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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자의 집권과 혁명적 좌파의 과제(1)

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 조셉 추나라가 2015년 2월 방한해 〈노동자 연대〉 신문 기자들과의 모임에서 한 강의를 녹취한 것이다.

좌파 개혁주의 부상의 요인 ① ─ 정치 전통

우선, 왜 시리자 같은 좌파 개혁주의 경향이 약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좌파 개혁주의의 부상을 설명하는 세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특정 나라의 정치 전통, 둘째, 기존의 사회민주주의에 압박을 가하는 경제 위기의 심각성 정도, 셋째, 계급투쟁 수준입니다. 이 세 가지 요인들을 각각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각국의 정치 전통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나라에 다양한 좌파 세력이 이미 존재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상당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좌파 진영에서 오랫동안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강했고 그보다 왼쪽의 대안은 비교적 약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독일 서쪽 지역도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은 좌파당(디링케)이 독일 서쪽 지역에서 생겨나게 된 한 이유였습니다. 먼저 사민당에서 일부가 분열해 나오고 옛 동독 지역의 공산당과 합쳐져 좌파당이 탄생했습니다.

그리스의 정치 전통은 다릅니다. 많은 그리스 좌파는 사회당(PASOK)을 좌파의 일부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의 이런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역사를 조금 알아야 합니다. 제2차세계대전 말 그리스에서는 나치의 점령에 맞선, 공산당이 주도한 강력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그리스에서는 처절한 내전이 일어납니다. 그 뒤 1960~70년대 강력한 투쟁이 일어났고 이때도 공산당이 큰 구실을 합니다. 1968년 이후 공산당이 분열하는 등의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그리스 사회에서 이러저러한 급진좌파들의 존재감은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왼쪽의 좌파가 강력하게 존재한다고 해도, 좌파 개혁주의가 돌파구를 여는 것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탈리아가 좋은 사례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2000년대 초]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이 일어나는 시기에 재건공산당(리폰다치오네 코무니스타)이 성장했습니다. 재건공산당의 뿌리는 공산당입니다. 재건공산당은 [2006년] 중도좌파 정부에 입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했고, 그 뒤 재건공산당의 지지율은 폭락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좌파 개혁주의가 아니라 베페 그릴로가 이끄는 오성운동이 약진하고 있습니다. 오성운동은 정체가 모호한 운동인데, 우파적 인물도 포함돼 있고 이민 문제에 대한 입장은 꽤나 안 좋습니다.

좌파 개혁주의 부상의 요인 ② ─ 경제 위기

좌파 개혁주의의 부상을 설명하는 둘째 요인은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심각한 위기입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하고 있던 나라에서 위기가 끼친 영향은 특히 더 강했습니다. 그리스 사회당은 군부독재 종식 이래 그리스 자본주의에서 그야말로 주류 정당이었습니다. 그런데 2015년 1월 총선에서 득표율이 5퍼센트도 안 됐습니다. 유럽 곳곳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경제 위기가 가하는 압박을 받고 있지만, 그리스 사회당의 몰락은 차원이 다른 종류의 현상입니다.

극심한 경제 위기로 쓰레기통을 뒤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진 출처 Andreas Kontokanis (플리커)

좌파 개혁주의 부상의 요인 ③ ─ 계급투쟁 수준

위의 두 가지 요인이 시리자 같은 좌파 개혁주의가 성장한 배경이지만, 더 중요한 요인은 계급투쟁 수준입니다. 계급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업장 투쟁이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한정되지는 않습니다.

아일랜드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아일랜드 정부가 처음 긴축 정책을 시행하려 했을 때 노동조합들은 투쟁하겠다고 하다가 이내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히려 거리 운동이 매우 강력하게 일어났고 지역 주민 조직이 성장했습니다. 최근 수도세 도입에 항의해 10만 명이 거리에 나왔는데, 아일랜드의 인구(약 4백80만 명)를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입니다.

이런 운동들은 정치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집권 노동당에 대한 좌파적 대안으로서 신페인당[북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전통을 이어받은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두 개의 급진좌파 정당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긴축 초기에 대중파업이 두 번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이 두 대중파업을 억제해서 끝내자 광장 점거 운동 같은 거리 운동이 분출했습니다. 이 운동은 ‘인디그나도스’ 운동이라고 불렸는데,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이 운동이 여러 형태의 다른 저항 운동들을 촉발했다는 것입니다.

교육과 의료 부문 긴축에 반대하는 커다란 운동이 일어나 병원을 점거하는 일도 있었고, 최근에는 ‘존엄성 행진’이라고 불린 대규모 거리 행진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항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포데모스의 중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도 투쟁이 끈질기고 강력하게 일어난 곳은 그리스입니다. 그 중심에는 노동자 투쟁이 있었습니다. 물론 노동자 투쟁과 함께 거리에서도 광범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 정부가 발표한 공식 통계를 봐도, 2010년 이후 그리스에서는 매일 14건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32번의 총파업이 있었죠.

