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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과 혁명적 정당

이 글은 필자의 맑시즘2015 강연 내용이었다.

레닌은 전쟁, 불평등, 차별과 억압 등이 자본주의에서 대폭 증폭된다는 것을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통해 잘 알았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폐지할 능력이 있는 사회세력이 노동계급이라는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도 잘 알았다.

또한 레닌은 스스로 해방될 능력이 노동계급에게 있다는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도 받아들였다.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을 사회주의로 정의하는 마르크스의 입장을 충실히 따랐던 것이다.

혁명적 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레닌의 주장이 집중적으로 개진된 건 1901년 씌어져 1902년 출판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책이었다. 이 책처럼 사방에서 비난을 받은 책은 아마 세상에 별로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아나키스트와 자율주의자, 교수들, 언론인들 할 것 없이 다들 이 책이 스탈린주의 독재의 참상을 예비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레닌이 노동자들의 사회주의적 잠재력을 깔보고 특히, 중간계급 지식인에 속하는 프로 혁명가들만으로 이뤄진 극도로 중앙집권적인 음모 조직의 필요성을 주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레닌이 이끈 이런 엘리트주의적 음모가들이 1917년 10월 쿠데타를 일으켜 러시아 혁명 운동을 납치하고 상명하달식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민주집중제

특히, 레닌과 이들 프로 음모가들은 ‘민주집중제’라는 용어로 자신들의 권위주의적 실천을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집중제’라는 개념과 용어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언급되지도 않거니와, 레닌에게서 비롯한 것도 아니었다. 민주집중제라는 용어는 1905년 11월 멘셰비키가 먼저 사용했다. 곧이어 핀란드 도시 탐페레의 볼셰비키 조직이 이 용어를 사용했다. 레닌 자신은 1906-07년에야 비로소 이 용어를 사용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소속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각급 지도부를 선거로 선출한다는 뜻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즉, 용어의 두 부분 가운데 ‘민주주의’ 부분이 강조됐던 것이다.

레닌 자신이 이 용어를 다시 사용한 건 1920-21년이다. 그때는 혹독한 시련기인 내전 기간이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당의 일사불란함이 절대적으로 강조되던 때였다. 그래서 레닌이 이 말을 썼을 때 그의 강조점은 ‘집중’, 즉 중앙으로의 권한 집중에 있었다.

그런데 딱 한 번 1915년에 레닌이 민주집중제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 미국의 어느 사회주의 단체가 독일 사회민주당의 민주집중제를 비판한 것에 대해 레닌은 그 당의 중앙 집중이 전혀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강점이라면서, 진정한 문제는 당에서 기회주의자들이 우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레닌은 중앙집중을 대중에 대한 당의 지도를 뜻하는 말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것은 중앙집중에 대한 외향적이고 가장 좋은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중앙)집중’을 내향적으로 이해해, 중앙 지도부에 대한 회원들의 복종을 의미하는 걸로 이해하지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대중에 대한 당의 지도라는 외향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자체에서 레닌은 민주집중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은 대신 중앙위원회의 구실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딱 한 번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은 중앙위원회가 전능하다는 생각을 레닌이 거부하는 부분이었다.

스탈린주의적 왜곡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쓰던 때는 아직 레닌이 사용한 적도 없는 개념까지 들먹이며 레닌을 곡해한 것은 언제부터 시작됐고, 왜 그랬을까?

1924-25년이었다. 1923년 10월 독일 혁명이 패배하고 1924년 1월 레닌이 사망한 상황에서 스탈린은 국제 사회주의 포기 선언을 했다. 대신에 그는 ‘일국사회주의’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트로츠키가 최대 정적으로 떠올랐다. 트로츠키가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인 국제사회주의와 국제 혁명의 불굴의 옹호자요 노동계급의 선진적 부분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지노비에프를 끌어들여, 트로츠키가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분열 때 멘셰비키에 가담했음을 상기시키면서, 당시에 트로츠키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사상을 민주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했던 사실을 상세히 거론했다. 동시에, 스탈린은 《무엇을 할 것인가?》 자체를 권위주의적으로 해석했다. 자신의 당 통제권 강화에 이용할 목적이었다.

오래지 않아 각국의 공산당도 이런 해석을 공유했다. 이제 세계 노동자들이 받은 레닌주의에 대한 인상은 전혀 매력 없는 것이 됐고 서구 학자들과 언론인들은 이것이 레닌주의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라며 레닌주의를 비난했다.

