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에서 푸틴까지 계속되는 억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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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전통을 잊지 않은 체첸인들은 스탈린의 억압에 맞서 암살과 대중 반란으로 반격을 가했다. 1944년의 추방은 그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한 최후 조치였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했다.
1950년대 말부터 체첸인들은 몰래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물방울은 홍수가 됐다. 1991년 옛 소련이 무너질 때쯤 체첸인들은 다시 그들의 고향에서 다수가 돼 있었다.
옛 소련의 소수민족들이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체첸에서도 봉기가 일어나, 그로즈니의 꼭두각시 정권을 타도하고 독립을 선포했다.
크렘린은 카프카스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카스피해 연안의 유전 지대에서 러시아까지 이어지는 송유관이 그로즈니를 통과하고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은 그 송유관 노선이 남쪽으로 향하도록 미국․영국․터키․이란의 기업들과 협상을 개시했다.
러시아는 자신이 제국주의 열강이라는 사실을 재천명하고 싶어했다. 1992년에 러시아는 민족들 간의 긴장을 이용해 그루지야와 몰도바에 전초기지를 재구축했다.
그 해 12월에 러시아 군대는 북오세티야의 폭력배들이 7만 명의 잉구셰티야인들 ― 체첸의 이웃 공화국 주민들 ― 을 인종 청소하도록 도와 주었다. 체첸인들과 마찬가지로 잉구셰티야인들도 1944년에 스탈린에 의해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 만행은 전면적인 체첸 침략의 예고편이었다. 그러나 크렘린은 엄청난 계산 착오를 범했다. 몇 시간 만에 그로즈니를 점령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러시아 군대는 대중의 저항에 부딪혔다. 그로즈니로 진입하던 최초의 탱크 부대는 철저히 파괴당했다.
18개월 뒤에 체첸인들은 러시아 군대로부터 그로즈니를 탈환했다. 전쟁은 평범한 러시아인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게 됐고 크렘린은 평화를 요청해야 했다.
소수민족 체첸인들이 놀라운 승리를 거둔 것이다. 물론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 말이다.
러시아 지배자들은 끊임없이 체첸 탈환 기회를 노렸다. 1999년 나토가 세르비아를 폭격했을 때 그 기회가 찾아왔다. 러시아의 슬라브족 형제들에 대한 서방의 공격은 크렘린에게는 하나의 선물이었다. 크렘린은 분노의 물결을 선동했다.
민족주의 열기가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8년 동안의 재앙적인 시장 개혁 끝에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 해 가을 모스크바에서 일련의 의심스런 폭발 사건들이 발생하자 이를 체첸인들의 소행으로 몰아갔다. 그 진범들은 지금까지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는 또다시 유혈낭자한 체첸 공격을 감행했다.
이 새로운 점령이 체첸 주민들에게 미친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6월에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는 러시아 군대가 저지르는 인권 유린을 지적했다.
자의적 감금, 살인, 강탈, 강간, 고문, 실종을 경험하지 않은 체첸인 가족은 하나도 없었다. 버려진 난민촌에서 수만 명이 간신히 살아가고 있다.
많은 청년들에게는 절망만 남아 있을 뿐, 희망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