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안전을 위한 현대차 1공장 투쟁:
아쉬운 타협, 그러나 불씨는 남아 있다
〈노동자 연대〉 구독
이 글은 노동자연대 현대-기아차노동자모임이 7월 24일 발행한 리플릿이다.
11일 동안이나 라인을 세우고 안전사고 대책을 촉구했던 현대차 울산 1공장 11라인 투쟁이 지난 15일 밤 아쉽게 합의됐다.
이번 투쟁의 발단은 7월 3일 1공장 11라인 엔진데킹 공정에서 안전사고가 벌어진 것이었다. 사측은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강제로 생산을 재개하려 했다. 1공장 11라인 노동자들은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사측에 맞서 2주일 가까이 굳건히 투쟁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1공장 사업부위원회 대표는 핵심 쟁점이었던 ‘안전사고’ 규정 문제 등에 대한 결정은 뒤로 미룬 채 생산 가동부터 재개하는 합의서에 사인했다.
해당 사고에 관한 몇 가지 개선 조치들은 취해졌지만, 이번 사고를 안전사고로 규정할 것인지 여부는 향후 지부 집행부와 사측 간의 논의 쟁점으로 남겨졌다. 또 라인 중단 기간의 무노동무임금 적용과 고소고발 문제에선 “최소화 한다”는 막연한 합의만 나와 있는 상태다.
오랫동안 투쟁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은 합의에 대한 실망감과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안전사고 규정을 얻으려고 2주나 싸웠는데 허탈하다”, “앞으로 라인 끊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 “임금이 얼마나 깎일지, 대의원들이 얼마나 고소고발에 시달리게 될지 걱정이다.”
왜 1공장 투쟁이 중요했는가
노동자들에게 안전사고 규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현대차의 안전사고 처리기준인 ‘작업재개표준서’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생산을 중단하고 대책 협의와 회의록 작성을 완료한 뒤에 라인을 가동할 수 있다. 이는 노동자들이 그간 투쟁으로 쟁취한 소중한 권리다.
그런데 사측은 이런 규정을 무력화하려고, 이번 사고를 ‘안전사고’가 아니라 ‘장비고장 사고’라고 우겼다. 작업재개표준서가 2010년 개악돼 ‘장비고장 사고’의 경우에는 대책 마련 없이 라인을 돌릴 수 있도록 한 조항을 꺼내든 것이다.
사측은 이를 악용해 지난 몇 년간 현대차 전주·울산공장, 기아차 화성공장 등 곳곳에서 부상이 크지 않은 사고에 대해 강제 라인 가동을 시도했다.
현대차 1공장 투쟁은 이런 맥락에서 벌어졌다. 따라서 이 투쟁은 단지 한 공장, 한 라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특별히 사측이 수백 억 원의 생산 차질을 감수하면서까지 공격을 관철하려 한 이유다.
사측은 경제 위기와 세계 자동차 산업의 경쟁 격화 속에서 생산성 향상을 강조해 왔다. 올해는 연간 1천만 대 생산을 달성한 폭스바겐·도요타를 따라잡기 위해 “포스트 8백만 대”를 목표로 세웠다. 중국·미국·멕시코 등 해외에선 공장 신설로, 국내에선 일부 시설투자를 제외하곤 기존 설비 내에서 가동률과 노동강도를 높여 최대한 물량을 뽑아내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사고 발생 때마다 라인을 세우는 것은 사측에게 아주 못마땅한 일이었다. 그래서 사측은 이번에도 2주간이나 라인을 세운 1공장 11라인 노동자들의 저항에 쉽게 물러서지 않으려 했다. 사측은 주문이 밀려 있는 4·5 공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던 1공장에서 노조의 기를 꺾어, 전 공장에 본보기로 삼고자 했을 것이다.
투쟁이 지속되던 지난 15일 낮, 고용노동부 장관 이기권이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특별히 현대차 1공장, 전주공장 투쟁을 질타한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1공장에서] 노조 대의원들이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사측의 경영권을 존중하라”, “생산량과 가동률 문제로 연장근로를 거부하는 [전주공장의] 그릇된 합의 관행을 고쳐야 한다.”