혁명적 파업과 관료적 파업

그런데 대중파업이나 총파업을 얘기할 때는 그 파업의 성격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파업에는 매우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파업도 있고 관료적 파업도 있습니다. 혁명적 파업의 대표 사례는 1905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총파업입니다. 관료적 파업은 토니 클리프가 처음 사용한 말인데,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의 통제력이 매우 강한 파업을 뜻합니다.

1905년 러시아 총파업은 아래로부터의 주도력과 에너지가 충만한 파업이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대중파업》에서 말했듯이, 이런 파업에서는 정치적 요구와 경제적 요구가 실질적으로 결합됐습니다. 또한 지속성이 있었고, 파업이 성장하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파업은 명백히 혁명적인 성격을 띠었습니다.

혁명적 파업의 또 다른 사례는 1968년 프랑스 대중파업입니다. 이 파업은 처음에는 하루 파업으로 시작됐습니다. 노동자들의 분노를 어느 정도 표출하게 한 다음 투쟁을 가라앉힐 목적으로 기획된 파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이 파업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파업이 부문 간 장벽을 뛰어넘기 시작했습니다. 파업 참가자의 4분의 3이 조합원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점점 더 평조합원들의 주도력과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한 작업장 점거가 두드러졌습니다.

이 파업 운동에 직면해 당시 대통령 드골은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골이 탄 비행기가 이륙할 때, 드골의 부인이 창문 밖을 가리키며 많은 공장 지붕에 붉은 깃발이 내걸려 있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이 파업을 잠재우는 데 3주가 걸렸습니다.

2011년 11월 영국에서 일어난 총파업은 이런 파업과는 양상이 매우 달랐습니다. 이 파업은 노조 지도자들이 지시한 것이었고, 평조합원 운동의 강력한 압력에 떠밀려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조 지도자들은 조합원 수가 감소하고 조합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에 불안해 하며 파업을 지시했습니다.

2백50만 명이 파업에 참가하고 대규모 시위도 일어났지만 지도부가 투쟁을 꽉 틀어쥐고 있었습니다. 이 파업 이후 노조 지도자들은 매우 신속하게 투쟁 계획들을 취소했습니다.

그리스, 관료적 파업에서 점차 대중파업으로 발전하다

2012년까지 그리스에서 일어난 총파업들은 처음에는 관료적 파업으로 시작했으나 갈수록 1968년 프랑스 대중파업처럼 발전해 나아가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처음에 노동자들은 파업 날 그냥 집에서 쉬었습니다. 그런데 급진좌파들이 파업이 일어난 것을 활용해 평조합원의 주도력이 발휘되도록 애썼습니다. 급진좌파들은 작업장 집회, 피케팅, 거리 시위 등을 조직해 평조합원 네트워크를 건설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2월에는 며칠 만에 48시간 총파업이 조직되기도 했습니다. 평조합원 네트워크가 없었고 주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좌파들은 또한 총파업과 각 부문의 투쟁을 연결시키려 애썼습니다.

전에는 버스 노동자, 지자체 공무원 노동자, 병원 노동자 등이 파업을 벌이려면 노조 지도자들의 관료적 압력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이 한몫했습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평조합원 신문을 발행하고 여러 부문 평조합원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려고 애썼습니다.

계급투쟁에서 정치의 중요성

여기서 한 가지 꼭 유념해야 할 것은 계급투쟁에 정치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것입니다. 2012년 이후로는 그리스에서 투쟁 수위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극심한 실업으로 사람들의 사기가 떨어진 것도 한 이유였지만, 2012년 5월과 6월 총선에서 시리자가 약진한 것도 이유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리자가 집권해 변화를 가져다 주기를 기다리자는 주장에 사람들이 솔깃해지기 쉽습니다. 물론 부문별로는 매우 중요한 투쟁이 일어났습니다. 총파업도 여러 번 일어났고요. 그러나 2012년 이후의 파업들은 그전의 파업들처럼 반란의 기운이 충만하지는 않았습니다.

두 가지 상황

정치는 다른 식으로도 투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현재 시리자가 집권하면서 대중의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시리자 정부가 대중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두 가지 상반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정부가 못 하면 우리 힘으로 쟁취하자’면서 투쟁에 더 나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리자가 노동조합 관료들을 위해 파업 운동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노동조합 관료의 대다수는 사회당과 연계돼 있었는데, 사회당의 노동조합 기반이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은 노동조합 내 세력 구도가 굉장히 유동적입니다.

