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시즘2015 하이라이트:
유럽의 정치 양극화 ─ 그리스 시리자에서 파리 공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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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 조셉 추나라가 2월 6~8일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맑시즘2015’ 참가를 위해 방한했다. 이 글은 추나라가 2월 7일 강연한 ‘유럽의 정치 양극화 ─ 그리스 시리자에서 파리 공격까지’를 녹취한 것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노동자 연대〉 편집자가 첨가한 말이다.
2015년 1월 유럽의 양극화를 보여 주는 사건 두 가지가 일어났습니다 첫째,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와 유대인 상점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이 사건들 자체도 끔찍했지만, 그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주류 우파 정치인들이 대중의 희생자 추모 정서를 이용해 이슬람 혐오와 인종차별을 부추기려 했던 것입니다. 만약 프랑스에서 내일 대선이 치러진다면, 파시스트인 마린 르펜이 당선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가 곧장 파시즘으로 넘어갈 상황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프랑스 지배계급이 파시스트에게 권력을 넘겨야겠다고 느낄 만큼 위기가 심각한 것은 아직 아닙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마린 르펜 세력이 성장하는 것은 유럽 전역에서 파시즘이 정치 생활에 얼마나 침투해 들어왔는지를 보여 주는 징후입니다.
둘째 사건은 제가 보기로 매우 희망적인 것인데, 그리스의 시리자가 총선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시리자의 집권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초로 유럽에서 급진좌파가 집권한 사건입니다.
정치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양극화는 어떻게 일어났을까요? 우선,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에서 중도 좌파나 중도 우파인 주류 정당들의 지지가 허물어져 왔다는 사실을 봐야 합니다. 이 현상은 [2007~08년] 경제 위기 전부터 나타났는데,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 모두 신자유주의를 시행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경제 위기 발발 이후로 중도계 주류 정당들의 지지 하락 속도는 더 빨라졌습니다.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가 번갈아 집권하면서 현실의 검증을 받았는데, 둘 다 노동자를 더욱 공격하기만 했습니다.
1950년 영국 총선에서는 주요 정당인 노동당·보수당·자유당이 모두 합쳐 99퍼센트를 득표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5월에 치러질 총선에서 세 정당의 득표율은 60~70퍼센트가량 될 듯합니다. 스페인에서는 보수당과 사회당의 득표율이 1980년대 이후로 80퍼센트를 유지하다가 이제는 약 50퍼센트로 떨어졌습니다. 그리스 사회당은 2009년에는 44퍼센트를 득표해 집권했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5퍼센트도 득표하지 못했습니다.
주류 정당들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점점 더 급진좌파와 급진우파를 보며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마다 양상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우파들의 성적이 매우 좋고, 아쉽게도 좌파들은 죽을 쑤고 있습니다. 반대로 그리스·스페인·아일랜드에서는 좌파들의 상황이 훨씬 더 낫고, 우파들의 성장은 훨씬 더 느립니다. 독일에서는 좌파와 우파 모두 성장하고 있지만 속도는 느립니다. 양상이 서로 다른 것은 세 가지 요인 때문입니다. 첫째, 경제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가? 둘째, 노동자 계급의 투쟁 수준은 어떠한가? 셋째, 정치 전통은 어떠한가? 급진우파를 먼저 살펴본 다음 급진좌파를 살펴보겠습니다.
급진우파의 성장
급진우파들이 성장한 궤적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습니다. 급진우파들은 모두 긴축으로 말미암은 대중의 고통과 환멸을 이용하고, 주류 정치권에 맞서는 존재로 자신을 포장하고, 흔히 유럽연합에 반대합니다. 급진우파는 하나같이 이민자와 무슬림에 대한 주류 정치권의 인종차별 사상을 차용해 그것을 더 급진적 버전으로 증폭시키고 속죄양 삼기를 자행합니다.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공격 사건을 이해하려면, 그동안 프랑스에서 성장해 온 이슬람 혐오의 성격을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은 궁핍을 강요당하고 사회 언저리로 밀려날 뿐 아니라, 종교를 이유로 조롱당하고 괴롭힘을 당합니다. 프랑스의 무슬림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복장(베일)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프랑스의 많은 좌파들이 잘못된 입장을 취했습니다. ‘세속주의자는 종교에 반대한다’면서 말이죠. 저도 무신론자이지만, 종교적 복장을 금지한다고 해서 그들을 종교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무슬림 복장이든 미니스커트든 무엇을 입을지는 여성의 자유입니다.
