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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이대학보〉의 세월호 운동 비난 칼럼 논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운동은 정치적이면 안 되는가

5월 4일에 발간된 〈이대학보〉의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마음만큼 중요한 것’ 기사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기사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에 대한 왜곡과 비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이 폭력시위로 변질됐고, 그 이유는 “좌파·친북 단체”가 “유가족을 앞세워” “‘추모’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혹은 이념적 목표를 달성”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중동 사설 같은 왜곡 기사가 대학 신문에 버젓이 실린 것이다. 이 기사는 발간되자마자 이화여대 학생들의 공분을 샀다. 〈이대학보〉와 해당 기사를 쓴 박진아 기자는 “하루 새 이대학보를 향해 쏟아진 많은 의견”에 놀라 황급히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이 사과문조차 불충분하고 문제적이다. 박진아 기자는 “제 칼럼은 여러분들이 오해하시는 것처럼 세월호 집회를 폭력시위로 규정하거나 유가족 분들과 집회 자체를 비난하고자 하는 목적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기사 원문에는 “세월호 참사 추모제가 폭력시위로 변질된 것일까 ... 1년 전 아이를 잃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때의 부모들이 맞을까 ... 아니나 다를까. 폭력시위는 추모제에 참여한 좌파 친북 단체가 세월호 유가족을 앞세워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진격을 시도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버젓이 적혀 있다.

또한 박진아 기자는 사과문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과 경솔한 단어 사용이 오해의 소지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세월호 집회를 자신들의 개인적인 목적에 이용하는 일부 단체로 인해, 유가족 분들의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까지 빛바래고 힘을 잃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며 자신의 원래 입장에서 조금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박진아 기자는 수많은 이화여대 학생들이 진정으로 분노한 지점에 대해선 전혀 철회하지 않았다. 박진아 기자의 사과문은 지나가는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당장의 비판을 비껴나가려는 얕은 수로 보인다. 유가족과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을 모욕한 박진아 기자는 〈이대학보〉 부장급 기자라는 자격 없다.

외부세력?

이 기자 개인의 비양심도 분노스럽지만, 이번 〈이대학보〉 칼럼 논란은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을 둘러싼 중요한 논쟁거리를 던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은 더 정치적으로 돼선 안 되는가? 정치 단체는 유가족들을 이용해 ‘음흉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가?

언제나 국가와 우파들은 자신들을 겨냥한 투쟁의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넓어지는 것을 “불순 세력의 개입”, “외부 세력에 의한 정치적 변질”이라고 비난해 왔다. 그렇게 따지면 세월호 참사에 슬픔과 분노를 느껴 집회에 참가하고 거리 행진에 참여한 수많은 이화여대 학생들도 ‘외부세력’이다.

박진아 기자는 시민단체들이 “일반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도 구분하기 힘들게”하고 있다고 말한다. 냉정한 판단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집회 참가자들을 주체적 판단도 못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이 운동의 중심에는 유가족들이 있다. 운동이 지속돼 올 수 있었던 것도 유가족들이 단호하게 진실규명을 요구한 덕분이다. 박진아 기자의 말과 달리 유가족들은 지금껏 앞장서서 정부에게 특별법 제정, 성역 없는 수사 등을 요구해 왔다. 그와 동시에 광범한 ‘외부 세력’의 연대가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다.

또한 박근혜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왜 문제일까? 재난·참사 대처의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는 구조를 방기한 책임이 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을 앞장서서 계속 방해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유가족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외부세력’이라 딱지 붙이면서 동시에 유가족에 대한 탄압도 계속했다. 박근혜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보장한 특별법이 통과될 수 없도록 방해했고, 세월호 참사 1주기 직전에 ‘쓰레기 시행령’을 발표해 특별조사위원회의 권한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려 했다. 유가족들이 투쟁에 나서자 배·보상 액수를 슬쩍 언론에 흘려서 유가족들이 돈 때문에 싸우는 비정한 부모처럼 보이게 하려 했던 것도 박근혜 정부였다. 시행령을 폐기하라는 유가족과 집회 참가자에게 물대포를 뿌린 경찰 폭력도 박근혜 정부의 문제다. 박근혜 정부는 5월 6일 국무회의에서 ‘쓰레기 시행령’을 통과시켜 그 자신이 진실 은폐의 주범임을 다시금 입증하고 있다.

이런 정부를 상대로 한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운동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오히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선 박근혜 정부와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정부와 우파가 ‘순수한 추모’를 운운하며 운동이 정부에 책임을 묻는 걸 비난하는 것은 이들의 진실 은폐 시도에 ‘가만히 있으라’는 것밖에 안 된다. 운동이 더 정치적으로 발전해 박근혜 정부에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일 때만 우리는 세월호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 이 글은 노동자연대 이화여대 모임이 5월 7일에 발표한 성명을 일부 손봐서 기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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