이기권의 이 같은 발언은 정부의 ‘단협 시정명령’ 공격이 노동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즉, ‘노조가 공장의 주인 행세하며 생산에 차질을 주는 꼴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노조가 경영에 간섭할 수 없도록 그간의 합의와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
물론 현대차지부의 조직력을 봤을 때 저들이 한꺼번에 많은 걸 무너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야금야금 들어오는 공격에 제동을 걸지 못하면 노동자들의 현장 통제력이 약화될 수 있다.
아쉬운 타협과 연대 회피
그런 점에서 1공장 사업부위원회가 투쟁을 이렇게 마무리한 것은 아쉽다. 금속민투위 소속의 사업부위원회 대표는 임단투에 미칠 파장과 조합원 피해 때문에 결단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전한 일터와 권리 사수를 바랐던 조합원들은 이번 합의에 큰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사측이 임단투를 앞두고 1공장과 전주공장에서 폭력까지 행사하며 라인가동을 시도하는 도발을 했으므로, 우리 쪽이 “임단협 파행”을 우려하며 투쟁을 중단하는 것은 부적절했다. 사측의 무노동무임금, 고소고발 협박 속에서 조합원들의 부담도 커졌지만, 진정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어정쩡한 타협으로 투쟁을 중단하기보다 투쟁과 연대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했다.
더구나 당시는 11라인 노동자들 바로 옆에서 같은 차종을 생산하는 12라인으로 투쟁이 확대되기 시작한 상태였다. 12라인이 특근을 거부했고, 협상이 타결된 바로 다음날인 16일부터는 잔업 거부에도 돌입할 예정이었다.
비록 12라인을 비롯해 1공장 전체로의 연대 확대가 좀더 일찍 조직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12라인 잔업 거부가 시작됐다면 전체 공장으로 연대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실제로 투쟁이 길어지고 판돈이 커지면서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1공장 투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2공장 사업부위원회와 여러 ‘현장 활동가 그룹’들이 지지와 연대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이경훈 집행부가 1공장 투쟁에 연대를 확대하기보다, ‘그들만의 투쟁’으로 방치한 것도 문제다. 이경훈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압력을 받아 이 투쟁을 ‘안전사고’로 규정하고, 사측의 도발로 충돌이 벌어졌던 9일 직접 현장에 내려와 일부 본관 관리자들을 내쫓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도발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던 약속과 달리, 바로 다음날 또다시 사측이 도발을 감행해 대의원 두 명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연대를 조직하지 않았다. 1공장 사업부위원회는 ‘사측의 도발시 전체 대의원 집결’을 호소했지만, 이경훈 집행부는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사실 이경훈 집행부는 처음부터 이번 투쟁을 ‘1공장 사업부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제한했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해 전주위원회가 안전사고 대책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을 때도, 올해 다시 전주에서 투쟁이 재개됐을 때도 거듭 반복됐다.
계속돼야 할 저항
이런 상황에서 투쟁을 전진시키려면 기층의 좌파 활동가들의 구실이 매우 중요했다. 1공장의 무소속 활동가모임 등 좌파적 대의원·활동가들은 11일간의 투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들은 일각에서 그만 투쟁을 접자고 할 때도 안전사고 규정을 따내는 게 중요하다며 올바른 입장에 섰다. 연대를 확대시키자는 주장도 나왔다. 아쉽게도 끝내 이런 입장이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다른 공장의 대의원·활동가들이 집행부가 연대 지침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연대를 건설해 나갔다면 좋았을 것이다.
좌파 활동가들이 투쟁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진시키려면, 기층 조합원들 사이에서 효과적인 전술을 제시하고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비록 지금 어정쩡한 상태에서 생산이 재개됐지만,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안전사고 규정 등은 여전히 협상 쟁점으로 남아 있다. 공교롭게도 1공장 합의 전날 울산공장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장비에 깔려 사망한 사고는 안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보여 줬다.
또, 무노동무임금과 고소고발 “최소화”가 어떻게 적용될지도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무노동무임금과 고소고발의 폭이 커지면 조합원들의 피해를 방어하고 1공장 투쟁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서 투쟁에 나서야 한다.
더구나 1공장 합의 전후로 전주위원회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고 있다. 법원은 지난 16일 강만석 전주위원회 의장을 구속하고 7명의 전주위원회 간부들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전주위원회는 이에 맞서 다시 투쟁을 재개했다. 이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