전혀 이롭지 않았다.
이수호 집행부는 ‘2006년 준비된 총파업’을 말해 놓고는 2004~05년에는 노무현 정부와의 사회적 합의에 매달렸다. 결국 정부의 비정규직 악법, 노사관계로드맵 추진을 막지도 못하면서 투쟁 동력만 갉아먹다가 2005년 강승규 부위원장의 수뢰 사건 폭로로 중도 사퇴했다.
지도부가 파업 건설에 소홀했는데도 2004년 11월 비정규 악법 반대 하루 파업에 15만 명(단체행동 포함하면 21만 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1년 뒤 연말 두 차례 총파업에는 6만, 2만 명이 참가했다. 2006년 조준호 집행부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3월 하루 총파업에 19만 명이 참가했는데, 정작 법안이 통과된 11월 말과 12월에는 10만 명도 안 됐다.
조준호 집행부와 산별대표자회의는 노사관계로드맵의 연말 통과가 불확실하다며 12월 15일 파업을 취소해 버렸다. 엿새 뒤에 악법은 여유 있게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폴란드계 독일인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조합 상층 관료들의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대중파업을 위급할 때를 대비해 호주머니 속에 접어 넣어 두었다가 마음 먹으면 꺼내 쓸 수 있는 일종의 주머니칼처럼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당면한 투쟁을 외면하는 지도부를 보며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지도부의 투쟁 호소에 사기가 떨어지거나 신뢰를 잃은 노동자들이 호응하기는 쉽지 않다. 2008년 촛불운동이나 세월호 참사 같은 정치적 운동에서 이런 지도자들이 정작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