하지만 레닌이 이끌었던 당이 그렇게 불량하고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인 조직이었다면 그런 조직이 어떻게 있으나마나한 종파의 처지에서 벗어나 러시아 좌파에서 주도권을 잡고, 또한 전제 군주정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이끌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볼셰비키는 그런 도전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또한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5년 동안 유럽 심장부에서 반자본주의적 도전을 이끈 신뢰받는 대중 정당이 건설되는 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는 레닌은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적 잠재력을 온전히 믿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출판 3년 전인 1899년 레닌은 러시아 노동자들이 지난 몇 년 간의 투쟁을 통해 혁명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다고 썼다.

또, 그다음 해인 1900년 국제노동절에 하르코프에서 일어난 총파업과 그에 뒤이은 며칠 간의 항의 시위에 대해 쓰면서 레닌은 러시아 노동자들이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만 관심 있지, 차르 전제를 전복하는 혁명적 정치투쟁은 언감생심이라는 경제주의자들의 주장을 “꾸며낸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 자체에서 레닌은 노동자들이 차르 전제에 맞서 정치적 자유를 쟁취할 능력이 있음을 전제로 사회주의자들이 그 투쟁을 이끌어야 함을 강조했다.

또, 같은 책에서 레닌은 노동자가 아닌 다른 사회계급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가령) 러시아 정교회 신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천대를 받는다면 노동자들이 싸울 것이라는 걸 전제로 사회주의자가 그 투쟁을 이끌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래서 레닌은 유대인 등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차르 체제의 차별을 반대했고, 대지주에 맞선 농민의 투쟁을 지지했다.

그는 이러한, 정의를 위한 투쟁을 민주주의 투쟁이라고 불렀다. 물론 제정 반대 투쟁이 민주주의 투쟁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레닌은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적 잠재력을 불신하기는커녕 완전히 신뢰하고 다른 논의의 전제로 삼았다. 그는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의 행위다”라는 칼 마르크스의 근본적 원칙에 충실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노동자 의식의 불균등한 발전

노동계급이 다른 엘리트 집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스스로만 해방될 수 있는 것이라면 노동계급의 자체적 해방은, 즉 사회주의 정치는 처음엔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투쟁으로부터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동자 투쟁을 사용자들과 그들의 국가 기관들은 마냥 방관하거나 묵인하지 않는다. 자기네의 이익을 별로 침해하지 않겠다 싶을 때는 때로 관용하기도 하지만 자기네의 이익을 침해하겠다 싶으면 탄압을 가한다. 물론 탄압 전후로 비난과 비방이 동반한다.

이렇게 사용자들과 그들의 국가 기관들과 언론 매체들이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비난하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먼저,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다. 여기에다 아예 저항 자체를 안 하는 노동자들도 더한다면 노동자들은 흔히 순응파와 강경 저항파, 온건 저항파로 나뒤게 되는데, 이 분류가 고정 불변의 것은 아니다. 순응파였다가 강경 저항파로 바뀌기도 하고, 그 반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누적되다 보면 노동계급은 단련되고 정치적으로 각성한 소수 부분과 사기가 꺾이고 의기소침한 소수 부분, 그리고 그 중간에서 동요하는 대부분으로 크게 나뉘게 된다.

선진 부분이 바로 잠재적이거나 현재적인 사회주의 리더들이다. 파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책임 있게 파업을 조직하기까지 하는 사람, 직장 동료들의 성차별적 언행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 이주 노동자들을 탓하는 직장 동료들에게 이주 노동자들이 경제에 도움이 되고 고마운 일을 해 주는 사람이라고 옹호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누구나 리더로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레닌은 노동자들 가운데 이런 선진 부분이, 리더들이 별도로 조직돼야 그 리더십에 힘입어 노동자들이 국가와 사용자들의 탄압과 회유, 중상·비방 공세에 잘 대처할 수 있다는 걸 조리 있게 설명한 것이다. 잘 조직된 선진 부분이 그렇지 못한 상대적 후진 부분을 설득하고 격려해, 노동자 단결과 연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간단한 원리였다.

그러므로 레닌이 한평생 투신해 건설했던 정당은 사회주의적 노동자들의 정당이었다. 그냥 노동자 정당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노동자의 정당이었다.

