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노동자,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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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한국을 휩쓸었다. 그런데 주류 언론들의 원인 진단 중에는 잘못된 것들이 많다. 이 글에서는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을 살펴보고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노무현 정부의 사스 대응과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응을 비교하며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잘 대응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결과로 보면 사스 방역은 분명 성공했고 메르스 방역은 실패했다. 그러나 사스 유행 당시 한국 정부의 대응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때는 음압병상도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었다. 즉, 일단 유행이 시작되면 대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때문이었는지 사스 ‘유입 차단’에 거의 모든 인력과 자원이 투입됐다. 공항을 틀어막은 것이다. 대비해 놓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성공에는 운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후 감염병 유입을 대비한 인프라 구축이나 국가 보건 정책에서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단적인 예로 노무현 정부는 공공병원 비율을 30퍼센트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는데, 이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정부는 오히려 의료 민영화 추진을 위해 삼성과 공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메르스 확산의 주 원인으로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언급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할까?
가족들이 환자 옆에서 먹고 자는 것은 ‘강요된 문화’다. 한국의 간호 인력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실제 국내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입원 환자는 15∼20명으로, 일본의 7명이나 미국의 5명보다 3배 이상 많다. 특히 감염성 질환처럼 간호사가 매 시간 돌봐야 하는 ‘급성기 병상’ 1개당 간호사 수는 0.28명에 불과해 OECD 평균(1.13명)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병원노동자들은 식사나 용변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할 만큼의 노동강도에 시달린다. 건강은커녕 감염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결국 병원 노동력의 부족분은 가족들이 채워야 한다. 약과 식사를 시간 맞춰 먹이고 대소변을 챙기고 심지어 비말감염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된 석션(환자의 기도에 튜브를 넣어 가래를 빼는 작업)까지 한다. 이번에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 대부분이 감염자의 가족이거나 병원노동자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이 병원노동자들에게 보호장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간접고용이라는 이유로 관리대상자에서조차 제외했으니 이는 환자 가족과 노동자들을 메르스 배지(실험을 목적으로 미생물을 대량 증식시키는 기구나 장소)로 몰아넣은 것과 매한가지다. 즉, 한국에서 메르스 확산은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문제다.
자가격리 상태에서 돌아다니거나 감염 사실을 숨기는 등 한국인의 시민의식이 낮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일부 몰지각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의 방역 지침에서 이탈한 사람들의 얘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노동조건 문제가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중국에서 격리된 10번 확진자의 부인은 “감염 얘기를 회사에 안 한 건 아니었거든요. 남편은 회사가 굉장히 바쁘고, 밤샘 일 ... 또 출장을 가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하고 말했다. 즉, 그는 감염 가능성을 회사에 알렸음에도 어쩔 수 없이 출장을 가야 했던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이송요원이었던 137번 확진자는 스스로 증상을 느꼈음에도 9일간 이를 말하지 않았다. 그는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밀접접촉을 했다. 메르스 감염 위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사람이 이런 위험천만한 행동을 한 것은 그가 고용이 불안정한 간접고용 노동자였다는 사실이 큰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병원 측이 메르스 감염을 최대한 은폐하려 해 온 상황에서 이 노동자의 반응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된 93번 환자는 간병인이었다. 그는 메르스가 의심되니 감염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검사를 거부했고, 자가격리조치에서 이탈했다. 간병인 중개업체 관계자의 말이 그 이유를 말해 준다. “간병인이 박봉에 일이 힘든 직종이라 감염 문제를 알아도 관심을 두기 어려운 경우가 잦다.”
이들에게 감염은 실직을 의미한다. 자가격리자들을 관리하는 한 보건소 직원은 인터뷰에서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간병인이나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산다. 제발 나가게 해 달라”고 호소하면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상병수당 제도(질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을 보전해 주는 제도)가 없는 나라다. ‘시민의식’이 아니라 메르스보다 무서운 한국의 노동조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감염병의 유행은 자연 현상이니 불가피한 것 아닌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인류가 탄생하기 전에도 존재했다. 즉,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더라도 감염병은 발생한다. 그러나 신종감염병의 출현·대응과 자본주의 체제는 분명히 연관이 있다. 메르스도 그렇지만 사스, 에볼라 등 주요 신종감염병의 1차 숙주로 추정되는 동물은 박쥐다. 많은 바이러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박쥐와 인간이 빈번하게 접촉하게 되는 문제의 근원에는 무분별한 삼림벌채와 제3세계 빈곤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IMF와 같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개입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감염병 대응에도 아주 무능하다. 일례로, 에볼라 백신 개발에 직접 참여했던 토머스 게이스버트 교수는 “큰 제약사로서는 어디에다가 약을 팔 수 있었겠냐”며 에볼라 백신이 거의 완성됐음에도 제약회사의 이윤 논리 때문에 개발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일각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엘리슨 폴록 교수는 빌게이츠와 같은 거부들이 기부하는 자금은 “결국 머크(MERK)와 같은 거대 제약회사에게 떨어지고, 그 개발 분야도 C형 간염 등 서양인들에게 중요한, 한 마디로 돈벌이가 되는 질병의 치료약이나 백신 개발에 국한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돈 없는 제3세계 빈곤국에서 발생하는 감염병에 대해서는 무방비상태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감염병은 일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전파력이 큰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초국적인 협력과 자원의 집중이 즉각적으로 이행돼야 한다. 에볼라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듯이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기구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데 사실 에볼라나 메르스는 아주 미약한 경고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