이처럼 노동조합 상층부가 유동적이고, 분열하고, 그 안에서 상대적 좌파가 등장하는 상황에서는 평조합원의 주도력이 발휘되는 데 유리한 돌파구가 열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과 자본을 중재한다는 노동조합 관료의 사회적 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상대적 좌파든 우파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안타르시아와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이 기회를 이용해 평조합원 네트워크를 건설하고 운동을 더 전진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시리자와 좌파 개혁주의의 성격

제가 그 다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좌파 개혁주의 조직들의 성격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개혁주의라는 말을 도덕적 비난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오래된 구분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놀랍게도 유럽 좌파들 내에서는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가 오늘날에도 과연 중요한가 하는 것이 큰 논란거리입니다. 사람들이 우파 개혁주의를 너무 오래 접한 영향이 큰 듯합니다. 우파 개혁주의를 오래 접하다 갑자기 좌파 개혁주의가 급성장하니까,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가 극복됐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좌파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말이 흔히 급진적인 것도 이런 혼란을 배가시킵니다.

이런 점에서 좌파 개혁주의는 트로츠키가 중간주의라고 부른 것과 꽤 비슷합니다. 트로츠키가 지적한 중간주의의 특징 하나는, 어느 중간주의자도 스스로 중간주의자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좌파 개혁주의의 급진적 언사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이 일어나던 2000년대 초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은 반자본주의적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저는 재건공산당 베르티노티 대표가 런던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문학적 어투로 말했고, 또 반자본주의 운동의 언어로 연설했습니다. 그러다 몇 달 뒤에 중도좌파 정부에 입각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틀

따라서 좌파 개혁주의라는 규정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 정당들이 국가기구를 장악해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위로부터의 개혁을 시행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시리자 안에 혁명적 좌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정당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초 영국 노동당 안에는 당시 영국의 최대 혁명적 좌파 조직이었던 밀리턴트가 있었습니다.

시리자에서 가장 우세한 분파는 치프라스가 주도하는 당내 우파입니다. 그리고 국가 장악을 목표로 하는 정당의 특성상 치프라스 주변의 국회의원들이 당을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2012년의 성공 이후 시리자를 연합체 조직에서 단일 정당으로 탈바꿈하려는 흐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당내 좌파들에 대한 단속이 심해졌습니다.

여기에 시리자 내 좌파들이 겪는 혼란으로 문제가 더 커집니다. 시리자 내 좌파의 일부는 좌파 정부 수립 전망에 정말로 기대를 겁니다.

‘좌파 정부 수립’은 2012년 총선에서 치프라스가 내세운 구호입니다. 그러나 치프라스는 실천에서는 좌파 정부라기보다는 트로이카와 구제 금융에 반대하는 ‘국민 단결 정부’ 노선에 더 이끌렸습니다. 이런 민족주의적 성격 때문에 치프라스가 우파 정당인 그리스독립당과 연정을 맺는 데 열의를 보인 것 같습니다.

시리자 내 좌파들이 겪는 혼란에 대해 알고 싶으면 스타티스 쿠벨라키스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 보시면 됩니다. 그의 출발점은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시위나 파업도 돌파구를 열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투쟁이 교착 국면에 도달했으니 의회를 통한 지름길을 찾자는 것입니다.

좌파 정부

쿠벨라키스는 그리스 마르크스주의자 니코스 풀란차스의 언어를 차용합니다. 풀란차스는 1970년대 유러코뮤니즘 경향의 이론가였습니다. 그는 국가 안팎의 투쟁 필요성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국가 바깥의 노동자 평의회와 국가 안의 좌파 정부가 나란히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 안에도 노동자 계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공간이 크게 존재한다고 과장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 안에서의 투쟁과 밖에서의 투쟁이 흔히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시리자는 유럽연합과 맺은 양해각서 내용의 60퍼센트를 수용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행태는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려다가 나타나는 실용주의인데, 시리자에 투표한 사람들의 염원과 충돌합니다.

또한, 시리자는 그리스가 유로존과 유럽연합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매우 단호한 입장입니다. 그러나 유로존과 유럽연합에 남아 있는 것은 그리스에 더 나쁠 수 있습니다. 트로이카가 부채 재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 문제를 둘러싸고 충돌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혁명적 좌파는 트로이카의 시리자 정부 공격에 반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혁명적 좌파는 시리자 정부에 무비판적으로 기대서는 안 됩니다.

스페인 포데모스의 세 가지 이데올로기

왜 그래야 하는지는 스페인 포데모스가 더 잘 보여 줍니다. 포데모스의 뿌리는 시리자와 조금 다릅니다. 포데모스는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주변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2014년 창당했습니다. 포데모스는 인디그나도스 운동 지지자들을 많이 끌어당겼고, 공산당 지지자와 사회당 지지자도 많이 끌어당겼습니다.

