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점차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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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9월 12일 바그다드 도심 하이파 거리에서 미군이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은 베트남 전쟁 당시의 미라이 학살 사건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전쟁 범죄다.
오전 3시 미군 장갑차 대열이 하이파 거리로 진입해 섬광탄을 발사했다. 그 지역은 반미 감정이 높은 것으로 유명했다. 당연히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오전 7시쯤 차량 폭탄 공격으로 브래들리 장갑차가 부서졌다. 총격전이 뒤따랐고, 장갑차에 타고 있던 미군들은 부상을 입고 도망쳤다.
미군이 퇴각하자 군중이 환호성을 지르며 거리로 뛰쳐나와 불타는 브래들리 장갑차 위에서 춤을 췄다. 이내 미군 헬기가 나타나 저공 비행을 하다가 사전 경고도 없이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적어도 13명이 사망하고 55명이 부상당했다. 사망자 중에는 12세 소녀와 팔레스타인 출신 〈알 아라비야〉 방송기자도 포함돼 있었다.
9월 12일 하루에만 60여 명의 이라크인들이 사망했다. 바그다드에서 37명이 사망했다. 라마디에서는 미군 탱크와 헬기 들이 주택가에서 발포해 어린이와 여자 등 모두 10명이 사망했다.
북부 도시 모술 인근의 탈 아파르에서는 장갑차, F-16 전투기 등의 지원을 받은 약 2천 명의 미군과 이라크 정부군이 2주째 계속된 포위를 끝낼 작정으로 새벽녘에 공격을 퍼부었다.
AP는 거리에 시체들이 널려 있고 건물들이 잿더미로 변한 파괴의 현장을 보도했다. 그러나 미군은 도시를 봉쇄한 채 주민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미군의 공격은 다음 날에도 계속됐다.
미군 비행기들은 엿새째 팔루자를 폭격했다. 미군 대변인은 테러리스트들의 은신처에 대한 정밀 공격을 감행했다고 주장했지만, 팔루자 병원 관계자들은 앰뷸런스 한 대가 공격을 받아 운전기사와 간호사, 다섯 명의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날마다 계속되는 미군의 무차별 공격은 팔루자에 이어 나자프에서도 정치적 패배를 당한 뒤 압도적 군사력을 이용해 전세를 만회하려는 필사적 노력이다.
지난 달 말 나자프 봉쇄 해제 이후 미군은 이라크 저항세력의 주요 근거지들―팔루자, 라마디, 사드르 시, 탈 아파르 등―에 대한 공격을 강화해 왔다.
장갑차 위에서 춤을
내년 1월로 예정된 이라크 총선 전에 반미 저항세력을 제압하고 친미 정치세력의 기반을 확실히 다져 놓기 위해서였다.
9월 10일 백악관 고위 관리들은 내년 1월 이라크 총선 전에 저항세력들을 모두 분쇄할 작정이라고 밝혔다.
9월 12일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NBC 방송에 출연해 출입 금지 구역들을 탈환하려는 미국의 각오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반군들이 진압되면 전 세계 사람들은 이라크인들이 자기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지금은 힘없이 무릎꿇거나 약해질 때가 아니라 우리가 시작한 과업을 계속 추진해 완성해야 할 때입니다.
이런 막가파식 공격은 미국 지배자들의 심각한 위기 의식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무차별 공격과 폭압으로 이라크 민중을 굴복시키려는 전략은 오히려 더 강력한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난 8월 31일 〈LA 타임스〉는 6월 말 이라크 임시정부 출범 이후 전투가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격화해 왔다고 지적했다.
출입 금지 구역
이른바 주권 이양 이후 두 달 동안 미군에 대한 공격은 하루 평균 60차례로 늘어났다. 이는 그 전 3개월보다 20퍼센트가 증가한 것이다.
미 육군 제1보병사단 대령 대너 피터드는 임시정부 출범 이후 뭔가 달라지지 않았느냐는 말에 이렇게 대꾸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남베트남에는 정부가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많은 병사들을 잃었다.
그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규모가 4천~6천 명뿐이라는 주장을 비웃으며, 무장 저항세력의 핵심 지지층이 이라크 국민의 약 0.5퍼센트 ― 약 12만 명 ― 는 될 거라고 말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점점 더 많은 병사들을 잃고 있는 이유는 저항세력이 우리에게 더 많은 총탄을 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서나 우리에게 강력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 그들이 효과적인 이유는 우리에게 총을 쏘는 사람들을 그들이 더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팔루자와 나자프, 라마디에 이어 사마라에서도 사실상 후퇴하자 〈뉴욕 타임스〉(9월 5일치)는 잇따라 출입 금지 구역으로 바뀌고 있는 이라크 도시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군이 점차 이라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팔루자․나자프․라마디․사마라 등 반미 저항의 상징적 도시들 외에도 바그다드 남부 라티피야와 마흐무디야 같은 도시들도 미군과 임시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출입 금지 구역으로 바뀌었다.
그런 도시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수렁에 점점 더 깊이 빠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