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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어린이집 학대 사건과 자본주의 체제의 교육

대한항공 조현아와 백화점 모녀의 갑질에 이어 최근 드러난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학대는 사람들의 엄청난 분노를 자아냈다. 사람들은 앞의 두 사건에서 ‘갑’에게 ‘을’이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급적 분노를 느낀 것인데, ‘어린 아이’마저도 갑의 횡포에 고통받는 ‘을’처럼 여겨져 더 치를 떨었다.

나 역시도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가 나동그라질 정도로 뺨을 때리는 영상을 보고 놀랐다. 그 옆에서 다른 어린 아이들이 쪼그려 무릎 꿇고 있는 것도 매우 안쓰러웠다. 그런데, 곧이어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들은 나중에 자라서도 백화점에서 주차장 알바를 하다가, 혹은 다행히 정규직이 돼도 윗사람 말을 안 들었다는 이유로 똑같이 무릎 꿇는 상황을 겪겠지. 힘 센 사람 앞에서는 부당한 일을 당해도 엄마한테도 알리지 말고 복종해야 한다고 배우고, 저항해서는 안 되며, 저항할 수도 없다고 배우겠지…’

어릴 때부터 강자에게 복종하고 폭력을 내재화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이 받는 ‘교육’의 일부다. 그러한 ‘교육’은 일상적으로, 교실 안팎에서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은 “가만히 있으라” 하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 존재로, 통제를 따라야 하는, 비이성적이고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학교 당국이나 교사가 “성적”을 기준으로 부당하게 차별이나 통제를 하고, 학생들은 불만을 느끼더라도 그것에 맞서 집단적인 항의를 하기는 어렵다. 체제가 강요하는 거대한 교육정책인 대학 입시제도 아래,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 거의 대부분에서 학생들을 경쟁시키고, 경쟁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불만이 있더라도 순응할 수밖에 없고, 상위권 학생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자신의 개인적 능력과 노력 부족을 탓하게 된다.

경쟁

졸업을 하더라도 이런 통제와 차별, 경쟁 등은 끝나지 않는다. 취직을 하기 위해, 정규직이 되기 위해, 더 높은 월급을 받고 승진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한다. 학생 때 야간자습과 보충수업을 했다면, 어른이 돼서는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해야 한다. 사실 취업난과 불안정한 일자리는 자본주의 체제와 지배계급이 야기한 것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학습된 순응, 무기력함 등은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로 하여금 체제에서 문제를 찾고 저항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반면, 지배계급의 자녀라면 경쟁에 뛰어든다 해도 목적도 없이 내몰리거나, 순응을 위한 교육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사교육으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비싼 돈을 들여야만 합격이 가능한 전형으로 명문대에 진학하기도 한다. 조현아와 같은 재벌 2, 3세들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을 위한 교육을 받고, 공부를 못하더라도 정윤회의 딸처럼 승마와 같은 스포츠를 통해 대학에 간다.

이렇듯 사람이 각자의 역할과 분수가 있다고 내재화시키는 차별적인 사상은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유포되고 있다. 갑들의 갑질과 을이 그에 복종하는 문제는 물질적 기반이 핵심이긴 하지만, 맑스가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 했듯 체제의 교육을 통해 유포되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체제의 교육 하에서 일어난 일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본다면, 이 사건의 원인을 해당 교사 개인의 인성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가 아동을 학대하는 사건이 흔하게 일어나는 것은, 이윤을 목적으로 사립 보육시설들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육시설의 원장들이 교사들을 충분히 뽑지 않고, 저임금으로 고용하기 때문에 보육교사들은 고된 일에 시달리고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보육교사들이 아동학대의 원인으로 꼽은 것도 직무 스트레스(71퍼센트)와 과다한 업무(64퍼센트)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몇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창의적인 수업을 하기보단 통제의 대상, 자신의 소외를 푸는 대상으로 대했을 것이다. 지배계급과 달리 노동자 계급은 이런 열악한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다. 보육교사나, 아이를 맡기는 부모는 체제가 가하는 경쟁과 착취, 노동의 소외를 겪고 있고, 아이는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끔찍한 일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학대를 한 어린이집 교사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도 있지만, 어느 한 개인을 비난하고 CCTV를 달아 감시를 하는 것이 손쉬운 해법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 안의 갑질”같은 신조어처럼 개개인이 내적 성찰을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국가가 보육을 책임져 국공립 어린이집, 유치원을 만들어 관리하고, 보육교사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해 주는 것과 같은 구조적인 해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변해야 그 일부인 교육도 더 나은 방향으로 완전히 바뀔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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