포데모스의 이데올로기는 세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습니다. 첫째, 라틴아메리카 에콰도르·볼리비아·베네수엘라의 좌파 정부를 대안으로 보는 사상입니다.

둘째, 포데모스를 등장시킨 운동에서 득세하는 수평주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포데모스는 약 1천 개의 지역 ‘서클’로 구성돼 있습니다. 서클들은 지역마다 특색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결정을 온라인 투표로 합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한테서 차용한 사상입니다. 라클라우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계급주의를 극복하는 출발점으로 다양한 ‘사회운동’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 담론을 부과함으로써 그 운동들에 일관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운동들은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 하나의 주체로 융합될 수 있다.’

이런 라클라우의 사상을 차용한 결과, 포데모스는 흔히 운동 안에서 상식적으로 보이는 것을 주장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에서 매우 중요한 바스크 민족 문제와 이민자 문제 등에서 갈팡질팡합니다.

포데모스 안에도 혁명적 경향이 있고, 그들은 포데모스의 출범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포데모스가 큰 성공을 거둔 뒤 이글레시아스는 지도부의 장악력을 키우려고 애썼습니다. 이글레시아스는 전보다 더 중앙집권적인 구조를 확립해 혁명적 세력을 주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처럼 포데모스가 [의회주의적 의미에서] 점잖아지는 쪽으로 선회하는데도 지지율이 계속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스페인 사람들이 ‘반정치’적이라는 얘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많은 스페인 사람들은 정치인들과 기득권 층이 모두 썩었다고 봅니다. 포데모스는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을 “카스트”라고 부르며 비난하는데, 이것은 사실 대중의 주류 정치인 혐오 정서를 개혁주의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개혁주의는 단지 개혁주의 조직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득세하는 의식 형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개혁주의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치명적 실수가 될 수 있습니다.

좌파 개혁주의에 대한 혁명적 좌파의 전술

마지막으로, 좌파 개혁주의를 대하는 혁명적 좌파의 전술이 어때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좌파 개혁주의의 성장을 환영해야 합니다. 간단한 이유에서인데, 좌파 개혁주의의 성장이 투쟁의 급진화를 반영하고,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이는 데 일조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공동전선 전술이 여전히 중요합니다. 개혁주의의 뿌리가 깊어서 특히 더 그렇습니다. 즉, 혁명가들은 공동 투쟁을 위해 개혁주의 지도자들과 제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누구와 관계를 맺을지는 계급 세력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 개혁주의 단체 전체와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그 내부의 좌파와 관계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 형태는 복잡할 수 있지만 공동전선 전술의 기본 원리는 간단합니다. 만약 누가 보기에도 정당한 요구로 싸우자고 제안했는데,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거부하면 혁명적 좌파는 그 지도자들에게 발목 잡히지 않고 투쟁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혁명적 좌파는 개혁주의 단체와 함께 운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동 투쟁을 벌이면서도 혁명적 좌파는 어느 전술이 더 나은지를 주장해야 하고 자신들의 사상을 옹호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혁명적 좌파가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노동자들에게 입증해 보여야 합니다.

그리스의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은 이런 방식의 실천이 적용된 좋은 사례입니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안타르시아는 시리자가 이 운동에 참여하도록 끌어당겼습니다.

공동 투쟁

셋째, 혁명적 좌파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 안에서 활동할 수도 있고, 바깥에서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개혁주의 정당에 가입하느냐 마느냐는 원칙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에 입각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원칙의 문제이겠지만 말이죠.

유럽의 국제사회주의경향(IST) 자매단체들은 나라들마다 처한 상황이 다릅니다. 독일의 마르크스21은 독립적 마르크스주의 경향으로서 좌파당 안에서 활동합니다. 그리스의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안타르시아에 속해 있지, 시리자에 속해 있지는 않습니다. 스페인의 엔루차는 지역에 따라 포데모스 안에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카탈루냐 주에서는 포데모스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미 카탈루냐 지역에서 강한 좌파 민족주의 경향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전술은 매우 복잡할 수 있지만, 언제나 전략에 종속됩니다. 혁명적 좌파의 전략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대중 운동으로 국가를 분쇄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따라서 그 전술은 혁명적 대중 정당을 건설하는 방향으로 맞춰져야 합니다.

그런데 혁명적 대중 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한 명 한 명씩 가입시켜서는 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존의 개혁주의·중간주의 조직에서 혁명적 좌파가 떨어져 나오거나, 거기서 떨어져나온 세력이 혁명적 좌파에 합류하는 식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실제로 혁명적 대중 정당을 건설하려면 정치가 매우 명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세력과 관계를 맺든 혁명적 좌파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통역 천경록 / 녹취 박충범 / 교정·교열 차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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