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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현장 저임금·고용 불안 비난은: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건설 자본가를 향해야

경제 위기가 오래 지속되고 건설 경기가 가라앉아 건설 부문의 고용 자체가 축소됐다. 노동자들 사이에 일자리 경쟁은 더 심해졌다. 특히 건설 현장에 만연한 다단계 도급제도 때문에 이런 경쟁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설노조가 불법 도급이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 산업재해 주 원인이라며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다.

건설노조가 이주노동자를 배척하면, 자본가들은 노동자 사이의 갈등을 이용해 모든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킬 것이다. ⓒ이미진

직접 고용이 확대될수록 건설 자본가들이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거나 노동자 간에 경쟁을 강요해 임금을 떨어뜨리는 시도를 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건설노조가 이주노동자 때문에 국내 건설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이 위협받는다고 최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장 취재 - 이주노동자 ‘불법 고용 근절’은 잘못된 요구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도권의 한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12월 16일 이른 새벽, 경기도 하남의 한 대규모 아파트 건설 현장에 수도권의 건설노조 지부 간부들과 조합원 40여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건설 현장 불법 도급 폐지, 직고용 쟁취’를 내걸고 수도권 지부 공동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에 모인 노동자들이 정작 한 일은 이주노동자들의 출입을 막는 일이었다. 이들은 조를 몇 개 짜 이 현장의 모든 출입구 앞에 서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신분증을 검사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를 골라내 출입을 막았다.

방송차에서는 “건설자본의 불법 외국인 고용은 우리 건설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뿐 아니라 임금도 깎고 노동시간은 더욱 늘리고 각종 산업재해와 건설 현장 내의 폭력 범죄를 양산하는 온상”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 흘러 나왔다.

이주노동자들은 주춤주춤하며 감히 현장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건설노조 간부는 비자가 있는 사람들의 출입도 막았다.

결국 항의 한 번 못한 채 출근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던 한 이주노동자는 “어제도 왔다가 돌아갔다. 이 시간엔 다른 현장으로 갈 수도 없다” 하고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동자연대 회원인 건설조합원이 “직고용 얻어 내기 위해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거냐?” 하고 묻자, 한 간부는 “불가피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노동자연대 회원인 건설조합원은 이것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동안 건설노조가 건설사를 상대로 직고용을 쟁취한 수많은 투쟁들에서 이런 수단은 오히려 예외적이었다.”

실제로 이 행동에 동참한 건설노조 한 조합원에게 “이 투쟁의 요구가 직고용이냐”고 묻자, 그는 “그게 아니고 불법 외국인 막는 거다” 하고 답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이 이주노동자 출입을 막을 뿐 아니라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와 노동부에 ‘외국인 불법 고용 신고’도 한다는 사실이다. 언제든 단속이 들이닥칠 빌미를 준 것이다.

심지어 지난 10월 건설노조 광주전남지부의 한 현장에서는 조합원들이 이주노동자들을 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지금 건설노조가 조합원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정당화한 이 행동은 순식간에 이주노동자 추방 운동으로 비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불법 고용 근절’이라는 요구는 잘못된 요구다. 이주노동자들은 국내 건설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불법 도급 시스템의 피해자들이지, 가해자가 아니다. 일자리 부족은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경제 위기 때문이다.

불법 도급 문제는 건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를 모두 내쫓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건설 노동자들이 단결해 만연한 불법 도급을 폐지하는 투쟁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이때 이주노동자들도 함께 단결해야 할 노동자들이다.

이주노동자 배척은 단결력 약화를 부른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를 내모는 행동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건설 현장을 바꾸려면, 일단 노조를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토목건축 분야는 이주노동자들이 본격 유입되기 전부터 조직률이 낮았다. 그럼에도 건설노조는 여러 투쟁을 벌이며 조직을 확대하고 현장의 조건을 개선해 왔다.

무엇보다 조직력을 확대하려면 이주노동자를 노조로 조직해 함께 싸우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2003년 용인 동백지구 파업 때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연대해 3일간 현장을 멈춰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

건설노조 대구경북지부는 2011년 이주노동자 배척에서 조직화로 입장을 바꾸고 이주노동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노조가 투쟁할 때 이주노동자들도 함께 일손을 놓고 노조를 도왔다. 대경지부는 지역 전체 건설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내걸고 싸워 조직을 크게 확대했다. 노조가 이주노동자와 함께 투쟁해서 조합원도 늘린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배척하는 것은 내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확보하기 위한 손쉬운 방편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에 의존하면 불법 도급과 같은 진정한 문제는 부차화된다. 일례로 2009년 영국에서는 건설노조 지도자들이 하청제도와, 자본가들의 일자리·임금 삭감에 맞선 투쟁을 회피하는 논리로서 ‘영국 일자리는 영국 노동자에게’라는 민족주의적 구호를 적극 고무한 바 있다.

건설노조가 이주노동자를 배척하면, 건설 현장 내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용자 편으로 돌아서게 될 것이다. 그러면 현장에서 건설노조가 파업 등을 벌여도 이주노동자들의 지지와 동참을 끌어낼 수 없다.

얼마 못 가 건설노조는 더욱 고립될 수 있다. 기존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조차 노조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동안 이주노동자 연대와 조직화를 하면서 어렵게 쌓아 온 성과들이 물거품이 돼 버릴 수 있다.

이는 다시 조직력 약화와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반(反)이주노동자 정서는 더욱 거세져, 건설 현장 내 노동자들이 단결하기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인종차별을 부추겨 노동자들의 분열을 노리는 정부와 자본가들을 돕는 셈임을 봐야 한다.

최근 광주·전남에서는 건설사가 이주노동자 폭행 사건을 빌미로 노조와의 합의를 파기하고 건설노조를 공격하고 나섰다. 경찰은 이 폭행 사건에 연루된 광주전남 지부장 등 3인을 구속했다. 자본가들은 이런 공격을 더욱 노릴 것이다.

경제 위기 속에서 이주민을 비난하는 우익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외국인 혐오 세력을 조직할 때 건설 현장을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현재 건설노조가 벌이는 일은 단지 건설 현장 내 일자리를 둘러싼 다툼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건설노조 내 좌파 활동가들은 단결 원칙에서 후퇴해선 안 된다

건설노조 안에는 늘 이주노동자에 대해 반감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존재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를 방어하고 조직해 온 활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반(反)이주노동자 분위기가 확대되는 것을 저지할 수 있었다.

2009~10년 건설노조 경기 중서부지부는 삼환까뮤 공사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조합원팀 해고와 군포 당동 이주노동자팀 해고에 맞서 투쟁을 벌여 승리하기도 했다.

대구에서도 2008~09년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추방 운동을 벌이던 태도를 바꿔 2011년부터 이주노동자 조직화로 돌아서면서 조직화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이는 많은 사람들을 고무했다.

그런데 최근 경기 중서부지부 등의 활동가들이 그동안 지켜 온 노동자 계급 단결의 원칙을 훼손하며 후퇴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내쫓는 활동을 제지하기는커녕 ‘공동 투쟁’이라며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지금 경기 중서부지부는 건설 자본가들의 조합원 고용 회피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구경북지부도 2012년 파업 성과를 빼앗으려는 자본가들의 반격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 적지 않은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냉철한 현실은 하청제도가 남아 있는 한 노동자들이 서로 등을 돌리게 하는 시도들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상황을 돌파할 길은 건설노조 전체에서 연대를 확대해 싸워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동안 어렵게 구축하고 유지해 온 단결의 전통을 스스로 깨 버리면, 노조 내 우파들이 더 자신감을 얻는 효과만 낼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 후퇴를 즉각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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