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국민투표에서 긴축안이 부결된 직후 현지에서 보내온 소식: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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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실시된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구제금융안이 부결됐다. “박빙”일 것이라던 주류 언론의 희망 섞인 관측과 달리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민투표 결과는 기층 노동자의 정서를 아는 것이 중요함을 새삼 보여 준다. 현지 시간으로 7월 5일 밤, 국민투표에서 구제금융안이 부결될 것이 사실상 확정되자 수많은 그리스인들이 거리로 나와 축하했다. 영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기자 데이브 수얼이 아테네 현지에서 그리스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 ] 안의 말은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첨가한 것이다.
오늘[7월 5일]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자 그리스 전국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이 제안한 긴축안이 압도적 반대로 부결됐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서 학생인 다나이는 이렇게 말했다. “반대가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크게 이길 줄은 몰랐어요. 국민투표 결과를 보면,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으며 더 좋은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타그마 광장에 사람이 가득 찼고, 아테네 곳곳에서 축하 행진이 벌어졌다.
연금 생활자인 카테리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긴축에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누구에게도 선출되지 않은 금융기관들의 독재를 끝내고 서민을 위한 새 정치로 나아가야 합니다. 국민투표는 그 시작입니다.”
카테리나 뒤에 있는 유명한 분수대에는 붉은 등이 켜졌다. 집회에 설치된 전광판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보낸 연대 메시지가 나왔다.
디미트리는 선거 덕분에 “상황이 나아지고 숨 쉴 틈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자리가 너무 없어서 취직하는 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저는 최근에는 돈도 안 받고 ‘자원봉사로’ 일했습니다. 그러면 저를 고용해 줄까 싶어서요.”
가난한 지역에서 반대표가 많이 나온 것을 두고 TV에 나오는 ‘전문가’들조차 “계급 투표”라는 말을 썼다.
아테네 서부의 공업 지구에 사는 노동자들에게 그런 투표 결과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 한 투표소 앞에서 인쇄 노동자인 기오르고스는 시리자를 지지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에서는 반대가 많이 나올 것입니다. 강가에 있던 공장이 문을 닫아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유럽은 바뀌어야 합니다.”
자신을 워킹맘이라고 소개한 켈리는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반대죠! 그리스가 유로존을 나가게 되더라도 괜찮아요. 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그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나가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은 모두 그들에게 말합니다. 꺼지라고요.
“이제 상황이 나아질 거예요. 파업과 시위도 더 많아질 거예요. 제 말 믿으셔도 돼요.”
반대표 비율은 청년들 사이에서 가장 높았다. 올해 만 19세가 돼 투표권이 생긴 청년들은 1월 총선에서는 투표에 참가하지 못했다. 전임 우파 정부가 유권자 명부를 갱신할 시간이 없다고 해서였다. 오늘 그 청년들은 한을 풀었다.
네펠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반에 굶는 친구들이 있어요. 부모님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래요. 제 친구들 몇몇은 일자리 찾겠다고 영국으로 갔어요. 저는 여기에 있고 싶어요. 구제금융안이 가결되면 그럴 수가 없어요.”
‘찬성’ 운동 측은 노인층에 공포감을 심어 주는 전략을 취했는데, 큰 효과는 없었다. 현금 인출 제한으로 말미암아 소동이 벌어졌는데도 말이다.
연금 생활자인 디마쿠는 이렇게 말했다. “국제통화기금과 유럽연합은 임금, 연금, 복지, 공공서비스 등 모든 것을 삭감했습니다. 그래서 일자리를 잃은 가족들을 부양하기가 힘들어요.
“우선 청년들이 취직하기가 힘듭니다.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 무기 거래상 같은 부자들 빼고 모두가 살기 힘듭니다.”
디마쿠의 친구가 지나가자 한 사람이 이렇게 인사했다. “좋은 반대 아침.” 반대라는 뜻의 그리스어 낱말 ‘오히’(OXI)는 이제 국제 공용어가 됐다.
지난 며칠 동안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반대표를 던지지 말라고 협박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찬성이 더 많이 나왔다면, 그것은 1월 총선에서 좌파를 선택한 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들의 복수가 됐을 것이다. [찬성이 더 많이 나오면] 그리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사임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보수정당인 신민당의 안토니스 사마라스와 그 동료들이 TV에 나와 복수하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유럽의 가장 강력한 기관들은 온갖 협박을 해대며 ‘찬성’ 운동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기오르고스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점거 투쟁 같습니다. 저들에게는 거물급 인물들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대중이 있습니다.”
세계 곳곳으로부터 연대도 있었다. 이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시리자 내 좌파 그룹인 ‘레드 네트워크’(Red Network)의 손팻말을 들고 있던 스타브루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연대하는 시위들을 봤습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그들에게 연대를 보낼 것입니다.”
벌써부터 시리자의 지도적 당원들이 방송에 나와, 국민투표 결과 덕분에 긴축안을 둘러싼 협상에서 시리자의 입지가 강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의 경험을 돌아보면, 국민투표에서 긴축안이 부결된 것은 그 이상의 의미도 분명히 있다. 바로 노동자들이 투쟁할 입지도 강해지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