프랑스의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교도소 수감자 가운데는 5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한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서 급진화된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극소수 사람들이, 이슬람 혐오적 만화를 게재해 온 〈샤를리 에브도〉 같은 잡지에 분노를 터뜨린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지배자들은 이런 방식의 분노 표출에 대응해 무슬림을 한층 더 차별하고 공격할 것이고, 이것은 결국 더 많은 테러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사회 기층에서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단결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급진우파의 네 가지 유형
인종차별을 먹고 자라는 극우 조직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노골적인 파시스트 조직입니다. 그리스 황금새벽당이 대표 사례입니다. 황금새벽당은 이번 총선에서 6퍼센트를 득표했습니다. 황금새벽당은 홀러코스트가 없었던 일이라고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홀러코스트를 재연하려 합니다. 열등한 인종을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파시스트 운동과 마찬가지로 황금새벽당은 인종차별 사상을 이용해 회원들을 결속시키고 지지를 이끌어 냅니다.
또한 황금새벽당은 좌파와 노동조합을 공격한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황금새벽당은 파시즘의 고전적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지배계급을 대신해 노동자 계급을 파괴하고 원자화시킨다는 목표입니다.
둘째, ‘유러파시스트’라고 불리는 유형입니다. 영국국민당(BNP)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나 유러파시스트 조직의 가장 중요한 사례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의 국민전선(FN)입니다. 유러파시스트 조직들의 핵심부에는 강경 파시스트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2012년 마린 르펜은 아우슈비츠 해방을 기념한다면서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비밀 무도회에 참가했습니다. 그 행사는 홀러코스트를 부인하는 자들과 오스트리아 파시스트 조직이 주최한 행사였습니다. 국민전선 같은 유러파시스트가 황금새벽당 같은 노골적 파시스트와 다른 점은 강경 파시즘 사상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점잖은 정치인 행세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궁극 목표는 선거에서 거둔 성공을 이용해 거리 전투 조직을 만들어 노동자 계급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셋째, 최근 몇 년 사이 나타난 거리 운동 조직입니다. 영국에는 영국수호동맹(EDL)이 있는데, 이 조직에는 훌리건(폭력을 마구 휘두르는 축구 팬)들과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있고, 파시스트도 일부 있습니다. 영국수호동맹은 선거에 출마하지는 않고 무슬림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거리 행진을 벌이며 무슬림들을 겁주는 것에 집중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사례는 독일의 페기다 운동입니다. 페기다는 유럽이 ‘이슬람화되는’ 것에 맞서 싸운다고 주장합니다. 페기다는 드레스덴 등 독일 일부 지역에서 수만 명 규모의 시위를 조직했습니다. 시위대 구성은 다양했지만, 파시스트들도 그 안에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페기다가 분열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페기다 지도자가 히틀러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내부 반발에 부딪힌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페기다 운동에 맞선 거대한 맞불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넷째 유형의 극우 조직은 이번 경제 위기를 틈타 성장했는데, 이들은 우익 포퓰리스트라고 규정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우익 포퓰리스트로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라는 독일의 신생 정당, 네덜란드 자유당(PVV), 영국의 영국독립당(UKIP)이 있습니다. 영국독립당은 최근 선거에서 의원 두 명을 당선시키는 등 꽤 성장하고 있습니다. 언사로만 보면 영국독립당과 프랑스의 국민전선이 비슷해 보여서, 사람들이 혼동하기가 쉽습니다. 예컨대 영국독립당 대표 나이절 퍼라지는 “루마니아 출신 이민자의 옆집에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익 포퓰리스트 조직은 유러파시스트 조직과 달리 핵심부에 파시스트들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주류 우파 정당에서 더 오른쪽으로 떨어져 나간 세력입니다. 