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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적인 대입제도개선안

지난 10월 28일 교육부는 ‘2008년도 대입제도 개선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전교조와 진보적 교육단체들이 계속해서 반대 의견을 밝혔지만, 결국 지난 8월 26일에 시안으로 발표했던 안과 거의 같은 방안이 확정됐다.
이 대입개선안은 수능시험을 점수제에서 영역별 9등급제로 바꾸고 내신도 과목별 점수와 등급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바꿔서, 수능시험의 비중을 줄이고 내신 비중을 높이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대학의 자율권을 높여 선발 방식을 다양화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번 대입개선안으로 학생들 사이에 경쟁이 줄어들고, 내신 비중을 높임으로써 고교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는 것처럼 치장한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21세기형 [창의력과 자기계발 능력을 갖춘] 우수 인재 발굴․육성에 기여”하고, 각 대학들이 “선발 경쟁에서 입학 후 교육 경쟁으로 전환”할 것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의 환상을 키우고 있다.

환상

우파들도 수능시험과 내신을 등급제로 바꾸는 것은 경쟁을 없애는 것인 양 호들갑을 떨었다. “수능 9등급제는 전국석차 상위 2만 4천등[상위 4퍼센트]까지 1등급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 어지간한 대학들은 모두 1등급으로 평준화된 점수를 받은 학생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사실상 변형된 대학평준화가 시행되는 셈이다.”(〈조선일보〉 10월 29일치 사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교육부가 대입개선안에서 밝히고 있는 수능시험 등급제는 수능시험 점수 총점으로 등급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수능시험의 언어․수리․외국어영역 등을 영역별로 등급을 매긴다. 한 학생이 언어영역에서 1등급을 받더라도 수리영역에서는 1등급을 받으라는 법이 없다. 따라서 모든 영역에서 1등급을 받는 학생은 훨씬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6월에 시행한 모의평가 결과를 분석해 보면, 전체 응시자 54만 3천7백17명 중 0.91퍼센트인 4천9백63명만이 언어․수리․외국어영역 모두에서 1등급을 받았다. 실제 수능시험에 60만 명이 응시한다고 하면 고작 5천4백여 명만이 3개 영역 모두에서 1등급을 받는 것이다.
게다가 내신도 과목별로 등급을 매기기 때문에 학생들의 서열은 더욱 세세하게 결정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부는 “5등급화는 같은 등급 내의 학생들이 지나치게 많아져 대입전형시 선발 자료 활용이 어렵”다며 진보적 교육단체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그뿐 아니라, 1등급을 7퍼센트까지로 할 것을 요구한 열린우리당의 안조차도 “변별력이 떨어지면 본고사 도입을 막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결국 교육부는 경쟁을 줄이는 것처럼 선전하면서도 실제로는 수능시험의 변별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 왔던 것이다.
게다가 우파들은 수능시험과 내신에서 등급제를 도입하는 것을 빌미로 “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도 등의 도입 여부를 대학에 맡겨야 한다”며 대학의 자율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아닌게아니라 교육부의 방안에도 대학의 “자율성 제고”가 포함돼 있다. 교육부는 수시모집에서 고교등급제를 시행한 대학들의 실태를 조사하라는 요구에도 “대학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며 굼뜨게 반응했고 결국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게다가 변형된 본고사라고 공공연히 알려진 ‘심층면접’이나 ‘논술’에 대한 조사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말로는 ‘3불정책(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 불허)’을 고수하겠다고 말하면서도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를 시행한 대학들에 대해 아무런 후속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대학선발권 강화’를 골자로 한 대입개선안을 발표한 것이다. 말로는 막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의 껍데기뿐인 개혁은 교육 정책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들은 대중의 불만을 고려해 말로는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절감”을 언급한다. 그러나 결국 우파들의 압력에 밀려 대학서열체제를 유지하는 정책을 계속 취한다.

경쟁

이번 대입 개선방안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들의 불만을 다독이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대학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방안일 뿐이다. 따라서 이번 대입개선안이 교육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학생들이 대학입시에 매달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학벌, 즉 좋은 대학의 졸업장이다. 결국 대학입시를 이리저리 바꾸는 ‘입시제도 개선안’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쟁의 방법을 바꾼다고 경쟁이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의 무한 입시경쟁을 없애려면 대학서열체제를 없애야만 한다. 역대 정부가 대입제도를 바꾸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모두 실패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노동당과 ‘학벌없는사회’ 등의 진보적 교육단체들이 요구하는 국공립대 평준화와 졸업자격고사제 도입을 지지하며 싸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대학들의 평준화를 이뤄야한다.
물론 우파들은 서울대를 폐지하고 국공립대를 평준화하라는 요구조차도 완강히 거부할 것이다. 거대한 대중적 투쟁을 통해야만 국공립대 평준화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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