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으로 경제가 살아날까?:
기업 퍼 주기 정책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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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근혜 정부가 12조 원가량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발표했다. 여기에 공공 기금 변경을 통한 지출 확대와 공기업 투자 확대, 금융 지원 확대 등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22조 원에 이르는 재정 보강 정책을 쓸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며 공무원연금 삭감 등으로 노동자들에게 내핍을 강요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재정 적자를 감수하며 추경을 발표한 것은 침체하는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메르스 때문에 살아나던 경제가 위축되고 있다고 했지만, 경제는 그전부터 침체하고 있었다.
메르스 사태가 터진 5월 전체 산업생산은 4월보다 0.6퍼센트 줄어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설비투자도 3개월 연속 줄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3.4퍼센트로 2009년 5월 이후 7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의 경제 위축은 수출 감소 때문이다. 올해 들어 6개월 연속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감소해 올해 상반기 수출액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5퍼센트나 줄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1~4월 세계 70개국의 수입시장 규모가 13.4퍼센트 줄었다고 밝혔는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세계 무역 규모가 줄고 있다. 게다가 그리스 디폴트 위기와 미국의 금리인상이 미칠 수 있는 악영향에 대한 우려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번 추경이 “메르스 극복과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기업 퍼 주기 정책으로 가득 차 있다.
정부는 메르스 대응에 2조 5천억 원을 배정했지만 이 중 ‘감염병 예방 관리와 환자 치료비 지원’에 사용되는 돈은 1천억 원에 불과하다. 그보다 훨씬 많은 6천억 원은 메르스 사태를 통해 손실을 입은 병원들의 수익을 보전해 주는 데 사용된다. 게다가 관광업체와 수출업체 지원에는 무려 1조 6천억 원이 배정됐고, 수출 기업에 금융 지원을 하는 데 4조 5천억 원이 배정됐다.
또 도로 확장 등 노골적으로 건설 기업들에 퍼 주기 위한 사회간접자본 투자에도 1조 3천억 원이 책정됐다.
일자리 추경?
정부는 이번 추경이 일자리 추경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가 청년 일자리 확충을 위해 내놓은 정책은 청년 인턴제 확대,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지원(5천7백 명 → 1만 2천7백 명) 등 한시적이고 열악한 비정규직 일자리일 뿐이다.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으로 취업하라는 중소기업 취업 알선 프로젝트(노후산단 희망 프로젝트) 등은 양질의 일자리를 바라는 청년들의 한숨만 늘릴 뿐이다.
게다가 청년 일자리 확충이라는 이름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정책도 내놨다. 청년과 고령 노동자들을 이간질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는 추경을 통해 기업에 막대한 재정을 퍼 주고, 노동시장 구조조정 정책을 뒷받침하려 한다.
그러나 기업들에 돈을 쏟아붓는다고 경제가 살아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미 2013년에 17조 원에 이르는 추경을 편성했지만 일시적인 부양에 그쳤다.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기업 퍼 주기 정책은 양극화 심화로만 이어지고 있다.
고장 난 시장 경제를 살리려고 이런 막대한 돈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직접 사용한다면 훨씬 더 큰 효과를 낼 것이다.
만약 이번에 쓰는 돈 22조 원을 기초연금을 인상하는 데 사용한다면 1년 동안 기초연금을 지금의 3배로 지급할 수 있다. 이 돈을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4백만 명에게 직접 준다면 1인 당 1년에 5백50만 원의 임금을 인상할 수 있고, 연봉 3천만 원인 노동자를 70만 명 이상 고용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로 공무원연금을 삭감하고,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강요하며 노동자들에게 내핍을 강요하고 있다. 또 법인세는 늘리길 거부하면서 담뱃세 인상, 소득세 인상 등을 통해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증세를 했다.
노동자들을 쥐어짜 기업들의 이윤을 보전해 주는 정부의 정책은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