우익 포퓰리스트 조직은 인종차별 사상을 이용하면서 주류 정치권에 반대하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함으로써 만만찮은 세력으로서 주류 정치권에 편입되려고 합니다.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파시스트는 아니지만, 그들이 성장하면 정치적으로 위험합니다. 첫째, 주류 정치 담론을 전체적으로 더 오른쪽으로 옮김으로써, 극우가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줍니다. 둘째, 파시스트들이 우익 포퓰리스트 조직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 그 안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현재 네덜란드 자유당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영국독립당 같은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의 성장은 색다른 어려움을 제기합니다. 그들이 파시스트 조직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영국독립당에 맞서 일어서자’(Stand up to UKIP)라는 조직을 건설해 인종차별 사상에 저항하고 영국독립당의 정치에 이의제기를 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반파시즘 투쟁과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구실
급진우파의 성장에 맞서 항상 좌파의 대응이 있어 왔습니다. 특히 영국과 그리스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영국과 그리스 모두에서 노동자연대의 자매조직인 혁명적 좌파들[두 나라 사회주의노동자당]이 파시즘에 맞선 공동전선을 건설하는 데 주도력을 발휘했습니다. 우리는 공동전선을 건설하면서 개혁주의 지도자들과 기층 지지자들 모두에게 파시즘에 맞서 함께 싸우자고 호소했습니다. 그 결과 무슬림 단체와 이민자 단체들뿐 아니라, 노동당과 노동조합도 반파시즘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우리는 공동 행동을 건설하는 동시에 혁명가들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반파시즘 운동이 전투적 전술을 채택하도록 애썼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수호동맹이 무슬림 거주 지역에서 거리 행진을 벌이려 할 때 우리는 더 큰 맞불 행진을 벌여야 한다고 선명하게 주장했습니다. 또, 영국국민당이 [파시스트] 정체를 숨기고 점잖은 정당 행세를 할 때 우리는 그들의 수뇌부가 파시스트라는 것을 들춰냈고, 그럼으로써 그 지지자들을 지도자들로부터 떨어뜨려 놓을 수 있었습니다. 영국국민당은 몇 년 전에는 지자체 의원 50명과 유럽의회 의원 2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단 한 명의 의원도 없습니다.
우리는 한 도시에서 영국수호동맹이 이슬람 사원 쪽으로 행진하려는 것을 가로막은 적이 있습니다. 며칠 후 영국수호동맹의 대표는 그날이 자신의 생애 최악의 날이었다면서 대표 자리에서 사임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극우에 맞서 투쟁적 단결을 조직할 태세가 된 사람들이 있으면 극우 운동을 막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월 21일 유럽 곳곳의 대도시에서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국제 행동의 날 시위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 행동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투쟁을 조직할 것입니다.
시리자의 집권은 계급투쟁의 고조를 반영한다
지금부터는 좌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의 시리자를 중심으로 말씀드릴 텐데, 시리자가 가장 흥미진진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시리자가 집권 뒤 처음으로 한 일은 재무부 청소 노동자들을 재고용한 것입니다. 재무부 청소 노동자들은 2년 전에 해고돼 최근까지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그리스에 강요됐던 몇몇 민영화 계획을 취소한 조처가 상징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그러나 2월 24일 시리자 정부는 민영화 계획을 취소하지 않기로 유럽 지배자들과 합의했다. ─ 〈노동자 연대〉 편집팀]
시리자는 그리스 공산당에서 이탈해 나온 세력들이 여러 차례 합병과 분열을 겪으면서 등장한 조직입니다. 거기에 일부 트로츠키주의 단체와 마오주의 단체도 합류했고, 전에는 사회당(PASOK)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합류했습니다.
시리자는 연합 조직으로 2004년 처음으로 총선에 출마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2012년 총선에서 사회당의 득표가 폭락했고, 시리자가 17퍼센트를 득표하면서 제2의 정당이 됐습니다. 시리자는 주로 도시 노동자 계급에게서 표를 받았습니다. 그 중 다수는 전에 사회당에 투표했었습니다.
시리자의 집권은 2007년 이후 그리스 노동자 계급 투쟁이 고조돼 온 상황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총파업이 32건 있었고, 전국 곳곳에서 광장 점거와 행진과 시위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급진좌파의 성장이 그리스에서 두드러지는 것입니다.