지도부가 결국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을, 사회주의를 부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계급투쟁에서 등장한 이런 일상적인 리더들이 성공을 거두더라도 반드시 새로운 엘리트가 되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옳다면 사회주의는 공상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에게는 자체적으로 해방될 잠재력이 있고, 자력해방에는 노동자 전위의 별도 조직화가 불필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필요하다. 앞서 설명했듯이, 노동자들의 의식이 균등하지 않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자력해방 잠재력을 믿는 사람들이 따로 조직돼야 한다. 즉, 혁명가들과 거의 혁명가들만의 정당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설명된 레닌의 당 개념을 오늘날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보편적이다. 물론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혀 적용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해, 《무엇을 할 것인가?》의 당 개념에서 일반적인 것과 특수한 것(당시 상황에)을 구별해서 분리해 내야 한다.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 일반적인 것은 무엇인가? 첫째 사용자와 자본주의 국가가 중앙집권적이므로 노동자 조직도 중앙집권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도부가 있어야 한다. 단, 지배자들의 중앙집권은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것인 데 반해 노동자 조직의 중앙집권은 민주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유롭게 또 공개적으로 토론과 논쟁을 한 것을 바탕으로 다들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비밀리에 파당을 결성하며 논쟁을 준비하고 논적들을 중상·비방을 하는 것은 조직의 결속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민주적 권한 집중(소위 민주집중제)을 오히려 파괴하는 것이다. 레닌은 민주집중제에 관한 일천 마디, 일만 마디의 말보다 동지들 간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당 개념에서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 두번째 일반적 요소는 노동계급 의식의 불균등한 발전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앞서 나아가는 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면서도 토론과 논쟁을 통해 그들을 좀 더 일관된 사회주의 정치 쪽으로 안내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당 개념의 셋째 일반적 요소는,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일지라도 부당한 차별을 받는다면 정의를 위해 분연히 그들을 지키려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차별과 천대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에 관여하기를 삼간다면 기존 시스템 내에서 활동하는 데 만족하는 경쟁 정치세력에 그 영역을 내주는 것이고 차별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의 해방은 결국 자본주의가 폐지돼야 가능하다는 점을 그들에게 설득할 필요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즉 노동계급 자력해방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고자 하고 막연하나마 자본주의에 반감이 있는 사람들은 가입 대상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혈기 왕성하고 급진적이어서, 소속 단체가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또 예리한 토론과 논쟁을 주도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당 개념으로부터 2015년 한국에 사는 우리가 이끌어 낼 수 없는 당시 러시아적 특수 요소는 사회주의적 활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만을 조직한다는 생각이다. 비록 보안경찰, 특히 국정원이 활개치는 나라이지만 노동계급 운동 속에서 공공연한 조직을 하는 사람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는 대중 정당을 지향해야 한다.

비록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충분히 개진되진 않았지만 그 전이나 그 후의 레닌 당 개념에서 추출해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 요소가 있다. 레닌 당 개념의 넷째 일반적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당 건설 방법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 불변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계급투쟁의 전망이 달라짐에 따라 당의 전술들도 얼마큼 달라져야 한다.

가령 레닌은 1901-02년 러시아 노동자 운동 내의 경제주의 경향과 쟁투를 벌이던 때와 1903-04년 분열한 멘셰비키와 쟁투를 벌이던 때는 꽉 짜인 직업 혁명가들의 조직을 옹호했다.

반면 1905년 혁명이 일어나자 곧 레닌은 당의 문호를 개방해 새로 급진화하는 젊은 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1905년 혁명이 명백히 퇴조하던 1907년 이후에는 당 간부들을 외부의 적대적인 이데올로기적 공세에서 방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그럼에도 1912년까지 볼셰비키는 멘셰비키와 같은 정당 안에서 활동했다. 아직 멘셰비키가 주위 세계로부터 오는 압력을 견뎌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12부터 1914년까지는 매우 높은 수위의 노동계급 투쟁이 전개됐다. 1905년 혁명 패배 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사기가 저하돼 온 멘셰비키는 이런 상황에 목말라 있기보다는 불안해 했다.

반면 볼셰비키는 공세적인 전술들로 전환했다. 합법 일간신문 〈프라우다〉를 낸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런 커다란 약진은 1914년 제1차세계대전 개전과 러시아의 참전으로 중단됐다. 그래서 또 그에 맞게 방어 기조로 전술들을 운용해야 했다.

하지만 1917년 2월 혁명이 일어나자 다시금 전술들을 변경했다. 특히, 4월에 임시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철회하고 노동자 평의회(또한 사병 평의회) 단독 지지로 전술들을 바꿔 당은 사실상 새로운 전략을 채택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혁명가들도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주어진 조건들을 잘 살펴보면서 그 조건에 맞는 전술들을 구사하고, 그것에 기초해서 조직해야 할 것이다.

추천 도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레닌 외 지음 / 정진희 엮음 / 책갈피

272쪽, 13,000원

러시아 혁명과 레닌의 사상

최일붕 지음 / 책갈피

223쪽, 9,500원

마르크스주의와 정당

존 몰리뉴 지음 / 최일붕, 이수현 공역 / 책갈피

264쪽,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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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주의를 옹호하며

존 몰리뉴 지음, 《마르크스21》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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