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주한 미대사 피습:
미국의 호전적인 군사훈련과 한일관계사 왜곡 비호가 낳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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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노동자연대가 2015년 3월 5일에 발표한 성명이다.
오늘(3월 5일) 오전 주한 미국 대사 마크 리퍼트가 좌파 민족주의 경향의 개인 김기종 씨에게 피습을 당했다. 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박근혜는 김기종 씨의 공격을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며 맹비난했다. 그리고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응징을 다짐했다. “배후가 누구인지 철저히 조사해 우리 사회에서 테러 행위를 감히 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
아마도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 웬디 셔먼의 망언이 김기종 씨가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을 것이다. 최근 웬디 셔먼은 한국과 중국 지도자들이 과거사와 영토 문제에서 “값싼 박수”를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며 사실상 일본의 제국주의적 움직임을 두둔했다. 셔먼은 독도나 과거사 문제가 한·미·일 삼각 동맹의 강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불만을 나타낸 것이었다.
물론 개인이 개인을 공격하는 것으로는 정치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전반적인 정치 상황이 나쁘면 국가 탄압의 수위를 높일 명분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이야말로 오늘 일어난 공격 사건의 근본 배경임을 봐야 한다. 실제로, 피습 직후 김기종 씨는 군사훈련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지금 진행중인 한미 합동 군사훈련 키리졸브 훈련을 가리킨 것이다. 키리졸브 훈련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다. 이 훈련은 최장 기간 진행되며 대북 선제 공격 계획 등을 연습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년 이 훈련 기간마다 남북 간에 긴장이 조성되곤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호전적인 군사훈련이 매년 진행되는 것을 우려해 반대해 왔다. 물론 미국과 한국 정부는 그런 우려를 철저히 무시해 왔다.
더구나 주한 미국대사 마크 리퍼트는 오바마 정부 내에서 “한·미·일 삼각 동맹의 설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던 자다. 리퍼트는 2013년 일본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국방부는 아베 신조 총리의 안보 정책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며 아베를 두둔하고, 한·미·일 3자 협력을 강조했다. 그래서 마크 리퍼트의 주한 미국대사 임명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한국에서 적극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탄압 강화 계획 중단하라
벌써부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김기종 씨가 8차례 방북한 사람이라는 등의 얘기를 흘리며, 그를 ‘종북’ 인사라고 매도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를 통해 이번 사건을 ‘종북’ 마녀사냥으로 확대시키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친북 인사라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게다가 그는 진보당 당원도 아니었던 듯하다. 따라서 이 사건을 빌미로 ‘종북’ 마녀사냥에 나서려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으며, 진보·좌파 운동가들은 이런 시도를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피습 사건을 계기로 진보·좌파 단체 일반에 대한 내사를 강화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진보·좌파 단체들이 이런 시도를 경계하는 것은 지당하다. 하지만 (가령 정의당이나 노동당처럼) 김기종 씨의 행동을 두고 “엄중 처벌”을 촉구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 사건의 근본적 배경인 한·미·일 삼각 동맹의 강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부터 높여야 한다.
마르크스·레닌·트로츠키 등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개별적인 폭력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행동이 진정한 대안이라고 주장해 왔다. 구체적 맥락으로 옮겨 말하면, 진보·좌파 운동가들은 4·24 노동자 총파업이 효과적으로 일어나도록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미국 제국주의에 기꺼이 협력해 오늘의 사건과 같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데 일조하는 박근혜 정부에 진정한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