급진좌파의 성장은 단지 그리스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스페인에서도 창당한 지 1년도 채 안 되는 신생 정당 포데모스가 약진하고 있습니다. 포데모스 지지자의 다수는 대규모 광장 점거 운동인 ‘인디그나도스’ 운동 등 투쟁에 참가하고 지지를 제공한 사람들입니다. 1월 31일 스페인 마드리드 등지에서 십여만 명이 시리자의 승리를 축하하며 행진을 벌였습니다. 올해 12월에 치러지는 스페인 총선에서 포데모스가 승리하면, 유럽에서 급진좌파 정부 두 개가 들어서는 상황이 됩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상황 전개입니다. 투쟁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대중이 정치 일체를 거부하면서 ‘반정치’(anti-politics)가 우세해지고 있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은 매우 정치적입니다. 물론 대다수 노동자들의 의식은 개혁주의적이지만 말이죠. 달리 말해 대다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인류의 필요에 맞게 개선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기존의 전통적 개혁주의 조직들은 지지자들을 배신했고 더는 개혁을 기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보기로 좌파 개혁주의인 시리자와 포데모스가 급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포데모스는 자기 정치를 선명하게 표현합니다. “우리는 정치 카스트와 기업인 등에 반대해 민중을 대변한다.” 포데모스는 그 속에 혁명가들이 포함돼 있지만, 조직 자체의 성격은 개혁주의입니다. 시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리자의 전략은 ‘국가를 장악하고 그 국가를 이용해서 개혁을 도입한다’는 것입니다. 시리자 내 극좌파인 스타티스 쿠벨라키스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시리자는 반자본주의 연합체로서 권력 문제를 다룰 때 선거 연합 결성 및 선거를 통한 집권과 아래로부터의 투쟁 및 대중운동 사이의 변증법에 집중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선거와 대중운동 가운데 무엇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가?
시리자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긍정적 일을 여럿 했지만, 그리스독립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악수를 뒀습니다. 그리스독립당은 우파 정당이고, 당대표는 유대인과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이 새 정부의 국방부 장관을 맡기로 했습니다. 시리자가 꼭 연정을 구성했어야 하는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시리자는 의석이 절반 이상은 안 되더라도 정부를 구성하고 다른 좌파 정당들에 압박을 가해 정부 정책에 찬성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독립당과의 연정 구성은 시리자에게 의회의 논리가 투쟁의 논리를 압도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물론 시리자 내 좌파들은 이런 움직임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2012년 이후 시리자 지도부는 당내 규율을 강화하려 했고, 그럼으로써 당내 좌파의 운신의 폭을 줄이려 했습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도 지난 몇 달 사이에 비슷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정부를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책임감 있는 정당으로 비쳐지려 하면서 당내 좌파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습니다.
시리자 정부가 맞닥뜨릴 난관들
심지어 시리자가 더 강경한 좌파적 노선을 가려 하더라도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국가는 좌파든 우파든 집권만 하면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중립적 기구가 아닙니다. 국가의 핵심부에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들이 있고, 이 자들은 자본에 동질감을 느낍니다. 학자들은 이런 것을 일컬어 ‘심층 국가’(deep state)라는 용어를 씁니다. 아테네 경찰의 50퍼센트가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새벽당에 투표했었습니다. 2013년 황금새벽당 지도자들이 범죄 조직 결성·운영 혐의로 체포됐는데, 그때 경찰 고위간부 두 명과 정보부 관료도 연루됐음이 드러났습니다.
시리자와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한 그리스독립당의 장관들은 이렇게 암약하는 세력과 정부를 잇는 다리 구실을 할 것입니다. 치프라스는 그리스 국가를 지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 1973년 칠레의 아옌데가 칠레 국가를 장악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국가가 항상 민주주의를 존중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그리스는 국제적 압력을 어마어마하게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는 부채를 일부 탕감받고 싶어 할 텐데, 독일이 막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때 치프라스는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을 것입니다. 하나는 돈을 더 빌리기 위해 긴축을 시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방적으로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디폴트를 선언하면 그리스는 십중팔구 유로존에서 나와야 할 것이고, 그러면 그리스 은행 시스템을 국유화하는 등의 조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치프라스는 이런 방향을 반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말 두 마리를 탈 수는 없는 법입니다. 결국 그리스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의회 밖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결과일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입니다. 즉, 긴축을 끝내려면, 그리고 대중의 필요를 실질적으로 충족시키려면, 그리스 자본가들과의 격돌이 불가피합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석유 수출 수익에 기대어 적대 계급들의 충돌을 비껴갈 수 있었지만, 치프라스에게는 그럴 만한 수단이 없습니다. 그리스 지배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것에도 아주 결연히 저항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투쟁이 결정적 변수가 될 것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과제 ― 공동전선과 독립적 혁명 조직 건설하기
이 모든 것을 감안했을 때, 시리자 밖에 있는 좌파의 과제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리자 바깥의 최대 좌파는 공산당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5퍼센트를 득표했습니다. 공산당은 노동조합과 학생회에서 시리자보다 기반이 더 큽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공산당은 시리자뿐 아니라 운동에 대해서도 매우 종파적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전역에서 청년들이 광장을 점거했을 때 공산당은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청년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여러분은 곧 지배자들에게 이용당하고 말 것이다.’ 공산당은 때때로 초좌파적으로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든 안 하든 관심 없다. 유로화든 [옛 그리스 화폐인] 드라크마화든 자본주의 화폐이긴 마찬가지다’ 하는 식입니다. 이런 태도의 귀결은 수동성이고, 운동에 대한 종파적 태도입니다.
