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됐는가:
나는 왜 노동자연대에 가입했는가
〈노동자 연대〉 구독
※전문은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전문 보기)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공간은 서울이란 도시의 작은 그늘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와 나의 친구들에겐 집, 고향, 가족, 심지어 자기 자신과 친구마저도 탈출해야 할 대상이었다.
재수까지 하며 대학에 들어왔다. 난 공부하고자 하는 욕심이 강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집이 넉넉지 않다 보니 내가 용돈을 벌고 장학금도 확실하게 받아야 했다. 이런저런 멋진 활동을 하는 동기와 선배들을 보면서 난 정신적으로 매우 빈곤해졌다.
그래도 내가 놓지 않는 화두가 있었다. “생존경쟁은 자연의 섭리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그것을 어디까지 극복(혹은 회복)할 수 있는가?”
몇 년 동안 고민을 하다 보니 플로티노스, 마키아벨리, 니체부터 클라우제비츠, 칼 마르크스, 트로츠키까지 읽게 되었다. 결국 “인간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노력한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기후변화 운동을 건설하는 시도를 해봤다. 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노동계급 중심성에 대해 초보적인 신뢰를 갖게 됐다. 그러나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기후변화로 가장 고통 받는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과 정부, NGO에 기대는 방식으로 운동이 조직됐다.
이후 내 꿈을 명확히 하고 역량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학교와 도서관에 박혀 지냈다. 그 즈음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중간고사 공부도 미뤄놓고 세월호 뉴스만 보았다. 희생된 단원고 한세영 학생이 썼다는 글이 내 마음을 울렸다. “다시 태어난다면 부자로 태어나고 싶다.”
생과 사로 분단되어 부모가 자식을 묻어야 하는 비극, 그리고 자식을 살리기 위해 무능하거나 무능을 가장한 대통령에게 무릎 꿇고 싹싹 빌어야 하는 웃지 못할 희극. 세월호 사건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난 뭘 하면서 살아온 것인지’ 되묻게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의 문제들이 다시 한 번 그 물음을 던지게 했다. 우크라이나 한복판에 폭파된 장갑차와 그 위로 수십 미터 높이의 전깃줄에 걸려 있는 한 남자.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백린탄 공격. 페이스북에서 사귄 팔레스타인 친구가 가족도 다 죽고 일자리도 집도 잃었지만 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 때 즈음 헤겔 철학 등 철학과 사상에 대해 공부했는데 이런 것들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론들을 많이 꿴다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평생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다는 칼 마르크스도 상아탑에 갇혀 글을 쓴 사람은 아니었다.
끊임없는 물음들
대학에 온 것은 내 꿈을 찾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2014년을 보내면서 난 꿈이 생겼다. 내 옆 사람뿐만 아니라, 저 어딘가에 이름 모를 어떤 사람들까지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내 다음 세대에겐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꿈을 나 혼자서 이룰 수는 없다. 나 스스로 확고부동한 철학과 실천이 필요하며, 그것들을 함께하고 지도해줄 동지들, 즉 조직이 필요하다.
ISIS를 주제로 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포럼에 참가했다. 내가 몇 달 동안 정리했던 생각들을 비교해보기도 했고, 내가 고민하던 것들을 물어보기도 했다. 명쾌한 답변들과 몰랐던 진실들을 알게 됐다. 그 이후 맑시즘2015, 〈노동자 연대〉 독자모임 등을 함께 하면서 난 노동자연대 동지들과 점점 가까워졌다.
올해 초,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에서 벌어진 해고 노동자 복직 투쟁에 깊숙이 참가하며 내가 1학년 때부터 머릿속으로만 생각해 왔던 노동계급 투쟁을 직접 겪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세월호 “쓰레기 시행령 폐기” 투쟁도 벌어졌다.
두 투쟁과 끝나자, 난 다시 기로에 섰다. 노동자연대의 정치에 대해서 점점 알아가면서 많이 가까워졌지만, 내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다. 환경 운동을 다른 방식으로 조직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이 얼마나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가령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이 세계의 노동 착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기껏해야 지금 이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일 것이다. 몰려오는 파도를 막으면서도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 노동계급 중심성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살기 위해 더는 노동력을 팔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부터 여러 정치적 사안을 놓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싸우는 정치투쟁, 그리고 만약 현실이 요구한다면 세계를 뒤흔들 혁명까지도.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지금까지 살면서 죽기 전까지도 내가 후회하지 않을 으뜸가는 일은 자본주의 체제와 투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 일을 함께할 노동자연대의 정치와 동지들도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사람들 중 단연 최고이고, 삶이 노동자연대의 정치와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