레온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사람들이 투쟁에 나선다고 해서 개혁주의적 의식이 곧바로 혁명적 의식으로 도약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점근법[계산을 할 때 먼저 어떤 근사값을 구하고, 그것을 이용해 더 가까운 근사값을 구해, 점차 정확도를 높여가는 방법]처럼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혁명적 의식으로 다가갑니다. 따라서 좌파는 투쟁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고, 동시에 토론하고 논쟁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이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안타르시아라는 더 큰 반자본주의 연합체에 소속돼 있기도 합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시리자의 집권을 환영하는 동시에 시리자의 집권이 자아낸 분위기를 이용해 투쟁을 더 전진시키려 합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리스에서는 투쟁 수위가 전보다 낮았습니다. 다들 시리자가 집권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전 정부가 폐쇄한 국영 방송국 ERT의 해고 노동자들이 시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런 투쟁에 가보면, 사람들은 ‘시리자가 집권했으니 정말 뭔가 변하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투쟁을 벌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투쟁이야말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입니다. 혁명가들은 시리자의 당원 및 지지자들과 함께 투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안타르시아는 3월 21일로 계획된 인종차별 반대 국제 공동행동의 날에 시리자도 동참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비록 안타르시아는 총선에서는 1퍼센트도 득표하지 못했지만, 반자본주의 운동과 노동조합 안에 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컨대, 혁명가들의 활동 방식은 이렇습니다. 우파에 맞서서는 시리자 정부를 방어하며 시리자가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가도록 압력을 가하고, 동시에 시리자가 후퇴하려 하면 이에 반대해 싸우는 것입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SWP의 창립자 토니 클리프는 1990년대가 느리게 돌아가는 1930년대 같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1990년대 상황을 돌이켜보면 이 말은 약간 과장이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클리프의 말은 오늘날 유럽의 상황에는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의 역사는 결국 재앙으로 끝났지만, 그 재앙은 필연은 아니었습니다.
1930년대 패배로부터 두 가지 핵심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첫째, 극우에 맞서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혁명가들은 독자적 분석과 전술을 내놓을 수 있는 독립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혁명가들은 여전히 개혁주의적인 의식의 노동자들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투쟁할 때 혁명가들은 그들과 함께하고, 동시에 자신들의 사상 쪽으로 노동자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런 교훈을 익혀 현실에 잘 적용하면 앞으로 우리 혁명가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올 것입니다.
정리
활발한 토론 감사합니다. 우선, 신자유주의라는 모호한 말을 사용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는 민영화, 규제 완화, 법인세 감면, 노동자 쥐어짜기 등을 뜻합니다. 엄밀히 말해, 신자유주의에는 사회적 의미에서 자유주의적인 면이 없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최초로 실험된 곳이 피노체트 독재 정권 하의 칠레였음을 상기하면 됩니다.
결국 진정한 문제는 신자유주의라기보다는 자본주의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지배에는 항상 동의의 요소와 강압의 요소가 섞여 있습니다. 피지배자들에게서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지배자들은 [그렇지 못한 상황보다] 지배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의 어느 지배계급도 따지고 보면 폭력에 의존해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합니다.
둘째, 인종차별, 특히 프랑스의 이슬람 혐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이 세속주의를 기계적으로 적용한다고 어느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백 번 맞는 말입니다. 원래 [19세기 후반] 세속주의는 매우 강력했던 가톨릭 교회를 정치 생활에서 몰아내기 위한 요구로 제기됐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가톨릭 교회는 지배계급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고, 그 자체로 강력한 억압자였습니다. 반면, 현재 이슬람은 당시 가톨릭 교회와 처지가 매우 다릅니다. 이슬람은 프랑스에서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에게 사회에 통합되라고, 주류 사상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을 더욱 주변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러시아 혁명 직후 레닌과 볼셰비키도 이와 비슷한 문제를 다뤘습니다. 볼셰비키는 무슬림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러시아 안에서 여러분의 모스크[예배 장소]와 종단 학교 등은 러시아 혁명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앞으로 소비에트 법을 따를지 이슬람 율법을 따를지 선택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다.’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소비에트 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통은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한 뒤로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주장도 흔히 있습니다. ‘이슬람 혐오는 인종차별이 아니다. 이슬람은 종교이지 인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종이라는 것은 언제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만들어 내는 범주였습니다. 인종은 특정 집단이 갖는 고정불변의 특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종 구분에는 항상 신체적 특징과 문화적 요소가 섞여 있습니다. 오늘날 유럽에서 이슬람 혐오가 정확히 그런 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슬람 혐오는 인종차별의 최첨단 형태가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슬림을 공격하기는 쉽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혐오의 확산을 내버려 두면 오래된 형태의 다른 차별들도 부활할 것입니다.
영국 상황이 [프랑스보다] 비교적 나은 것은 영국에 특별한 전통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영국에서 우리[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는 무슬림 단체를 포함하는 광범한 반전 동맹을 구축했습니다. 우리는 좌파들이 무슬림과 함께 단결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설득해 냈습니다.
다음으로, 민중전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중전선과 관련해 1930년대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반파시즘 투쟁에 관련해서는 민중전선이 특히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민중전선은 혁명가들이 단결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컨대 영국수호동맹에 맞서는 공동전선을 결성할 때, 광범한 연합을 이루자는 유혹이 컸습니다. 점잖은 체하는 주류 정당까지 포괄하자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영국수호동맹을 거리에서 저지하는 전투적 전술을 채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공동전선은 광범한 단결이지만 그 안에서 혁명가들은 전술을 둘러싸고 다른 세력들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혁명가들의 전술이 더 낫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혁명가들은 공동전선에 참가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파시즘의 성장이 낳을 결과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첫째이자 매우 명백한 결과는 소수인종과 무슬림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황금새벽당 당원과 지지자들은 병원에 쳐들어가서 소수인종 환자들을 병상에서 끌어내 길거리로 내동댕이칩니다. 헝가리의 [노골적 파시즘 정당] 요빅당은 로마인 거주지에 들어가 방화를 저지릅니다. 이런 것들이 파시즘의 성장이 낳은 즉각적인 결과이고, 이것 때문에라도 우리는 파시즘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파시즘의 궁극 목표가 단지 인종차별 조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파시스트들은 위기를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 합니다. 즉, 파시스트들은 거리 전투 조직을 건설해 그 힘으로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할 독재를 시행하려 합니다. 히틀러가 독일에서 한 일을 재연하는 것이 오늘날 파시스트들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파시스트들을 정치 토론의 장에 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파시스트들이 노동조합이나 학생회에서 발언하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그들은 언론의 자유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바로 어제 마린 르펜이 영국 옥스포드대학교의 한 토론회에 초대돼 참가했습니다. 저는 마린 르펜 같은 파시스트와 생산적이거나 의미있는 토론을 할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수천 명을 조직해 마린 르펜의 연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의 혁명가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연히 그리스 좌파들은 그리스독립당이 연립정부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런데 ‘자본가 장관’들을 정부에서 쫓아내라는 것이 주요 요구가 돼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이 요구가 우파에 맞서 시리자를 방어하는 데 조건이 돼서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며칠 전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은행들에 ‘앞으로는 그리스 채권을 대출의 담보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선출되지도 않은 기구인 유럽중앙은행이 시리자 정부를 압박해 부채 문제에서 굴복하도록 길들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동지들은 유럽중앙은행의 행태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선출된 시리자 정부를 우파에 맞서 방어해야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투쟁이라는 방식으로 그래야 합니다.
그리스 동지들은 또 다른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동지들은 그리스 대중이 시리자에 큰 기대로 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 동지들은 사람들의 높은 기대감을 이용해 더 많은 투쟁을 일으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시리자에 투표한 사람들도 시리자보다 더 급진적인 반자본주의 좌파들의 투쟁에 동참케 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투쟁을 통해서만 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사람들이 투표를 통해 얻길 기대한 변화를 전투적 계급투쟁을 통해서 달성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긴축을 막아 내는 것을 넘어, 궁극으로는 자본주의를 분쇄할 세력을 키우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어떤 세력에 대해 협력도 하고 투쟁도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에서 가능한 한 광범한 단결을 이뤄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전투적인 방식으로 싸워야 합니다. 이런 투쟁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킬 것입니다. 또한 혁명적 세력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수행해야 할 과제입니다.
통역 천경록 / 녹취 이재융 / 교정·교열 차승일·최일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